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고경(大法鼓經) 02. 하권

대법고경(大法鼓經) 02. 하권

그 때에 세존께서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어떤 왕이 능히 보시를 행하면 그 나라에서 많은 복장(伏藏)1)이 나오는 것과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 국왕이 가난하여 고생하는 중생에게 가지가지로 두루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복장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큰 방편이 있는 보살은 널리 중생을 위하여 매우 심오한 법을 말하는 까닭에, 이 매우 심오하며 그릇된 법을 여의는 경전, 즉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에 상응하는 경을 얻으며, 다시 이와 같은 여래의 상주(常住)와 여래장(如來藏)의 경전을 얻는다. 가섭아, 저 울단월(鬱單越)에서는 자연(自然)의 음식을 대중이 함께 취하되 줄어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수명이 다 하도록 ‘내 것이란 생각[我所想]’과 ‘탐욕스런 마음[慳貪想]’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이 염부제(閻浮提)의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 매우 심오한 경전을 얻어, 쓰고 지니고 독송하여 그 뜻을 남김없이 통달[通利]하여 널리 남에게 말하여 주되, 끝내 싫증내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비방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항상 자연스럽고 여의(如意)한 공양과, 깨달음[菩提]이 다함이 없고 모자람이 없어 정해진 업보를 없앨 것이다. 만일 계행을 지키는 비구가 계행 지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종신토록 천신(天神)이 따라 모시고 공양할 것이다. 만약 그가 이 심오한 경전에 대하여 한 생각이라도 비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면 반드시 여래장과 여래상주(如來常住)를 얻으며,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가까이 하여 공양하게 될 것이다.

전륜성왕이 행차하는 곳에 7보가 항상 따르는 것처럼,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이러한 경전이 항상 그와 함께 할 것이다. 또한 전륜성왕이 행차하는 곳에 7보가 따라오며 다른 곳에 머무르지 않고, 그 참되지 않은 보배는 다른 곳에 머무는 것처럼, 이와 같이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현재 머무는 곳에 이 경전이 다른 세계에서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모두 모이고, 모든 요의(了義)가 아닌, 공(空)과 상응하는 경전은 다른 곳에 머물 것이다. 이와 같이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머무는 곳은 이르는 곳마다 이 경이 항상 따를 것이다.

전륜성왕이 행차하는 곳의 모든 중생은 왕을 따르며, ‘저 왕이 머무는 곳에 나도 갈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이 경전 또한 항상 따를 것이다.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올 때에 7보가 따라서 나오는 것처럼, 이와 같이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세간에 나오면 이 경전 또한 따라서 나타날 것이다. 전륜성왕이 자신이 소유하던 7보에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왕은 그것을 찾아 반드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는 것처럼, 이와 같이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은 이 경을 듣기 위하여 곳곳을 찾아다녀 경이 있는 곳에 이르려 할 것이다.

