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고경(大法鼓經) 01. 상권

대법고경(大法鼓經)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번역

대법고경(大法鼓經) 01. 상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실 적에 큰 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또한 백천(百千)의 큰 보살과 많은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들과 또 백천의 우바새ㆍ우바이들과 사바세계의 주인 범천왕(梵天王)과 하늘의 제석(帝釋)과 4천왕(天王)들과 시방 세계의 무량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과 함께하셨다.

그 때에 여래께서 4중에게 이렇게 설법하셨다.

“유(有)가 있으면 고락(苦樂)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이 없다. 그러므로 고락을 여의는 것이 곧 열반의 으뜸가는 즐거움이니라.”

그 5백 성문 비구는 모두가 아라한이었다. 모든 번뇌가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으며 마음의 자재를 얻으니, 비유하자면 큰 용과 같았다. 마음에 좋은 해탈을 얻고 지혜에 좋은 해탈을 얻어, 지을 바를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을 다 벗었으며, 자기의 이로움을 얻어 모든 현실[有]의 매듭을 다하였으며, 바른 지혜로 마음을 해탈하여 일체에 마음이 자재한 으뜸가는 바라밀을 얻었다. 무량한 학인(學人)이 있으니, 모두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얻었으며, 유루법(有漏法)을 성취한 무량한 비구들도 있으며, 무량한 아승지 공덕을 성취한 보살마하살도 있었다. 시방에서 온 이도 산수(算數)와 비유로 미칠 수 없으며, 또한 일체 성문ㆍ연각이 능히 알 바도 아니었다. 문수사리보살과 대력(大力)보살ㆍ관세음보살ㆍ 미륵보살과 이러한 상수(上首) 보살마하살을 제외하고도 무량 아승지 대승이 있으니 비유하자면 땅에서 나온 초목과 같았으며, 다른 세계에서 온 보살들도 이와 같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또 비구니 차마(差摩, Khemā)가 비구니의 무리와 함께 하였으며, ‘미가라의 어머니[鹿子母]’라 불리는 우바이 비사가(毘舍佉, Visakha)와 말리(末利) 부인이 각각 수많은 권속과 함께 하였으며, 수다타(須達多, Sudatta) 장자는 모든 우바새와 함께 하였다.

