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가 스님─마음을 등불로 삼아라

●마음을 등불로 삼아라/

능가 스님

(범어사 내원암 회주)● 오늘은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제목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말은 우스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여러분도 모두 자기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알든 모르든 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자기를 지키기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일찍이 자기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뿐이니 어떻게 하면 자기를 찾게 해주겠는가 하는 걱정을 하셔서 자기를 찾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믿어라, 자기를 되찾아라’ 하는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아함경)에 보면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등불로 삼고 부처님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또 (법구경)에는 자기를 스승으로 삼을 것이지 남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 자신을 스승으로 삼기는커녕 남을 스승으로 삼는 것도 꺼리는 세상입니다.

나도 잊어버리고 남도 잊어버린 그런 세상이란 말이죠.

나도 잊어버리고 남도 잊어버린 사람은 부처님도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나를 스승으로 삼아야 부처님의 존재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에게 귀의하지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전에 부처님을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귀의하고 그 여타의 것에는 귀의하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내 몸은 만물의 중심이고 내 마음은 만물의 척도입니다.

척도는 ‘자’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은 만물을 재는 자’다 이 말입니다.

동서남북이라고 했을 때 동쪽이 어디입니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동쪽은 일본입니다.

그러면 동쪽 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동쪽을 한번 가보자며 일본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갑니다.

일본에 가서 동쪽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국으로 한번 가보라고 합니다.

미국에 가서 또 물으면 동쪽은 영국이니 영국으로 가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비행기타고 영국으로 가서 동쪽을 물으니 ‘한국으로 가보시오’ 하는 겁니다.

다시 한국에 와서 동쪽을 물으면 또 일본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쪽은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동서남북의 중심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처럼 동서남북은 본래 없어요.

시간과 공간도 원래 없는데, 여러 사람이 살다보니 편리하게 하기 위해 ‘해뜨는 곳을 동쪽이라고 하자’고 공동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 계약이 몇 천만년이 흐르는 사이, 동쪽이 따로 있는 것처럼 돼 버린 겁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동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동쪽입니다.

이처럼 삼라만상의 중심은 전부 나입니다.

높다고 해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높다는 것이지, 덮어놓고 높은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작다거나 크다거나 하는 것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작다, 크다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큰 것, 작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의 중심은 나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하고 내가 걸어가고 내가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귀중한 나라는 것이 무시돼 버렸습니다.

그러니 ‘무시된 나를 되찾아라’ 이 말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참나’를 찾으라는 말입니다.

참나, 참뜻, 진면목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모든 사람들은 참나를 잊어버리고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어요.

나도 껍데기, 남도 껍데기이니 부처님 믿는 것도 껍데기입니다.

내가 여태껏 부처님 믿는다고 절에 다녔는데 껍데기라니 큰일났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듭니까? 지금 여러분이 앉아서 내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내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이 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 나인데 그 나라고 하는 것은 가짜 나입니다.

지금 나라고 믿고 있는 것은 인연에 의해 태어났을 뿐입니다.

인연 따라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그저 인연의 몸입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인연아(因緣我)’라는 말입니다.

인연으로서의 나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인연으로 지어지는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인연을 쑥 빼버리면 아무것도 없어서, 거짓 나로 사는 것은 기초가 가짜니 모든 것이 가짜다 이 말입니다.

정치를 해도 가짜요, 학문을 해도 가짜요, 억천만 가지의 일이 모두 가짜입니다.

왜? 일을 하는 주체가 모두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연따라 보고 듣고 맛보고, 인연 따라서 오고 가고 하다 보니까 인연 아닌 나가 인연에 좌지우지 되는 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연은 물거품과 같아서 인연이 사라지면 인연에 의한 나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가짜 나’라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중생은 사대를 내 몸이라고 하고 육진의 그림자를 내 마음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즉 지수화풍 인연 따라 형성된 몸을 내 몸이라고 우기고 색성향미촉법으로 인해 듣고 보고 맛보는 것이 인연 따라 형성되었을 뿐인데, 그렇게 생겨난 선입견을 내 마음이라고 우긴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잠재의식에 그런 선입견이 꽉 차 있습니다.

어느 때 그것이 인연 따라 툭 튀어나오면 그것이 내 마음인줄 착각합니다.

몸만 가짜가 아니라 마음도 가짜로 형성된 것입니다.

가짜 아닌 것은 인연에 좌지우지 되지 아니하는 나, 이게 진짜 나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진짜 나에게 의지하라는 말씀을 부처님께서 하신 것이죠.

진짜 나를 체득하고 진짜 나를 발견하고 진짜 나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곧 부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진짜 부처님은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 아니라 여러분이 갖고 있는 진짜 나가 부처님입니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 하면 절에서 살게 마련입니다.

절에서 밥 먹고, 절에서 자고 아침 저녁으로 예불 모시는 것, 이것이 스님의 3대 강령입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한국 신도들은 전부 눈이 삔 사람만 모였다고 말합니다.

오죽 답답하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도대체 옳고 그런 것을 분간을 못해요.

3대 강령을 잘 지키기도 않는 스님을 큰스님이라고 부르고, 스님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게 한국불교의 실상입니다.

물론 어쩌다 볼일을 보다 보면 부득이 절에서 못 잘 때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사흘이 멀다하고 절에서 나가서 자고 예불을 빠뜨린다면 무언가 탈이 있는 겁니다.

신도는 삼보를 외호하고 불교가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신도의 의무인데, 그렇게 잘못돼 가는 스님들을 큰스님이라고 떠받든다면 그것 역시 잘못되는 길입니다.

출가인으로서 진짜배기이냐 아니냐 3대 강령이 있다고 했죠? 이제부턴 4대 원칙을 말할테니 잘 들어보세요.

범어사에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유교 신자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불교와 유교가 다른 점이 뭡니까 하고 물으면 그만 입을 다물고 마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절에 다니는 신도라고 하면 기독교와 불교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종교를 안 가진 사람과 불교 신자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는 알아야 됩니다.

신도냐 아니냐는 4대 원칙에 합격이 되면 진짜 신도이고 불합격 되면 마구니입니다.

첫째로 인과설입니다.

타종교는 인과의 내용은 긍정해도 정면으로 인과를 내세우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삼생설입니다.

전생, 금생, 내생을 인정하는 것은 불교뿐입니다.

불교도이면서 삼생설을 부정하면 마구니입니다.

셋째로 해탈설입니다.

해탈도 불교에만 있습니다.

해탈은 쉽게 말해서 해방돼서 탈출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엇에서부터 해방되고 탈출하느냐? 업, 인연, 잠재의식 등에 꽁꽁 묶여 있던 것에서 해방되어 탈출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마음에 자기가 묶여있는 게 중생입니다.

그것에서 탈출하면 청정심 밖에 남는 게 없어요.

네 번째로 삼보 긍정설입니다.

불법승 삼보를 부정하거나 존경하지 않으면 불자가 아닙니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아주 기초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신도의 첫 관문과도 같습니다.

이것을 완성하면 성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가자만 알고 완성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이러쿵 저러쿵 하거나 이 절 저 절 왔다 갔다 하는 절 도깨비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열반경)에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열반경)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유언에 해당됩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를 잘 새겨서 절에 다니는 마음가짐은 법에 의지하라는 철칙을 지키며 4대 원칙을 완성하는데 온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잊어버린 나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을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잊어버린 나를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 문에 들어와서는 참나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