또한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오지 않을 때에는, 모든 작은 왕[小王]들이 전륜왕과 다투어 여러 왕들과 화합하여 각각 세상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제방(諸方)에서 이 심오한 경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나머지 잡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온갖 잡된 경을 말하니, 이른바 바르고 바르지 못한 잡경들이다. 저 모든 중생이 이렇게 따라서 배우니, 그들이 배울 때에 이 여래장ㆍ여래상주의 깊고 심오한 경전을 들으면, 마음에 의혹이 생겨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을 먹어, 그를 천시하고 비웃으며, 사랑하는 생각을 품지 않고 매도하고 모욕하여 참지 못하고, ‘이 문필(文筆)은마군이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것이 법을 훼손한다’라고 이르며, 모두 버리고는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서로 파괴하고 계행을 범하고 삿된 생각을 일으켜, 끝내 이 경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 이 경이 따라서 머물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세간의 많은 중생이 대승의 경전을 보거나 들으면 비방할 마음을 먹고 두려운 생각을 갖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5탁악세(五濁惡世)3)에는 바른 법이 줄어들고 많은 중생이 대승법을 비방하니, 마치 일곱 집 마을에는 반드시 다이니(茶夷尼) 귀신이 있는 것과 같아서, 이와 같이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일곱 사람 가운데 반드시 비방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가섭아, 비유하자면 같은 계행을 지니는 사람은 서로 만나면 반가워하는 것과 같다. 그들도 이와 같아서 각각 계행을 훼손하고, 설법하는 무리 가운데서 이 경을 들을 때 서로 돌아보고 놀리고 비웃으며, ‘무엇이 중생계이며, 무엇이 항상된 것인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 얼굴을 서로 보며 , ‘저 사람은 나의 벗이다’라고 생각하여, 더 더욱 서로 불쌍히 여길 것이다. 이와 같은 짓을 하면서 본성을 지켜 머무르거나 또한 본성을 지켜 떠나간다. 마치 어떤 바라문 장자의 집안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악한 짓을 익혀, 부모가 훈계해도 고치지 않고, 집을 버리고 떠나 나쁜 친구를 따라 다니면서,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을 쫓는 것으로 오락을 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짓을 되풀이하다가 다른 나라에 가서 같은 무리를 모아 함께 그릇된 법을 행하며 이것을 동행(同行)이라 여긴다. 이 경을 즐기지 않는 사람 또한 이와 같아서, 남들이 독송하고 설법하는 것을 보면 도리어 놀리며 비웃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때에 중생들이 모두 게으르고, 계행 지니기를 느슨히 하여, 법에 들지 못하였으므로 저 모든 ‘동행’이 서로 서로 비방하기 때문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 참으로 나쁜 때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때를 당하여 위로하는 설법을 베푸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가섭아, 비유하자면 성읍(城邑)에서 가까운 밭이 사람과 코끼리와 말들에게 침범을 당하는 것과 같다. 그 때에 밭 주인이 한 사람을 시켜 감시하게 했는데 감시하는 사람이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다시 둘ㆍ셋ㆍ넷ㆍ다섯 혹은 열ㆍ스물ㆍ백 사람으로 늘릴 것이다. 지키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면 취하는 사람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 때에 최후의 한 사람이 ‘이와 같이 지켜보는 것은 일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니, 마땅히 좋은 방편을 써서 침해를 받지 않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여, 곧 밭의 모종[苗]을 뽑아 손수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이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밭의 모종이 온전하게 되었다. 가섭아, 만일 이와 같이 좋은 방편을 쓸 수 있다면 내가 멸도한 뒤에 능히 이 경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끝내 저 악한 사람을 바로잡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두 어깨에다 수이산(須爾山)을 지고 백천 겁에 이를지언정, 저 악한 사람[惡人]들이 계를 범하고 법을 없애며 법을 비방하고 법을 더럽히는, 이와 같은 모든 악하고 법답지 못한 소리를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차라리 남에게 매여서 그의 종[僕使]이 될지언정, 저 악인들이 계를 범하고 법을 등지며 법을 멀리하고 법을 무너뜨리는, 이와 같은 모든 악하고 법답지 못한 소리를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차라리 정수리에 땅덩이와 큰 바다를 이고 백천 겁을 지날지언정, 저 악인들이 계를 범하고 법을 멸하며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헐뜯는, 이와 같은 모든 악하고 법답지 못한 음성을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차라리 항상 귀머거리ㆍ소경ㆍ반벙어리ㆍ온벙어리가 될지언정, 저 악인들이 청정한 계행을 훼손하고 이익을 위하여 출가하여 다른 이의 보시를 받는, 이와 같은 모든 악하고 법답지 못한 소리를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차라리 몸을 버리고 빨리 열반에 들지언정, 저 악인들이 청정한 계행과 법라(法螺)소리 같은 행을 훼손하고 몸으로는 남의 뜻에 맞추려 자신의 뜻을 굽히는 행동을 하고 입으로는 허망한 것을 말하는, 이와 같은 모든 악하고 법답지 못한 소리를 차마 듣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한 이것은 성문의 열반이요, 궁극의 열반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성문ㆍ연각의 열반에 든 것이요 궁극의 열반이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3승, 즉 성문승ㆍ연각승ㆍ대승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이미 열반에 드셨는데도 다시 열반에 든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성문은 성문의 열반으로써 열반에 드니 궁극적인 열반이 아니다. 벽지불은 벽지불의 열반으로 열반에 드니 또한 궁극적 열반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공덕을 얻은 지혜인 대승의 열반에 든 연후에야 궁극의 열반이며 다른 궁극의 열반이 없는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유하자면 젖에서 낙(酪)4)이 나오고, 낙에서 생소(生酥)5)가 나오고 생소에서 숙소(熟酥)가 나오며, 숙소에서 제호(醍醐)6)가 나오는 것과 같다. 범부의 삿된 소견은 처음 나온 젖에 젖과 피가 섞여 있는 것과 같다. 3귀의계(歸依戒)를 받은 사람은 마치 순수한 젖과 같다. 수신행(隨信行)들과 초발심(初發心) 보살이 해행지(解行地)에 머무는 것은 낙(酪)을 이룬 것과 같다. 7종의 학인(學人)과 7지주(地住)의 보살은 숙소와 같다. 그리고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제호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3승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길잡이[導師]가 용맹하고 호걸스러운데, 모든 권속과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그가 머무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여, 넓은 들의 험난한 길을 지날 때 ‘이 사람들이 피로하여 물러나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쉬게 하려고 그 앞길에 가짜로 큰 성을 만들고,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앞에 큰 성이 있으니 빨리 갑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보니 그 성이 가까워지므로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들이 쉴 곳이다’라고 했다. 곧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서 휴식하고 즐겼다. 그리고는 그 곳에 머무는 게 마음에 들어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 때에 길잡이가 ‘이 모든 사람들이 작은 쾌락을 얻고 곧 만족하게 여겨, 지치고 힘들어 쉬고 싶고 게을러져 더 나아갈 뜻이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때에 길잡이가 즉시 가짜 성을 없앴다. 그 모든 무리가 성이 없어진 것을 보고 길잡이에게 ‘이 무슨 일인가? 환상인가? 꿈인가? 진실인가?’라고 물었다. 길잡이가 사람들에게 ‘조금 전의 큰 성은 휴식을 위해 내가 가짜로 지은 것이오. 다른 성이 또 있으니 이제 그곳으로 갑시다. 어서 그 곳에 닿으면 즐겁고 편안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예,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어찌 이 누추하고 좁은 곳을 즐거워하겠습니까? 당연히 편안하고 즐거운 큰 성으로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길잡이는 ‘그렇습니다. 당연히 가야지요.’라고 말하면서 곧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다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려는 큰 성의 모습이 이미 나타났으니, 그대들은 잘 살펴보십시오. 저 앞의 큰 성은 매우 풍요롭고 즐거운 곳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차츰차츰 앞으로 나가니 그 큰 성이 보였다. 그때에 길잡이는 사람들에게 ‘여러분 보십시오. 이것이 말씀드린 큰 성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때에 사람들이 멀리서 큰 성을 바라보니 안온하고 풍요로우며 즐거워 보여 매우 기뻐하며, 사람마다 서로 보면서 희한한 생각이 들어 ‘이 성은 실다운 것인가, 아니면 이전처럼 허망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길라잡이는 ‘이 성은 참으로 실다운 것이며, 일체가 훌륭하여 안온하고 풍요로우며 즐거울 것이오’라고 대답하고, 곧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큰 성에 들어가십시오. 이곳은 으뜸가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성입니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남은 성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성에 들어가자 희한한 마음이 들어 기뻐하며 길잡이를 찬탄하여 ‘참으로 좋습니다! 진실로 큰 지혜를 지니신 이여, 큰 자비의 방편으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가섭아, 잘 알아두어라. 그가 처음에 가짜로 만든 성은 이른바 성문ㆍ연각승의 청정한 지혜이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해탈 지혜이다. 그리고 진실한 큰 성은 여래의 해탈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3승을 열어 보이고 2가지 열반을 드러내며, 또 1승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이 없다고 말한다면 나의 제자가 아니며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대승의 경전은 공(空)의 뜻을 말하는 것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공에 대한 모든 경전은 미진함이 남는 말씀이다. 오직 이 경만이 가장 좋은 말씀으로, 미진함을 남기지 않은 말씀이다. 또 가섭아, 바사닉왕이 항상 11월에 큰 보시의 모임을 베풀어 먼저 아귀 중에 고독하고 가난하게 구걸하는 이를 먹이고, 다음으로 사문과 바라문에게 베풀되, 맛있는 반찬과 여러 가지 맛으로 그들이 바라는 바를 들어준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도 이와 같이 중생의 가지가지 욕심과 즐거움을 따라 가지가지 경법을 설명하신다. 만일 어떤 중생이 게으름을 피우고 계를 파괴하며 부지런히 닦지 않고, 여래장 상주의 묘전(妙典)을 버리고 가지가지 공(空)의 경을 배우기 좋아하여, 혹글귀와 글자를 따라서 말하거나 글귀와 글자를 더하고 달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일체의 불경이 모두 무아(無我)를 말씀하셨다’라고 말했으나 그는 공과 무아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는 지혜 없는 사람이므로 멸진(滅盡)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과 무아의 설법 또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량한 티끌과 모든 번뇌의 창고[藏]가 항상 공한 열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열반을 일체구(一切句)라 한다. 그것에 늘 머물러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얻으신 큰 열반(涅槃)의 글귀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단견과 상견[斷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중생은 생사의 바퀴를 돌고 돌아 아(我)가 자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의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여러 부처님들이 얻으신 큰 열반은 항상 머무르며 편안하고 즐거워 이 뜻을 가지고 단견과 상견을 끊었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다시 ‘무아’의 수레바퀴를 굴려 주십시오. ‘아(我)’의 수레바퀴를 굴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아’를 깨뜨리기 위하여 ‘무아’의 뜻을 말하였다. 만일 이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들이 대사(大師)의 법을 받게 하겠는가? 여래가 ‘무아’를 말하니 저 모든 중생이 기특한 생각을 내어 듣지 못한 것을 들었다 하고 여래의 처소에 나아온 것이다. 그러한 뒤에 백천(百千)의 인연으로써 불법에 들어가게 한다. 불법에 들어간 뒤에는 신심이 더욱 자라나 부지런히 정진하며, 공의 법[空法]을 잘 배울 것이다. 그러한 뒤에 상주하고 안락하여 색이 있는 해탈이 있게 된다.

