세월

묵묵히 선창에 앉아 세월이 오래되니 세상의 모든 인연 몽땅 잊었네 비록 잊었지만 체험은 남는데 늙어가니 비 올 것과 몸 아프니 춥고 더움 금방 알겠네 남전당 한규 선생에게 보낸 시다 불가에 몸을 담고 만행을 나선 지 44년 세월 앞에서는 경허스님도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그동안 맺었던 인연의 실타래를 다 풀지도 못했던 지난 세월 이제 그 인연조차 몽땅… 세월 계속 읽기

산은 산 물은 물

누가 물이라 하며 누가 산이라 하는가 산은 구름 속에 있고 물은 돌 사이로 흐르네 대광명의 본체가 가이 없는데 가슴을 열어제치고 바라보니 물과 산이더라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 앉아 경허스님은 한없이 넋을 잃고 있었다 산은 구름 속에 있고 물은 돌 사이로 흐르는데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성찰로 자아를 찾고 있는… 산은 산 물은 물 계속 읽기

해인사에서

장엄한 장격각이 신선봉을 대했는데 지난 일 모두 한바탕 꿈이로니 여기에 건곤을 삼키고 토하는 이 있어 구광루 위에서 천산을 저울질하네 경허스님은 풍류와 시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 풍류를 제대로 알려면 삼생(三生) 육십겁(六十劫)을 참구(參究)해야 한다고 했다 그 엄청난 세월을 알지 못하고 어디 감히 풍류를 즐기려고 하는가 돌아보니 허망한 것이 풍류요 한바탕 꿈이 인생인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