그 때에 세존이 대중 가운데서 유(有)ㆍ비유(非有)의 법문을 말씀하셨다. 그 때에 바사닉(婆斯匿)왕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하되 ‘나는 지금 세존이 계신 곳에 나아가리라’하고는 곧 떠나, 북을 치고 소라[貝]를 불면서 부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갔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짐짓 아난에게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북과 소라 소리가 나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했다.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나아오면서 북을 치고 소라를 부는 소리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또한 큰 법고(法鼓)를 쳐라. 내가 지금 대법고경(大法鼓經)을 강론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대법고경이라는 이름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법고경이라 부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어떻게 알겠는가? 여기에 모여 온 모든 큰 보살들도 모두 이 대법고경의 6자 명호를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네가 듣거나 알 수 있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처음입니다. 이 법문의 명호는 진실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 아난아. 진실하여 틀림이 없단다. 아난아, 이 대법고경은 세간에 드물게 있으니, 마치 우담발화(優曇鉢華)와 같단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은 이 법을 갖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3세의 여러 부처님이 모두 이 법을 가지셨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그렇다면, 사람 중에 뛰어난 이들인 저 여러 보살들은 무슨 까닭으로 모두 여기에 모였으며, 저 모든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스스로 그 나라에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아란약(阿練若, Aranya)1)의 비구가 산 속 굴에 살다가 어느 때 마을에 들어가 막걸식하려 할 적에 길에서 사람이나 짐승의 뒤섞인 시체를 보게 되었다고 하자. 보고나니 혐오하는 마음이 생겨 걸식을 단념하고 돌아오면서 ‘오호라 괴롭구나! 나 또한 이와 같은 일을 당하겠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때에 그는 마음이 편해져서 ‘내가 다시 가서 시체를 관찰하여 혐오하고 멀리하는 마음을 더욱 강하게 하자’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그 마을에 가서 시체를 찾아 부정상(不淨想)을 닦고, 보고 관찰하여 아라한의 과(果)를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세계의 모든 부처님은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부정(不淨)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불국토의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저 모든 여래께서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어려운 행(行)을 하시는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5탁(濁) 국토에 태어나시어 괴로운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편으로 대법고경을 말씀하시는구나. 그러므로 모든 선남자는 이렇게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저 모든 보살들은 모두 나를 만나 공경하고 예배하고자 여기에 모인 것이다. 여기에 온 뒤에 어떤 이는 초주(初住)를 얻거나 10주(住)를 얻었다. 그러므로 대법고경은 만나기가 매우 어렵고, 그러므로 시방의 큰 보살의 무리가 법을 듣기 위하여 와서 모인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좋습니다. 모두 잘 오셨습니다. 저들 모두 이 얻기 어려운 법을 얻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심오한 경전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 잘 오셨다[善來]고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저들 모두가 잘 온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은 여러 여래의 비밀스런 법장(法藏)이니, 매우 심오하고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믿기 어렵다. 그러므로 아난아, 모두 잘 오셨다고 말하지 말거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사닉왕이 전쟁터에 임하였을 때에 큰 전고(戰鼓)를 치면, 듣는 이가 모두 화살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바사닉왕이 전고를 칠 때 저들 모두가 북 소리를 듣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겁 많고 약한 자는 두려워하니 죽을 만큼 혹은 죽음에 가까울 만큼 두려워 한다. 이와 같이 아난아, 이 대법고경의 이름은 2승(乘)들이 믿지 않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저 왕이 싸움에 임하여 왕의 큰 북을 치는 것과 같이 이 큰 법고는 모든 부처님의 비밀이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고 나서야 강론할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대가섭(大迦棄)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비구는 청정순일(淸淨純一)하고 진실하며 강하여 모든 찌꺼기를 여의었으므로, 넉넉히 이 대법고경을 들을 수 있지 않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만일에 비구가 계(戒)를 범하고 율(律)을 어기면, 대목건련(大目犍連)이 그를 질책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리가 있다면 저도 동행(同行)하지 않을 터인데, 부처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회중들은 전단나무숲과 같아서 청정하고 순일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이 회중이 모두 청정ㆍ순일하더라도 뜻이 감추어진 설법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뜻이 감추어진 설법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뜻이 감추어진 설법이란 여래가 결국에는 열반한다고 말하나 사실은 여래가 상주(常住)하여 멸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열반에 든다는 것은 헐고 무너지는 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수다라(修多羅)는 가리움을 여의고 청정하여 분명하게 드러난 음성으로 백천의 인연을 분별하고 열어 보인다. 그러므로 가섭아, 이 모든 대중을 다시 관찰해야 할 것이다.”

이때에 대가섭이 다시 저 모여온 이들을 관찰하고 “어떻게 왔느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찰나 간에 믿음이 낮은 중생과 성문ㆍ연각과 초업(初業)의 보살은 스스로 견디기 어려워 물러갈 마음이 생겼다. 비유하자면 왕가(王家)의 역사(力士) 같은 것이다. 무리 가운데 유명한 천명의 장사가 있는데, 왕가의 역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북을 치며, ‘누가 감히 나하고 힘을 겨루겠는가?’ 라고 외치면 그를 감당하지 못할 이들은 잠자코 앉아서 ‘나는 감히 저 사람과 힘을 겨룰 수가 없다. 어쩌면 다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저 무리 중에 감히 대적할 사람이 없으면 ‘용맹하고 굳세어 굴복시키기 어려운 역사’라 부르며, 큰 승리의 깃발을 세운다. 이와 같이 낮고 못난 중생이나 성문ㆍ연각과 초업의 보살이 ‘나는 설법을 듣고 받아들일 수 없다. 여래는 이미 열반에 드셨는데 다시 상주불멸(常住不滅)이라 설법하시니, 일찍이 듣지 못한 말씀을 들었다’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사람은 긴 밤 내내 열반에 드는 것에 대하여 헛된 소견만을 닦다가 감추고 가리워지지 않은 청정한 경을 들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저 시방에서 온 성문ㆍ연각과 초업의 보살들을 백천만억 아승지 분(分)으로 나누면 나머지 1분(分)이 머무니, 그 보살마하살은 법신이 상주하여 변하지 않음을 믿고 이해하는 사람이라 할수 있다.

