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종스님─사리사욕에 끄달리지 말고 정진하세요

사리사욕에 끄달리지 말고 정진하세요.

불갑사 지종 큰스님

많은 신도들이 읽고 외고 금강경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법문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 부처님의 진리를 깨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법문만 듣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이 금강경의 도리를 받아 실천해야 됩니다.

이 금강경의 가르침대로만 할 것 같으면 성불 못할 사람이 없고 복 안지을 사람이 없으며 뜻대로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도리가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맨처음 이 경의 이름을 지을 때 부처님께서 금강경이라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것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기에 이미 반야바라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째서 반야바라밀이 아니냐고 하니 이름과 모습에 끄달리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다는 것예요.

다만 문자에 따라 해석하자면 반야는 지혜를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을 지닌다고 설명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이 뭐예요.

먹고 입는 것 아니예요? 그럼 아무 걱정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건 간단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부처님 뜻을 따르면 극락세계에 가는 겁니다.

극락세계만 가면 아무 것도 걱정할 일이 없어요.

거기엔 추위도 더위도 아무 걱정할 것도 없고 사시사철 좋은 꽃이 피고 향긋한 바람이 부는 이상적인 세계예요.

그런 경지에 이르는 경이 금강경이란 말입니다.

마음을 닦아서 탐진치 삼독과 번뇌망상을 떼어버리고 오직 모든 중생을 내 한몸과 같이 여겨라, 모든 중생을 부처님과 같이 받들어라 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지니지 않고서는 할 수 없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생사를 멸하고 모든 것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도리, 그 도리를 이 반야바라밀경만 지니고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큰 공덕이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만 지니고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됩니까.

그 뜻을 알고 전하는 것이 큰 공덕이 되는 것이지요.

어째서 큰 공덕이 되는가 하면 탐진치 삼독이 다 떨어져 중생이나 축생이나 본래의 근본 자리를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49년 동안 설법을 하셨지만 또한 내가 설한 바가 없다고 최후에 가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뜻은 무궁무진해서 한도 끝도 없는데 어떻게 말로 끝낼 수 있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한량없는 무수한 중생이 있습니다.

삼악도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부처님 법문 듣고 그대로 다 따랐다면 삼악도가 다 없어지고 중생세계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이 바로 불국토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저 법문만 들으면 공덕이 된다는 생각만 갖고 실제로는 공부도 안하고, 공덕도, 복도 짓지 않고 아무 것도 안했어요.

반대로 우리가 법문을 듣고 탐진치 삼독 고뇌를 다 털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부처님 같이 여기고 나와 한 몸뚱이 같이 여겨보세요.

이런 사람에게 무슨 불행이 있겠습니까.

한량없는 행복만 계속될 뿐이지요.

결국 우리가 부처님 뜻을 하나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어 그렇기 때문에 중생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삼악도도 삼악도대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 세계가 부처님 정법은 멀어지고 오직 우리에게는 탐진치 삼독만 꽉 차 있는 거죠.

그러니 언제 이 세계가 극락정토가 되겠느냐 이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슬피 울었어요.

육신은 태어났으니까 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은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정한 계법 다섯가지 살생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술먹지 말라 하시며 내 법을 항상 그대들의 스승으로 삼아라, 그 법을 스승으로 삼을지언정 육신덩어리를 믿고 스승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어요.

또 내 육신 덩어리는 없어지지만 나는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바로 이 뜻을 이어 실천하고 공부하면서 산다면 부처님을 속일 수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이것은 곧 내 마음을 속이는 것이니 부처님을 속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자신의 영리를 위해 남을 속이고 중상모략하는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아요?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짓누르고 없는 것을 있다고 거짓말하고 그런 짓을 지금도 우리 불자들이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일시적인 자기 영리를 위해서 부처님을 속이고 자기가 자기 마음을 속이고 있으므로 그렇게나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업을 지어가므로 이 세계가 불국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곳을 맑고 향기나는 세계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마음부터 정화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받아 항상 우리 마음을 정화시킬 줄 알아야 참으로 금강경의 도리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일체의 행동거지를 그렇게 한다면 금강반야바라밀의 뜻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올바른 금강반야바라밀경임을 아는 것입니다.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그건 금강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냥 거짓경이고 거짓 법문일 뿐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진리, 이것을 터득해 행할 때 바로 금강반야바라밀이 금과 같고 보석과 같은 경이며 이것이 바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에게나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법회나 신도회에 뭐가 있다고 왔습니다만 그 마음 자리는 형체가 없다하더라도 보고 듣고 기분 나쁘면 짜증내고 화내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요? 형체가 없는 그 마음 자리가 이 우주법계를 삼켰다가 뱉었다 하는 겁니다.