또 어떤 세속에서는 유(有)가 해탈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하여 해탈은 모두 없 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들이 대사의 법을 받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백천의 인연으로써 해탈과 멸진(滅盡)과 ‘무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뒤에 내가 다시저 중생들을 보니 ‘끝내 멸진하는 것[畢竟滅]’을 해탈이라 여기니, 그 지혜 없는 사람이 멸진에 나아갔다. 그러한 뒤에 내가 다시 백천의 인연으로써 해탈이 유(有)임을 말하였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해탈 자재함을 얻은 사람은 중생이 반드시 항상됨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연기를 보면 반드시 불이 있는 줄 아는 것처럼, 만일 ‘아’가 있으면 반드시 ‘해탈’이 있습니다. 만일 ‘아’가 있다고 말해도 곧 해탈에 ‘색(色)’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 세속의 신견(身見)7)이 아니며, 또한 단견과 상견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가섭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여래께서는 열반에 드시지 않고 열반에 드신 것을 보이시며, 태어나지 않고 태어남을 보이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이 항상된 것이라 착각하는 망상을 깨뜨리기 위해서, 여래는 열반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열반에 든 것을 보이며, 태어나지 않았으면서도 태어난 것을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생들은 ‘부처님조차도 마지막[終沒]이 있어 자재하지 못하시는데, 하물며 ‘아’와 아소(我所)가 있는 우리 범부들은 어떻겠는가?’라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어떤 왕이 이웃 나라에 체포되어 항쇄와 족쇄를 쓰고, ‘내가 지금도 왕인가? 주인인가? 나는 이제 왕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여러 가지 곤란을 겪고 있는가? 방탕하게 살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은 생사의 윤회에 빠져 자재하지 못한다. 자재하지 못하는 까닭에 무아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도적에게 쫓겨칼에 맞아 죽으려는 찰나에, ‘내가 지금 힘이 없으니 이 죽음의 재난을 모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생ㆍ노ㆍ병ㆍ사 등 가지가지 괴로움으로 이루어진 중생은 제석ㆍ범왕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래는 그 생각을 깨뜨리기 위하여 죽음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여래는 하늘 가운데 하늘이니, 만일 열반에 들어 모두 사라진다면 세간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만일 사라지지 않는다면 상주이며 안락이니, 상주이며 안락이라면 반드시 ‘아’가 있을 것이니 마치 연기가 나는 곳에 불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무아’이면서 아가 있다면, 세간에도 당연히 가득할 것이다. 진실로 ‘아’가 있고 ‘무아’가 아니라면 또한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진실로 ‘무아’라면 ‘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有)’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유’란 25유 중생의 행이며, ‘비유(非有)’란 생각[思] 없는 물건이다. 만일 ‘비유’가 중생이라면 마땅히 다른 것에서 왔을 것이다. 만일 생각 있는 물건이 파괴된다면 중생은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만일 ‘비유’가 중생이라면 당연히 가득 찰 것이다. 중생은 나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기 때문에 줄지도 않고 가득 차지도 않는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에 ‘아’가 있다면 무엇이 번뇌와 모든 때[垢]를 낳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 좋은 질문이다. 당연히 이런 물음을 여래에게 던져야 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금사(金師)가 금의 성분을 발견하고, ‘이와 같은 금의 성분에 무엇 때문에 때가 생겼을까? 이제 때가 생기는 근본 원인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저 사람은 근본 원인을 얻을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죽을 때까지 생각하여 처음의 인상(因相)이나 무시(無始)를 찾는다면 본제(本際)를 얻겠는가 얻지 못하겠는가? 이미 근본 원인을 얻지 못한다면 또한 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묘한 방편으로 부지런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저 금의 때를 제거하면 마침내 금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와 같이 ‘아’라는 것은 객번뇌(客煩惱)를 낳는다. ‘아’를 보고자 하는 이가 ‘이제 ‘아’와 때의 근본을 찾으리라’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근본을 얻겠는가, 얻지 못하겠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에 방편에 힘써서 번뇌의 때를 제거하면 마침내 ‘아’를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경전을 듣고 깊은 마음으로 믿고 즐기며, 느리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게 훌륭하고 좋은 방편으로 3업을 청정히 하면, 이 인연으로 마침내 ‘아’를 얻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비유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 비유하자면 처음 배우는 이가 다섯 자 글귀와 한계를 이루는 글귀[界成句偈]를 배우려 하는 것과 같다. 먼저 뜻을 알고 나서야 배우려 하면 알 수 있겠는가? 마땅히 먼저 배우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가 잘 배우고 난 뒤에 스승이 한계를 이루는 뜻[界成義]을 가르치고, 비유를 들어 그에게 보이면, 그는 들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을 통해서 한계를 이루는 글귀의 뜻[界成句義]을 아는 까닭에 믿고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이 내가 이제 번뇌더미[煩惱藏]에 깔린 중생을 위하여, ‘선남자여, 여래장은 이러이러하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곧 보고자 할 텐데, 볼 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보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저 한계를 이루는 글귀의 뜻을 모르는 이가 스승을 통해 믿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가섭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여래는 성실하게 말하는 사람이니, 성실한 말로써 중생이 있다고 말한다. 너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마치 그의 배움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제 너를 위하여 다시 비유를 말하겠다. 마치 4가지 중생계가 감추어진 비유와 같다. 이른바 살이 돋아서 눈을 가리고, 겹겹이 쌓인 구름이 달을 숨기는 것이니, 사람이 우물을 팔 때 병 속에 등불을 밝히는 것처럼, 마땅히 이 4가지는 불장(佛藏)의 인연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어 무량한 상호가 장엄하고 밝게 빛난다. 그 불성이 있는 까닭에 일체 중생은 열반에 들 수 있다. 마치 저 눈병 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아직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여 그 눈이 늘 어두운 것과 같다. 만약 좋은 의사를 만난다면 금방 색(色)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무량한 번뇌의 더미가 여래의 성품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여러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나’와 ‘나 아님’을 분별하여 ‘아소’를 ‘나’라고 여긴다. 만약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만난다면 이내 참 나를 알 것이다. 마치 병이 나아서 그 눈이 열려 밝아지는 것과 같다.