그리하여 편안히 머물러 여래의 모든 장경을 수지(受持)하며, 또한 능히 해설하고 세간을 안위하며, 숨고 감추어진 모든 말을 해석하여 알며, 요의(了義)2)와 불요의(不了義)경을 모두 잘 관찰하였고, 금계(禁戒)를 파괴하는 중생을 항복시키고 청정하고 덕 있는 이를 존경하고 섬기었다. 또한 마하연(摩訶衍, mahayana)에서 크고 맑은 믿음을 얻어 2승(乘)에 대하여 기괴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러한 ‘크고 넓은[方廣大 ]’ 경을 제외한 다른 경을 말하지 않으며, 오직 여래의 상주하심과 여래장(如來藏)이 있음을 말하되 공(空)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신견(身見)을 공하게 하지 않아 저 일체 유위의 자성을 공하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대중에게, ‘모두가 이 대법고경의 방광일승(方廣一乘), 즉 대승의 믿기 어려운 경을 듣고자 하는가?’라고 묻되, 이와 같이 세 번을 물어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웃통을 벗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 쪽으로 세 번 돌고나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모두 이 대법고경을 듣고자 하는가? 여래께서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널리 1승을 말씀하실 것인데, 이른바 대승이어서, 모든 성문ㆍ연각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렇게 3번 외치니, 그들은 모두 대답하였다.

“즐거이 들기를 원합니다. 대가섭이시여, 우리 모두는 듣기 위하여 왔으니,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법고경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가섭이 다시 말하였다.

“그대들은 무엇을 믿는다고 말할 것인가?”

그들이 즉시 대답하였다.

“비유하자면 나이가 겨우 20살인 선비에게 100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셔도 우리들은 그렇게 따라 믿을 것입니다. 하물며 바른 법을 말씀하시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여래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며, 안목(眼目)이 청정하여 두루 비추시되 걸림이 없으시고, 그 불안(佛眼)으로써 저희들의 마음을 관찰하여 아시기 때문입니다.”

가섭은 찬탄하였다.

“참으로 좋은 말이로다! 그대들 모든 현자(賢者)여, 대법고경을 듣고 지니거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나이가 겨우 20살인 선비에게 100살짜리 아들이 있는 것 같으니, 대법고경 또한 그와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래는 열반하였는데 다시 상주한다 하며, 일체는 무아(無我)인데 다시 아(我)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직 부처님만 아실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들도 이와 같이 받아서 간직하겠습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 바랍니다. 대법고경을 말씀하시고 큰 법고를 치시고 큰 법라(法螺)를 불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구나! 가섭아. 너는 지금 이 대법고경을 자세히 듣거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저희들의 경계(境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 크게 경대(敬待)받은 것입니다. 무엇을 일러 경(敬)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일찍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너도 와서 함께 앉자’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저는 마땅히 은혜를 알아야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가섭아. 그러한 뜻으로 내가 너를 경대하였다. 가섭아,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이 4병(兵)을 잘 기르는 것과 같다. 만일 전투가 벌어졌을 때에는 큰 전고(戰鼓)를 치고 큰 전쟁 나팔을 불며 적군을 상대함에 굳세게 할 것이다. 은혜롭게 길러주었기 때문에 싸울 때에 힘을 아끼지 않고 적을 무찔러 국경을 편안케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여.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대가섭이 대법고경을 호지(護持)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자리를 나누어 앉았으니, 그는 내가 행하던 바를 행하여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대법고경을 널리 알릴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세존의 입에서 나온 맏아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이 여러 왕자를 가르쳐 모든 명처(明處)를 배우게 하여, 그들이 나중에 왕의 대를 잇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여, 내가 멸도한 뒤에 가섭 비구가 이 경을 호지함도 또한 그럴 것이다. 또한 가섭아, 바사닉왕이 여러 왕과 더불어 원수가 되어 서로 공격하게 되면, 그 때에 모든 전사(戰士)들, 즉 코끼리ㆍ말ㆍ수레를 타거나 발로 걷는 4종류의 병사들이 큰 북 소리를 듣고 마음에 두려워하지 않고 갑옷과 무기로 잘 무장할 것이다. 때에 왕이 은혜를 베풀어 많은 물건을 주고,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 더욱 좋은 보배와 성읍을 하사하며, 만약 적군에게 승리를 거두면 흰 비단을 씌워주고 봉하여 왕으로 삼는다. 이와 같이 가섭아, 나의 모든 성문 비구ㆍ비구니와 우바새ㆍ우바이가 계율과 같이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3)를 배우며, 또 율의(律儀)를 성취(成就)하여 잘 머물면, 여래는 그에게 인천(人天)의 안락을 줄 것이다. 대공(大功)이 있어 네 가지 마군[魔]를 항복시킨 사람에게는 4진제(眞諦)로 해탈하는 흰 비단을 그 머리에 씌워줄 것이다. 만약 더욱 믿고 알아서 불장(佛藏)의 대아(大我)와 상주하는 법신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여래께서 그 때에 살바약(薩婆若)4)의 물을 그 정수리에 부어 주고 대승의 흰 비단을 그 머리에 씌워 줄 것이다. 대가섭아, 내가 지금 이와 같이 대승의 흰 비단을 네 머리에 씌워 줄 것이니, 너는 미래의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서 마땅히 이 경을 호지해야 한다. 가섭아 명심하여라. 너는 내가 멸도한 뒤에 이와 같이 이 경전을 잘 호지하여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높으신 가르침대로 할 것입니다.”