마음이 형체가 있다면 이 우주를 못 삼켜요.

없기 때문에 이 우주를 한숨에 들이켰다 뱉어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마음, 신령스런 그 마음 자리 이것을 우리가 알고 본다면 금강경 도리를 알 수 있습니다.

고려자기가 좋아서 그것을 재현하려 하지만 그게 됩니까.

공에서 만들어졌다 공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니 현상계는 전부 형체나 음성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육신부터 공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때는 소중한 재산, 자손 모두 다 내던지고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까지 내던지고 가지 않아요.

그러니 내것이라 집착할 것이 도무지 없죠.

그러나 마음자리는 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몸뚱이 있을 때 지은 업을 뒤집어 쓰고 가게 됩니다.

어떤 업이냐 하면 염불을 외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극락세계에 갈 반야용선을 탈 것입니다.

여러분들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돈, 명예, 이름 이런 거 가져갈 수 있어요? 아무 것도 못 가져가요.

그런데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건 바로 공덕이예요.

열심히 공덕 지으면 반드시 그 마음자리를 가져갈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만을 위해 지은 업보와 죄를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탐진치 삼독을 버리라 하신거예요.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그걸 모르고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과보를 받아요.

결국 화탕지옥 밖에 더 가겠어요.

그런 곳에 안가려면 부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해요.

부처님 법을 따르는데 형무소고 재판소고 이런 것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다 부처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이 자기 마음을 속였기 때문에 이런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어요.

금강경의 도리는 현상계에 있는 모든 집착이 다 실체가 없다는 공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어요.

요즘 세상이 많이 무서워졌다고들 하지요.

왜 이렇게 됐습니까.

다 자기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이예요.

어디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하겠어요? 그렇지 않으려면 우리가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마음을 닦는 길 밖에 없어요.

이렇게 열심히 마음을 닦고 공덕을 쌓아 보세요.

그러면 다시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잘못하면 이 세계가 극락세계가 아니라 화탕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거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요즘 젊은 불자들이 자꾸 부르짖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도 한번 맑고 향기나는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예요.

마음부터 정화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정화, 정화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한순간 돌아서면 쓸데없는 생각과 욕심으로 꽉차버리고 쉽게 짜증내고, 화내고, 일하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 미워하고 그러니 어떻게 맑고 향기나는 세계를 만들 수 있겠어요.

그러다가 다시 부처님 앞에 서면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참회하고 또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헛된 생각으로 자신을 어지럽히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자꾸 돌이켜 보세요.

자신을 반성하세요.

그것이 바로 공부예요.

지금 이 늙은이가 뭐가 어떻다하고 있으면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들도 곧 나처럼 돼요.

이렇게 되기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을 깨우쳐야 돼요.

듣고 실천하지 않으면 금강반야바라밀은 금강반야바라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천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나 근본바탕 우리의 마음 자리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자성가운데 있어 그것을 알기 위해 공부하고 깨우치면 그것이 곧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되는 겁니다.

우리 노보살님들 이 세상을 떠날 밥상을 받아 놓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지요, 보따리를 가지고 갈 것인지 다 털어버리고 갈 것인지 고민도 되고요.

그런데 문제는 보따리에 나쁜 것만 싸 가지고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참으로 무서운 일이예요.

나도 잘 때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자문자답을 합니다.

오래된 돌덩이 화단에 가져다 놓으면 보기에나 좋지만 이놈의 몸뚱이 어디에 씁니까.

죽은 몸뚱이 결국 여기저기서 썩다가 자신이 지은 업대로 가요.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하고 공덕 짓고 복 짓고 해야돼요.

우리 신도님들 종파에 관계없이 그저 아무 절이나 잘 다니지요?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신도들은 참으로 너그러운 편이예요.

그저 부처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서로 도우면서 선덕을 짓고 모두가 잘살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국정토를 이루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