가린다는 것은 모든 번뇌를 가리키며, 눈은 여래의 성품을 이른다. 마치 구름이 달을 가려 달이 밝지 못한 것처럼, 모든 번뇌의 더미가 여래의 성품을 가려서 성품이 밝지 못한 것이다. 만일 모든 번뇌의 구름 덮개를 벗게 되면 여래의 성품이 보름달처럼 밝아질 것이다.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마른 흙이 나오면 물이 아직도 먼 줄을 알고, 축축한 흙을 얻으면 물이 점점 가까운 줄을 안다. 만일 물을 얻으면 곧 궁극의 것을 얻은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만나 선행을 닦고 번뇌의 흙을 파내면 물(여래의 성품)을 얻을 것이다. 마치 병 속의 등불이 그 빛이 드러나지 않으면 중생에게 쓸모가 없지만, 병을 깨뜨려버리면 그 빛이 널리 비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번뇌의 병과 덮개가 여래장의 등불을 가려 상호와 장엄이 밝지 않으면 중생에게 쓸모가 없지만, 모든번뇌의 더미를 벗어나면 저 여래의 성품에는 번뇌가 영원히 사라지고 상호가 밝게 빛나며, 불사(佛事)를 이룰 것이다. 마치 병을 깨뜨려 밝게 빛나는 등불을 중생이 받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4가지 비유ㆍ인연처럼, 내가 중생계를 갖는 것처럼, 일체 중생 또한 모두 이와 같아 저 중생계가 가없이 밝고 청정함을 알아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일체 중생이 여래장의 한 성품과 한 법[乘]을 갖고 있다면,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3승, 즉 성문승ㆍ연각승ㆍ대승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비유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 아주 부유한 장자(長者)의 집에 외아들이 있는데 유모를 따라 나갔다가 대중 가운데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자. 장자는 임종할 때가 가까워져, ‘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다. 다른 자식과 부모와 권속이 없으니 내가 만일 하루아침에 죽으면, 나중에 모든 재산을 왕이 전부 가져가겠지’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할 무렵에 본래 잃었던 아들이 걸식을 하면서 돌아다니다 그의 본가에 이르렀으나, 자기 아버지의 집인 줄 알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려서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보고 알았으나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달아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많은 재물을 주고 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나를 위해 아들이 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라고 했다. 그 아들이 말하기를, ‘차마 이곳에 머무르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머무르면 항상 괴로워 마치 결박을 당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장자가 다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물으니, 아들이 다시 ‘차라리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치우거나 소를 먹이거나 밭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장자는 ‘이 아들이 박복하니, 내가 적당한 때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뜻을 따르자’라고 생각하여, 곧 똥을 치게 하였다.