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저는 오늘부터 멸도할 때까지 이 경을 호지하고 널리 말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구나! 이제 그대들을 위해 대법고경을 말해주겠다.”

그때에 허공에서 하늘과 용들이 같은 소리로 찬탄하였다.

“참으로 잘 했습니다! 가섭이여. 오늘 모든 하늘은 하늘꽃[天華]을 많이 내리고 모든 용왕은 감로수(甘露水)와 미세한 가루향을 내려 일체 중생을 안위하고 즐겁게 할 것이니, 세존께서 세우신 법의 맏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때에 하늘과 용의 무리가 같은 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왕은 사위성에서
북을 치고 전라(戰蠡)를 불며
법왕은 기원(祇洹) 숲에서
커다란 법고(法鼓)를 치시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질문[問難]의 방망이로 대법고(大法鼓)를 두드려라. 여래ㆍ법왕께서 너를 위하여 말할 것이며, 천중천(天中天)께서 그대들의 의심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신대방광(信大方廣)이라는 비구가 있는데, 4중(衆)이 그 이름을 들으면 탐ㆍ진ㆍ치의 화살이 모두 빠져나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섭아,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에게 상약(上藥)이라는 의원[耆婆5)子]이 있는 것과 같다. 만일 바사닉왕이 전쟁을 할 때에 상약에게 ‘그대는 지금 빨리 중생들을 위하여 화살을 뽑아내는 약을 가져오라’라고 말하면, 상약은 곧 소독하는 약을 갖고 온다. 왕이 그것을 전고(戰鼓)에 바른다. 약을 바르거나 훈증(薰蒸)하거나 두드리는데, 저 중생 가운데 독화살을 맞은 자는 그 북소리를 듣고나서 한 유순(由旬)이나 두 유순 사이에 화살이 모두 빠져나온다. 이와 같이 가섭아, 만일 어떤 이가 신방광(信方廣) 비구의 이름을 들으면 탐ㆍ진ㆍ치의 화살이 모두 빠져나간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 경을 계기 삼아 바른 법을 더 넓히고 그것으로써 ‘현전의 법'[現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큰 열매를 얻는 것이다. 대가섭아, 너는 잘 보아야 한다. 저 무심(無心)한 북에다 무심한 약을 바르거나 훈증하거나 두드려도 이 힘이 중생을 이롭게 한다. 하물며 저 보살마하살인 신방광비구의 이름을 듣고도 중생의 3독의 화살을 제거하지 못하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보살의 이름만 들어도 중생의 3가지 독화살을 제거할 수 있는데, 더욱이 세존의 명호와 공덕을 칭송하여 ‘나무석가모니’라 말하거나 석가모니의 명호와 공덕을 찬탄한다면 중생의 3가지 독화살을 뽑아내지 못하겠습니까? 이 대법고경을 듣고 중생을 위로하고 게송이나 구절로써 설명하여 더욱 널리 알린다면 3가지 독화살을 뽑지 못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계행이 청정한 비구가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면 본원(本願)인 까닭에 일체의 부처님이 이 법을 모두 소유하시니, 이른바 짓지 않고 일으키지 않고 멸하지 않는 대법고경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너는 후생(後生)에 또한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4중(衆) 가운데 네 이름을 듣는 사람은 3가지 독화살이 모두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너는 지금 나에게 대법고경을 물어, 내가 멸도한 뒤에 세간에서 오랫동안 호지하고 설명하거라.”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를 위하여 대법고경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법고경에 대해서 조금 물어보라.”