그 아들이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장자가 5욕을 마음껏 즐기는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생겨, ‘장자가 언젠가 나를 불쌍히 여겨 많은 재물을 주고 나를 아들로 삼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고나서는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았다. 장자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되었으니 오래지 않아 반드시 내 아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때에 장자가 그에게, ‘너는 지금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겨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그가 ‘아들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잘 되었다! 나는 너의 아비요, 너는 나의 아들이란다. 내가 진짜 너의 아비인데 네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재물과 창고를 모두 너에게 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대중에게 이와 같이 외쳤다. ‘이는 나의 아들인데 내가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으나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들이 되어 달라 하여도 달가워하지 않더니, 오늘에야 스스로 나에게 아들 되기를 구하였습니다.’

가섭아, 저 장자가 방편으로 못난 아들을 유인(誘引)하여 먼저 똥을 치우게 하고, 나중에 재물을 주며 대중 앞에서 이와 같이 외쳤다. ‘이는 본래 나의 아들인데 잃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다행히 스스로 와서 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가섭아, 이와 같이 1승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해 3승을 말하여 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여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이 여러 성문들도 모두 나의 아들이니, 저 똥을 치운 사람처럼 이제는 스스로가 알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 이상한 일입니다. 이 성문승은 어찌 이렇게 비루합니까? 참으로 불자(佛子)이면서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할 것이다. 만일 네가 꾸짖음과 나무람을 견디지 못한다면 당연히 버리고 떠날 것이다. 그가 나중에 무르익었을 때 네가 그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가섭아, 성문과 대승은 항상 서로 어긋난다. 세속과 무루(無漏), 우치(愚痴)와 약삭빠름[黠慧]이 어긋나는 것과 같다.

또 가섭아, 만일 이 경을 비방한다면 마땅히 자비롭게 제도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경을 비방했기 때문에 죽으면 당연히 가없는 어둠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불쌍히 여겨서,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대승법으로 그를 성숙하게 해야 한다. 만약 다스리지 못한다면 당연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만약 믿음이 있다면 그 스스로 믿을 것이다. 그 나머지 중생은 마땅히 제도하는 일[事]로써 제도하여 해탈하게 해야 한다.

또 가섭아, 만약 어떤 선비가 처음으로 열병(熱病)을 얻었다면 약을 주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치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적절한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때가 이르기를 기다린 다음에 다스려야 한다. 2처(處)를 알지 못하면 썩은 의원[敗醫]이라 한다. 그러므로 병이 적당히 진행된 다음에 치료해야 한다. 만일 적당히 진행되지 않았다면 적절한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와 같이 중생 가운데 이 경을 비방한 사람도 허물이 적당히 익으면 스스로 깊이 후회하며, ‘아, 괴롭다! 내가 한 일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구나’라고 자책할 것이다. 그러한 때에 이르러 마땅히 제도하는 일로써 그를 제도하여 구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 가섭아, 마치 어떤 선비가 넓고 큰 들을 건널 적에 뭇 새들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 때 선비는 새소리를 듣고 생각하기를, ‘도적 떼가 있구나’라고 여기고 딴 길로 갔다. 그리고 빈 연못 속으로 들어가 호랑이가 있는 곳에 이르러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다. 이와 같이 가섭아, 저 오는 세상의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아’가 있다 ‘아’가 없다하는 소리 중에 ‘아’가 있다는 소리를 두려워하여 크게 공(空)한 단견(斷見)에 들어가 무아(無我)를 닦아 익힐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여래장이며, 제불이 상주한 매우 심오한 경전에 대해서는 믿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또 가섭아, 네가 나에게 물은 것은 아난을 위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즉 유(有)가 있으면 고락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이 없다.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가섭아, 여래는 ‘유’가 아니며, 중생이 아니며, 또한 무너지지도 않는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설산(雪山) 아래에 청정한 광명을 내는 마니 보배의 성분이 있는데,

마니 보배의 형상을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형상을 보고 알아 취하여 가져가는 것과 같다. 마치 금을 연마하는 법처럼 하여 찌꺼기와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때를 여의어 청정히 하면, 닿는 곳마다 본래의 때[本垢]가 더럽히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유하자면 선비가 등을 잡고 가면 이르는 곳마다 어둠이 모두 사라지고, 등불 빛만 밝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저 마니보배 또한 이와 같다. 진짜 금을 연마하는 것 같이 하면 티끌과 때가 더럽히지 못할 것이다. 별이나 달빛이 비치면 맑은 물이 비처럼 내려오고, 햇빛이 비치면 곧 불이 나올 것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세상에 나타나서 일체 생ㆍ노ㆍ병ㆍ사를 영원히 여의고 번뇌와 습기(習氣)의 때를 모두 없애, 항상 크게 빛나는 것이 저 밝은 구슬 같고 일체 더럽혀지지 않은 것이 깨끗한 연꽃 같아, 더러운 물이 묻지 않을 것이다.

또 가섭아, 여래는 이러이러한 때에 이러이러한 형상으로 세간에 나와서 그 마땅함에 따라 범부의 몸으로 나타나되, 그 범부의 무리가 태어나는 곳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또한 세간의 고락을 받지 않는다. 즐거움이란 인천(人天)의 5욕의 공덕이나, 그것은 곧 괴로움이다. 오직 해탈이 있어야 궁극적으로 항상 즐거울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스스로 생각하건대, 이제 비로소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구의 분한(分限)을 얻어 아라한을 이룬 듯하니, 마땅히 부처님께 대한 은혜를 알고 은혜를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옛날에 저에게 반 자리[半坐]를 나누어 주시고, 오늘 다시 4중 가운데서 대승법의 물로 저의 정수리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 때에 무리 가운데 비구의 외모와 형식을 갖춘 사람이 있었고, 혹은 우바새의 외모와 형식을 지닌 사람과 혹은 우바새가 아닌 외모와 형식을 지닌 사람이 있었는데, 옆으로 기대거나 아래로 숙이거나 위를 우러러 보거나 하였으니, 일체가 모두 마군의 소행이었다.

그 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이 대중은 모든 찌꺼기를 떠나서, 견고하고 진실함이마치 전단나무 숲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무리 가운데 저들이 어떻게 머물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대가섭에게 물어보아라.”

아난이, “예. 좋습니다. 그에게 묻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곧 가섭에게 물었다.

“이 무리 가운데 저들이 어떻게 머물고 있습니까?”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마군의 권속이며 마군과 함께 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내가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여래께서 멸도하신 뒤에 좋은 방편으로 바른 법을 호지(護持)하되 밭을 잘 지키는 것같이 하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말하기를 ‘차라리 땅덩이를 어깨에 지겠다’라고 했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널리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뒤에 바른 법을 호지하는 일을 감당하되 법이 다할 때까지 하라’ 하셨습니다. 제가 대답하기를, ‘저는 40년 동안 바른 법을 호지하는 것은 감당하겠습니다’라고 하니, 부처님께서 꾸짖으시며, ‘무엇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는가? 법이 다할 때까지 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우선 마군을 찾아보아라. 만일 찾을 수 있다면 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가섭이 곧 천안(天眼)으로써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하였다. 마치 사위국의 어떤 농부가 그의 아들을 잃어버려 대중 가운데에서 아들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피로하여 돌아온 것과 같았다. 가섭이 천안으로 대중 가운데서 마군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것이 또한 이와 같았다.

그는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악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80명의 성문도 모두 ‘할 수 없다’라 말하며, 또한 현호(賢護) 등5백 보살을 시켜 한 보살, 즉 일체세간락견(一切世間樂見)이라는 보살을 제외하고 악마를 찾게 했으나 또한 얻지 못하였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법이 멸하려 할 때에 남은 80년 동안 바른 법을 호지하는 임무를 감당할 수 없을 테지만, 남방의 보살은 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마땅히 현호보살의 5백 대중 가운데 최후에 구하여라.”

가섭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마땅히 구하겠습니다.”

일체세간락견리차(一切世間樂見離車) 동자를 구하여 얻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가 그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악마를 찾도록 권하고 청하여라.”

그 때에 가섭이 80인의 큰 성문들과 현호 등 5백 보살과 함께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에게 청하였다.

“그대 동자여! 세존께서 천거하셨으니, 악마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동자가 대중 가운데서 가섭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제 악마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80인의 모든 큰 성문들과 현호 등 5백 보살마하살과 문수사리와 관세음과 대세지와 멸제악취(滅諸惡趣)와 미륵보살 등은 무엇 때문에 찾지 않고 저더러 찾으라 하십니까? 마땅히 그들이 먼저 찾게 하고, 그런 뒤에 나에게 찾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섭이 말하였다.

“악마를 항복시키면 복이 없겠는가?”

동자가 대답하였다.

“가섭이시여, 그대가 복이 있음을 안다면 마땅히 스스로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 가섭이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동자가 무엇이라 말하였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동자가 말하기를, ‘모든 대덕이 먼저 하시고 난 다음에 제 차례가 올 것입니다. 저는 속인이며, 성품도 못났습니다. 이 모든 대덕, 즉 80명의 성문과 현호 등 5백 명의 상수(上首)가 모두 먼저입니다. 그런 뒤에 제 차례가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모든 성문과 현호 등이 찾아보았으나 모두 찾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저 농부가 아들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것과 같아서, 모두 찾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한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 『대법고경』을 듣고 내가 멸도한 뒤에 40년 동안 지금처럼 바른 법을 잘 호지해야 할 것이다. 큰 법고를 두드리고 큰 법라를 불며, 큰 법회를 베풀고 큰 법당[大法幢]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한 뒤에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가 정법이 멸하기까지 80년 남았을 때에, 5개의 밧줄로 저 악마와 그의 권속을 작은 토끼 묶듯이 결박할 것이다. 널리 『대법고경』을 외치며, 큰 법고를 치고, 큰 법라를 불며, 큰 법회를 베풀며, 큰 법당을 세울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느 때에 해당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정법이 멸하기까지 80년 남았을 때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악마를 보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동자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악마를 모든 대중에게 보여주어라.”

그 때에 동자가 부처님을 우러러 뵈옵고, 곧 손가락으로 악마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악마를 보니, 다른 곳에서 와서 모든 보살처럼 비구의 형상을 꾸미고 대중 가운데 앉아 있구나.”

대중이 모두 보니 그가 5개의 밧줄에 매여 있었다. 악마가 동자에게 말하였다.

“동자여! 내가 이 경에 대하여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3번 말하였다.

그 때에 세존이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와 보살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대가섭은 내가 멸도한 뒤 이미 40년 동안 정법을 호지할 수 있었지만, 그대들 가운데 누가 멸도한 뒤에 최후까지 정법을 호지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3번 말씀하셨으나 할 수 있다는 사람이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함부로 못난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내가 이 대중 가운데 많은 제자를 두었으니, 내가 멸도한 뒤에 능히 바른 법을 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을 말할 사람은 현호 등 5백 보살 가운데 최후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여, 내가 멸도한 뒤에 큰 법고를 치고 큰 법라를 불며, 큰 법회를 베풀고 큰 법당을 건립하여라.”