이때에 가섭이 곧 부처님께 여쭈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의심나는 것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유(有)가 있으면 고락(苦樂)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이 없다’라 하셨으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유’가 없다는 것은 이른바 열반 제일의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고락을 여의면 열반 제일의 즐거움을 얻는다.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면 이것은 ‘유’이니, 만일 ‘유’가 없다면 고도 낙(樂)도 없다. 그러므로 열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유’를 끊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의 유는 무상(無常)하며
또한 변하지 않음이 없노라
그 유가 있으면 고락이 있고
유가 없으면 고락도 없노라.



위(爲)가 없으면 고락이 없고
위가 있으면 고락이 있노라
모든 유위(有爲)를 즐거워 말고
또한 가까이 익히지 말아라.



사람이 안락을 얻으면
도리어 다시 괴로움에 떨어지며
열반에 이르지 못하면
안락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리라.



그 때에 가섭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중생이 유를 행하지 않는 것이
열반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라네.


그들은 이름[名字]만을 즐거워하니
즐거움을 받는 이 없으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항상된 해탈은 이름이 아니어서
묘한 색(色)이 조용히 머무르니
성문이나 연각이나
보살들의 경계가 아니라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색’이면서도 상주(常住)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이제 비유로 말해주겠다. 비유하자면 남방 마두라(驀邏)에서 온 선비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묻자, 선비가 ‘마두라에서 왔소’라고 대답했는데, 그 사람이 곧 다시 묻기를 마두라가 어느 쪽에 있는가’라고 하면, 그 선비는 곧 손으로 남방을 가리킬 것이다. 가섭아, 그 사람이 여기에서 믿음을 얻지 않겠느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선비가 직접 그곳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내가 보았기 때문에 너는 나를 믿을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어떤 선비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는 것과 같으니
나 또한 이와 같이
명자(名字)로 해탈을 설명하네.



비유하자면 어떤 선비가
멀리 남방에서 온 것과 같으니
나 또한 이와 같이
저 열반에서 나왔다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가섭아, 뜻[義]을 본 사람은 인연을 기다리지 않지만, 뜻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인연을 기다린다. 이와 같이 가섭아,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항상 무량한 인연을 가지고 해탈을 드러내 보이신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인(因)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인’이란 일[事]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연(緣)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연’이란 기댐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다시 드러내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라 비유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부모를 통해 아이를 낳았다면 어머니는 인이요, 아버지는 연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인연으로 아이를 낳으니, 이와 같이 인연으로 머무는 법을 이름하여 성(成)이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성’이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성이란 세간에서 성취함을 가리킨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세간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화합하여 세운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중생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이 모여서 세워진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법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이 아닌 것[非法]도 법이며, 법 또한 법이 아니다. 법은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두 가지인가?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색(色)과 비색(非色)이니 다시 제3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은 어떠한 형태를 취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이란 색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이 아닌 것은 어떠한 형태를 취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이 아닌 것도 역시 색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법과 법 아닌 것이 색이 아니며 상(相)도 없다면, 무엇을 법이라 하며, 무엇을 법 아닌 것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이란 열반이요, 법 아닌 것이란 ‘유’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에 법과 법 아닌 것이 색이 아니며 형상도 없다면, 저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알며 무엇을 알며, 어찌하여 저 형상을 압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생사 가운데 살면서 가지가지 복덕과 청정한 선근(善根)을 익히면, 이것은 바른 행[正行]이다. 만일 그가 이러한 법을 행하면 일체 청정한 형상이 생겨날 것이니, 이 법을 행하는 사람을 법다운 중생이라 한다. 중생이 생사 가운데 살면서 가지가지 복스럽지 못하고 악한 일을 행하면, 이는 착하지 못한 업이다. 만일 그가 이러한 그릇된 법을 행하면 온갖 악하고 부정한 형상이 생겨나니, 이러한 그릇된 법을 행하는 사람을 법답지 못한 중생이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중생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란 4계(界)를 거두어 세운 것이니, 이른바 안[內]의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 및 입(入)ㆍ처(處)ㆍ5근(根), 그리고 13연기지(緣起支)[『무진의경(無盡意經)』 가운데 “부정한 사유에서 무명이 생긴다. 그러므로 13지(支)이다”라고 했다.]ㆍ수(受)ㆍ상(想)ㆍ사(思)ㆍ심(心)ㆍ의(意)ㆍ식(識)을 이르며, 이들을 중생법(衆生法)이라 하니, 가섭아, 알아 두거라. 이것을 일체법(一切法)이라고도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가운데 어떤 법을 중생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 한 법만을 중생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섭아,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의 북과 같다. 무엇을 북이라 하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말씀하신 북은 가죽과 나무와 북채, 이 세 가지 법이 화합한 것, 이것을 북이라 부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화합하여 세운 것을 중생이라 부른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북 소리를 내는 것은 북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북 소리를 내는 것을 떠나서도 북은 소리를 갖고 있으니, 바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북은 법입니까, 법 아닌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북은 법도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라 부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닌 것을 무기(無記)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기법(無記法)이 있다면, 세간에는 당연히 3법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무기법의 형상이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것과 같다. 남자도 아니요 여자도 아니어서 ‘불남(不男)6)’이라고 하니, 무기법의 형상 또한 이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면, 부모가 화합하여 아이를 낳되, 부모에게 중생의 종자가 없다면 부모의 인연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 중생의 종자가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 항상 불남(不男)인 경우도 이와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유하자면 바사닉왕이 적국과 싸울 때에 그의 모든 전사(戰士)들은 장부(丈夫)의 녹(祿)을 먹지만, 용맹하지 못한 사람은 장부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의 종자가 없는 이는 부모라 하지 못하니, 항상 불남인 경우도 이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이라 하셨는데, 무엇이 선법이며 무엇이 불선법이며 무엇이 무기법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즐거운 느낌은 선법이고 괴로운 느낌은 불선법이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기법이니, 이 3가지 법을 중생이 항상 접촉한다. 즐거운 느낌이란 이른바 천상과 인간의 오욕의 공덕이고, 괴로운 느낌이란 이른바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이며,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은 느낌이란 이른바 쇠버짐[白癬] 따위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즐거움에서 괴로움이 생겨나고 괴로움에서 괴로움이 생겨나니, 저것이 무기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유하자면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음식 때문에 질병이 생기는데, 음식은 즐거움이고 병은 괴로움이며, 쇠버짐 따위는 무기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괴로움과 즐거움을 무기라 한다면 부모와 자식 또한 무기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유하자면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 등의 하늘 내지 무상천(無想天)은 항상 아들의 법[子法]에 머무니, 선(善) 또한 이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受)ㆍ상(想)이 중생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비상비비상처는 당연히 중생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에게는 ‘행할 분수[行分]’가 있다. 