그 때에 동자가 곧 마군을 놓아주었다. 때에 모든 대중이 동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수기를 받으셨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 가섭은 밭 지키는 농부에게 좋은 방편이 없는 것처럼, 이 경을 호지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제 이 동자가 이 경을 듣고 잘 독송하여 지금 잘 호지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할 것이다. 항상 범부의 몸으로 나타나서 7지에 머물 것이다. 정법이 멸하기까지 80년 남았을 때 남방 문다라(文茶羅)나라 대파리촌(大波利村) 선방편(善方便) 강가의 가야리(迦耶梨)란 집안에 태어날 것이다. 당연히 비구가 되어 나의 명호를 지닐 터인데, 좋은 방편으로 밭의 모종을 지키는 이와 같이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느리고 게으른 중생 가운데서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이 심오한 경을 얻어 읽고 외우며 내용을 이해하고 통달하여, 승가(僧伽)를 청정케 하고, 먼저 받았던 본래의 부정한 것을 버리게 『대법고경』을 말해줄 것이다. 두 번째로 『대승공경(大乘空經)』을 말하여 주며, 세 번째로 중생계ㆍ여래상주의 대법고경을 말하여 주되, 큰 법고를 치고 큰 법라를 불며, 대법회를 베풀고 큰 법당을 건립할 것이다. 내 앞에서 큰 서원[弘誓]의 갑옷을 입고 백 년의 수명이 다하도록 항상 법우(法雨)를 내리며, 이 경을 설명할 것이다. 백 년이 꽉 차면 큰 신력을 나타내어 열반에 드는 형상을 보이면서 이렇게 수기를 말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제 여기에 이르셨으니 모두가 마땅히 우러러 보고 공경하며 예배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여래는 상주하고 안락하니, 모든 어진 사람[仁者]은 마땅히 진실한 항상됨과 즐거움[常樂]을 관찰하여 내가 말한 것처럼 되게 해야 한다.’ 그 때에 공중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몸을 나타내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이와 같도다! 이와 같도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일체는 모두 그 좋은 말을 믿어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몇 가지 공덕을 성취하면 여래의 상주하며 파괴되지 않는 법신을 볼 수 있으며, 임종의 때에 큰 신력을 나타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8가지 공덕을 성취한 사람은 현전(現前)에 여래의 상주하시고 파괴되지 않는 몸을 볼 수 있다. 무엇이 8가지 공덕인가? 첫째는 이 심오한 경을 말하되 마음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3승의 3가지 법[說]을 말하되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마땅히 교화하여야 할 사람을 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만일 승단(僧團)이 무너지면 화합케 하여 한 맛[一味]8)을 이루는 것이다. 다섯째는 끝내 비구니ㆍ여인ㆍ황문(黃門)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는 국왕과 큰 힘이 있는 이에게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는 항상 선정(禪定)을 즐기는 것이다. 여덟째는 부정(不淨)함과 무아를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취해야 할 8가지 공덕이다.

다시 4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4가지 일인가? 첫째는 법을 잘 간직하는 것이다. 둘째는 항상 스스로, ‘좋구나! 내가 지금 행한 기분 좋은 큰 선행이여’라고 기뻐하는 것이다. 셋째는 스스로가 귀의하고, ‘내가 좋은 이익을 얻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넷째는 여래의 상주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굳게 믿어 의심이 없으며, 밤낮으로 항상 여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 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현전에 상주하는 법신을 보고, 큰 신력을 나타낸 뒤에 목숨이 다할 것이다.

가섭아, 이러한 선남자ㆍ선여인이 사는 성(城)ㆍ읍(邑)ㆍ취락(聚落)마다 내가 이들을 위하여 법신을 나타내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선여인이여, 여래는 상주하신다. 그대들은 오늘부터 항상 이 경을 받아 간직하여 독송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하시오’라고 하며, 또 말하기를, ‘여래는 안락 상주하니, 바른 마음으로 희망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고 자기 마음을 굽히지 마시오. 꼭 알아두시오. 세존은 이와 같이 상주하는 것을 청정하게 희망하면 내가 몸을 나타낼 것이오’라고 하였다.

너 대가섭아, 마땅히 믿고 마땅히 살펴야 한다. 만일 이와 같이 법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를 보겠는가? 어떻게 신통으로 나타내 보이겠는가? 마치 내가 성문승에게, ‘비구가 한 법을 버릴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보증하여 아나함[阿那舍]의 지위를 얻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그가 행한 공덕으로 성취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또 내가 이전에 ‘계행을 지니는 비구는 종신토록 천신이 항상 따르면서 돌보아준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제 한 몸 챙기기에 골몰하지 말고, 세속을 버리는 마음을 닦아 신념처(信念處)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또 가섭아, 내 이름을 지니는 비구는 항상 승가를 청정케 해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을 제도(濟度)할 때에, 실컷 계를 범하는 탐욕스런 까마귀와 같은 무리에게는 저 교묘한 방편으로 4법을 수호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현호 등 5백 보살은 앞서 감당할 수 없다 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감당하지 못한다. 내가 멸도한 뒤에 최후까지 법을 보호하고, 내 이름을 지니는 비구가 제도하는 법을 행할 때에, 맡은 일을 소홀히 하고 게으른 비구들을 제도하되, 가까이하여 공양하고 그에게 경전을 주며 호흡[消息]을 돕고 지켜준다. 소를 기르는 법과 같으니, 복종시킬 때를 안 뒤에 조복(調伏)시킨다. 만일 제도하고 조복시켜도 고치지 않으면 곧 그를 버려서, 독화살이 착하고 청정한 사람을상하지 못하게 한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청정한 행을 하는 비구가 저 사람 때문에 계를 범하지 않게 해야 한다. 저 그릇된 법을 말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당연히 공경하지 않아야 한다. 함께 법으로 모이는 포살(布薩)ㆍ자자(自恣)ㆍ갈마(羯摩)ㆍ승사(僧事)들을 일체 함께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 왕이 적국을 무찌르는 것과 같이 그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편으로 저들을 조복시킨 뒤, 백 년 동안 항상 법우(法雨)를 내리며, 대법고를 치고 대법라를 불며, 대법회를 베풀고 대법당을 건립할 것이다. 큰 신력을 보이고, 목숨이 다하면 열반에 들 것이다.