내가 이 중생법을 말한 경우에는 무상천(無想天)을 제외한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은 색(色)입니까, 색 아닌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색도 아니며, 색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 법을 성취한 것을 중생이이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이와 같이 중생 아닌 법을 성취하여 따로 다른 중생이 있다면 당연히 무색천(無色天)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두 가지 세간법 즉, 색과 무색이 없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법도 색이 아니며, 법 아닌 것도 색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법과 해탈이 함께 하며, 법 아닌 것이 해탈과 함께 하는 것입니까? 무색천에도 해탈이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다만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뿐이다. 그러므로 무색천은 유위수(有爲數)이고 해탈은 무위법이며, 무색천(無色天)에는 색성(色性)이 있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일체 유위가 색이고 색 아닌 것은 무위이며, 무색천에는 색이 있다 하시니, 이는 부처님의 경계이지 저희들의 경계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이는 내 경계이지, 그대들의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해탈에 이르면 그들은 모두 색이 있으며, 해탈에도 또한 색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무색천이라 하는가? 이 하늘[天處]에서 짓는 바를 너는 알겠느냐? 가섭아, 어찌하여 유색천을 무색수(無色數)라 부르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의 경계가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해탈에 이르면 모두 색이 있으니, 너는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해탈을 얻는다면 다시 고락을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병든 중생이 약을 먹고 병을 여의면 다시 병이 나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만일 업이 있으면 반드시 병이 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업이 없는 사람도 병이 있겠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고락을 여의는 것이 해탈이다. 고락이 병임을 알아야 한다. 장부(丈夫)와 같이 한 사람은 열반을 얻은 사람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약 고락을 여의는 것이 해탈이라면, 업이 없으면 병이 다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세간의 즐거움이라 하는 것 그것은 괴로움이니, 거기에서 벗어나서 이와 같이 업이 다하면 해탈을 얻는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마침내 다하여 마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허공을 바다와 같다고 비유한다면 허공이 바다와 같겠느냐? 허공은 비유할 수가 없고, 해탈도 비유할 수 없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마치 무색계의 하늘에 색이 있으나 알지 못하며, 또한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며 이렇게 머물고 이렇게 유희(遊戱)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는 성문ㆍ연각ㆍ보살의 경계가 아니다. 해탈 또한 그러하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중생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중생이 스스로 지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복을 짓는 이는 부처이고, 악을 짓는 이는 중생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최초의 중생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상비비상 따위 무색계의 하늘은 누가 지었겠느냐? 어떻게 살며, 어떻게 머무르느냐?”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들의 모든 업에 대하여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업을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의 생사(生死)의 검은 것과 열반의 흰 것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업이 지은 것이다. 업이 무량한 법을 일으키고 선(善)도 무량한 법을 일으킨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업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무엇이 선에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업에서 일어나는 것은 유이고, 선에서 일어나는 것은 해탈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생명 없는 곳[無生處]에서는 어떻게 선에서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여여(如如)하여 다르지 않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선에서 일어난 경우 어떻게 생명 없는 곳에 이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업을 행해야 한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누구의 가르침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롯함이 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일체의 ‘비롯함이 없는 부처님’은 누구를 교화하시고, 누구를 가르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롯함이 없음’은 일체의 성문ㆍ연각이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세간에 태어난 어떤 선비가 지혜롭고 견문이 많아 사리불(舍利弗)과 같다고 하자. 밤이 새도록 생각하여도 부처님의 비롯함이 없음을 알지 못하며, 누가 가장 먼저인지 열반에 들었는지 중간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섭아, 대목건련 같은 이는 신통력으로 최초의 부처님 세계를 구하였으나 ‘비롯함이 없음’은 끝내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성문ㆍ연각 10지 보살이 미륵 등과 같더라도 모두 알 수가 없었다. 부처님이 본래 일어나신 것을 알기 어려운 것처럼 중생이 원래 일어난 것 또한 이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지을 이[作者]도 없으며 받을 이[受者]도 없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인(因)이 짓는 자이며, 받는 자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간은 다함이 있습니까,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일찍이 다한 적이 없으며, 다할 것이 없으며, 다할 때가 없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 한 터럭으로 큰 바닷물을 찍어내면 능히 다하게 하겠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하옵니다. 능히 다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 아승지 대겁의 때에 계라바(鷄羅婆)라는 부처님이 있었는데, 세상에 나오시어 널리 법다운 가르침을 베푸셨다. 그 때에 성 안에는 리차(離車)의 아들 일체세간락견(一切世間樂見)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백성을 교화하였다. 왕은 백천 권속과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오른 편으로 3번 돌아 공양을 드린 뒤에 부처님께, ‘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보살도를 얻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이 곧 보살이니, 다시 다를 것이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 중에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 될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란 곧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니, 먼저 여러 번 제석 범왕이 되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대는 이미 항하사 아승지 제석 범왕이 되었으므로 지금 전륜성왕이 되었습니다.’

때에 왕이, ‘제석 범왕은 어떠한 형상을 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대왕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석 범왕도 지금의 그대처럼 머리에 하늘관을 썼으나, 그의 장엄이 그대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색상(色像)이 장엄하고 뛰어나서 성문ㆍ연각ㆍ보살이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장엄하심처럼 그대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가섭아, 그 때에 전륜성왕이 다시 부처님께, ‘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성불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깨달음을 얻는 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법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령 대왕께서 그 복덕을 버리고 다시 범부가 되어, 한 터럭으로 큰 바닷물을 찍어내어 바닷물이 거의 말라서 남은 것이 소 발자취 같이 되면, 여래가 세상에 나오실 것이니 그 이름은 등광여래(燈光如來)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입니다. 그 때에 지자재(地自在)라는 국왕이 있을 것입니다. 등광여래께서 왕에게 장차 부처를 이루리라고 수기(授記)7)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그 때에 반드시 그 왕의 맏아들이 되어서 함께 수기를 받을 것입니다. 때에 그 여래께서, ‘대왕이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큰 바닷물이 마르려 할 때까지 그대의 아들로 태어나, 그 중간에 작은 왕이 되지 않고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교화하였습니다. 지자재 대왕이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이와 같이 용맹정진했습니다. 지자재여, 보리는 얻기 어려우니, 이 인연 때문에 비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자재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6만 명의 채녀(婇女)8)가 있었습니다. 단정하고어여쁘며 영락(瓔珞)9)으로 장엄하여, 모양이 천녀와 같았으나 침 뱉듯이 그것을 버렸습니다. 애욕이란 무상하고 위태로워 항상 되지 못함을 알고, ‘나는 출가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이 집 아님을 믿어 집을 버리고 도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처님께서 이 동자에게,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리니 명호는 석가모니이시고, 세계의 이름은 인(忍)이며, 너의 이름은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一切世間樂見離車童子)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정법이 멸하려 할 때가 80년이 남으면, 비구가 되어 부처님의 명호를 지니고 이 경을 선양(宣揚)하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할 것이다. 백 년의 수명을 마치면 안락국에 태어나 큰 신력을 얻고, 제8지(地)에 머물러 한 몸은 도솔천(兜率天)에 있고, 한 몸은 안락국(安樂國)에 있으며, 다시 한 몸을 변화하여 아일다(阿逸多) 부처님께 이 수다라(修多羅)를 물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에 지자재왕이 아들에게 수기하심을 듣고 기뻐하며 춤추면서, ‘오늘 여래께서 내 아들이 제8지를 얻을 것이라고 수기하셨다’고 할 것이다. 때에 그 동자가 수기하신 말씀을 듣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터럭으로 큰 바다를 찍어내어도 오히려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뜻이 무엇인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장사꾼이 돈을 세어 그릇 속에 두고 그의 아들이 울 때마다 한 푼씩 주어 그 그릇 안의 돈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도 큰 바닷물에서 한 방울 한 방울 줄어드는 것을 다 알며, 또한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십니다. 하물며 세존께서 중생의 큰 모임[大聚]이 다하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다만 모든 중생은 줄어들지 않음을일체의 성문ㆍ연각은 알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 아십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중생의 큰 모임은 다할 때가 없느니라.”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은 다함이 있습니까,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다함이 없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중생은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중생이 다함이 있다면 당연히 줄어듦[損減]이 있을 것이고, 이 수트라는 보람[義]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모두가 항상 머무르시는 것[常住]이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반에 드셔도 끝내 사라지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집이 무너지면 허공이 되니, 참으로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열반은 곧 해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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