일천 부처님을 지나고 다시 62겁 동안 백천의 연각과 8여래가 열반에 드심을 지나고 난 뒤에 불도를 이루니, 이름이 지적광명(智積光明)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다. 그 때에 내 이름을 지니고 있을 비구는 곧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이니 이 땅에서 등정각을 이룰 것이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위 없는 보리는 이와 같이 얻기 어렵다. 가섭아, 이것을 범인(凡人)들이 얻을 수 있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한 불국토에 한 부처님이 불사를 베푸신다. 제2, 제3의 불국토 또한 이와 같다. 마치 한 겨자씨 안에 많은 세계가 있는 것과 같다. 돌아다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누가 가지고 왔는지, 누가 나를 여기에 두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 마땅히 아는 것을 따라서 순서대로 불사를 지어도 이와 같이 나를 아는 이가 있기도 하고 모르는 이도 있다. 이 하나의 세계에도 기도굴산(耆闍崛山)에 석가모니불이 있다. 곧 이 가운데 미륵불이 계신다. 이 세계에서 혹은 겁이 불타는 것을 나타내며, 혹은 설법하는 것을 나타내니, 이와 같이 기이하고 특별한 것은 매우 드문 것이다.

다시 어떠한 ‘최고로 기이하고 특별한 것’이 있는가?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는 범속(凡俗)한 집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는 집은 모두가 보살이라고 이르는 일이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공양하고 모시는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종친(宗親)이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말하기를, ‘우리 집안[種姓]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 태어났다’라고 할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을 전부 내가 보낸 것이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살마하살에게 만일 남은 4중이 권속이 되면, 모두가 『대법고경』을 듣고 전부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가섭아, 내가 옛날 먼 옛날에 비사리(毘舍離) 성에서 전륜왕이 되었고, 이름은 난제사나(難提斯那)였다. 그 때에 비사리성은 4천왕(天王)이 염부제에 내려온 것 같았고, 사바(娑婆)세계와 같았으며, 그 나머지 천하도 또한 이와 같았다. 이와 같이 삼천 대천 세계에서 나의 수명은 헤아릴 수 없었다. 내가 이와 같이 전륜성왕이 되어, 아승지의 매우 훌륭한 보시와 여러 공덕을 행하였고, 계행을 청정히 지니고 모든 선행을 닦으며, 이와 같은 한량없는 공덕을 모았다. 그러나 만일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 1승인 대법고경을 말하는 것을 듣고 웃으며 지나가거나 한 번 생각하기만 해도, 그 얻은 공덕이 앞의 복덕보다 훨씬 더 나으니,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며, 셈하거나 비유하여 헤아리지 못할 정도이다.

마치 이름이 염소[焰炤]라는 주문의 왕[呪王]이 있었는데, 이 주문을 한 번 외우면 넉 달을 잘 호지한 것과 같다. 가섭아, 마땅히 알아두어라. 세간의 범속한 주문의 위세도 이와 같은데, 대법고경을 한 번 읽으면 그 힘으로 능히 수명이 다하도록 호지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어떤 이가 능히 이 경을 공양(供養)하면, 이 모든 중생에게 위 없는 깨달음의 결정된 인(因)을 지어 줄 것이며,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러 이 경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때에 모든 대중들이 같은 소리로 외쳤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우 뛰어나신 세존이시여, 이제 이 동자는 부처님의 명호를 지니는 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니, 만일 열반에 든다면 기타 숲의 신(神)이 의지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남방에서 와서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렀다가 열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올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그에게 가서 몸을 나타낼 것이다. 먼저 이 경을 보낸 다음에야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이 경이 그의수중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가 곧 물러나려 마음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에게 조복시킬 중생이 있으면, 나는 대중과 함께 그 앞에 가서 머물 것이고, 그는 나를 볼 것이니, 즉시 돌아가 그를 맞이하면 이미 열반에 들 것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중생을 제도하는 곳마다 열반에 들 것이다.”

그 때에 하늘 제석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아비만유(阿毘曼儒)였는데, 신통을 타고 이곳에 이르렀다. 그는 나이는 어리나 참된 마음이 청정하고 대승을 믿고 즐기었다. 오직 한 사람뿐이어서 아무도 대적할 사람이 없었으니, 천인(天人) 가운데서 대승의 매우 심오한 경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탈의 인연을 해설하고 부처님의 수기를 얻었다.

때에 모든 대중이 같은 소리로 게송으로 말하였다.

기이하구나
일체세간락견이여
비구의 형상을 하고
대법고를 두드리며
불법을 호지(護持)하여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구나.



열반에 든 뒤에
세간은 허공이 되고
그가 멸도한 뒤에
그와 같은 사람이 없구나.



이와 같은 비구는
세간에서 얻기 어려우니
세간을 위하여
궁극의 도를 말씀하셨네.

그 때에 가섭과 아난과 현호보살 등 한량없는 대중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닫들어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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