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스님─집착함 없기를 배우라

집착함 없기를 배우라

효봉스님

사람마다 그 발밑에 하늘 뚫을 한 가닥 활로가 있는데,

여기 모인 대중은 과연 그 길을 밟고 있는가?

아직 밟지 못했다면 눈이 있으면서도 장님과 같아 가는 곳마다 걸릴 것이다.

보고 들음에 걸리고 소리와 빛깔에 걸리며 일과 이치에 걸리고 현묘한 뜻에도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그 길을 밟으면 이른바 칠통팔달이요 백천 가지를 모두 깨달아 밝히지 못할 것이 없고 통하지 못할 이치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 길을 밟고자 하거든 이익이 있거나 없거나 시장(市場)을 떠나지 말라.

이제부터 대중을 위해 용심할 곳을 지시하리라.

보리달마 존자는 인도로부터 중국에 오셔서 오직 한 마음을 말씀하시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부처로써 부처를 전하신지라 다른 부처를 말하지 않으셨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신지라 다른 법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 법이란 말로 할 수 없는 법이요, 그 부처란 취할 수 없는 부처이니 그것이 곧 본원 청정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내 설법을 듣는 대중으로서 만일 이 마음을 밝히고자 한다면 다른 여러 가지 불법을 배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만 구하거나 집착함이 없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구함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집착함이 없으면 마음이 멸하지 않을 것이니, 생멸이 없는 그것이 바로 부처이니라.

부처님이 사십 오 년 동안 말씀하신 팔만사천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상대한 것이니, 번뇌를 떠나면 그것이 곧 법이요, 떠날 줄 아는 그 놈이 곧 부처다.

모든 번뇌를 떠나면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일 묘한 비결을 알고자 한다면 오로지 그

마음에 한 물건도 구하거나 집착이 없어야 한다.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옳지 않다.

마음과 경계를 모두 잊어버려야 그것이 곧 참 법이다.

경계를 잊기란 쉽지만 마음을 잊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런데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흔히 마음은 버리지 않고 먼저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모색할 것이 없는 곳에서 공이 본래 공도 아닌 그것이 일진법계임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삼세제불과 일체중생이 다 같이 지닌 대열반의 성품이다.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법이니,

한 생각이라도 진실을 떠나면 그것은 모두 망상이다.

마음으로 마음을 구할 것이 아니요, 부처로 부처를 구할 것이 아니며, 법으로 법을 구할 것이 아니다.

그러니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단박에 무심(無心)하면 말없는 가운데 도에 계합할 것이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으로써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요문을 삼는다.

옛 사람은 ‘비구가 비구법을 닦지 않으면 삼천대천 세계에 침 뱉을 곳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 이 산승은 비구니들을 위해 다시 한 말 하리라.

비구니가 비구니법을 닦지 않으면 지금부터 오백 년 뒤에는 이 땅에 부처님 그림자도 없어지리라.

효봉스님─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인고

■효봉(曉峰, 1888-1966) 큰 스님 법문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우리 형제가 동서남북에서 모두 여기 모여 왔으니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인고.

부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곧 부처인데 무엇 때문에 부처가 부처를 구하려는가.

그것은 바로 물로써 물을 씻고 불로써 불을 끄려는 것과 같거늘,

아무리 구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여러 대중은 다행히 저마다 일없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무엇 때문에 고통과 죽음을 스스로 만드는가.

그것은 들것을 찾다가 옥을 떨어뜨려 부수는 격이니,

만일 그렇게 마음을 쓰면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각자의 보물 창고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그 끝없는 수용(受用)을 다른 데서 구하지 말라.

한 법 도취할 것이 없고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으며,

한 법의 생멸하는 모양도 볼 수 없는 것이니,

지금부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쉬어 버리면,

온 허공계와 법계가 털끝만한 것도 자기의

재량(財糧)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이런 경지에 이르면 천불(千佛)이 세상에 나오더라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니,

생각지도 말고 찾지도 말라.

내 마음은 본래 청정한 것이니라.

만사를 모두 인연에 맡겨 두고 옳고 그름에 아예

상관하지 말라 허망한 생각이 갑지기 일어나거든

한 칼로 두 동강을 내어 버려라.

빛깔을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본래 공안에 헛갈리지 말지니

만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그는 세상 뛰어난 대장부이리.

그런데 그 속의 사람은 고요하고 한적한 곳을 가리지 않는다.

내 마음이 쉬지 않으면 고요한 곳이

곧 시끄러운 곳이 되고,

내 마음이 쉬기만 하면 시끄러운 곳도 고요한 곳이 된다.

그러므로 다만 내 마음이 쉬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요,

경계를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경계는 마음이 아니요 마음은 경계가 이니니,

마음과 경계가 서로 상관하지 않으면 걸림 없는

한 생각이 그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삼 년이나 몇 십년 동안에

바른 눈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소견에 집착하기 때문이니,

그럴 때는 선지식을 찾아 공안을 결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에 그런 선지식이 없을 때에는

고인(古人)의 어록(語錄)으로 스승을 삼아야 하느니라.

또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일은 묵언(默言)하는 일이니,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의 말에,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가는 곳마다

걸린다 하였으니 이 어찌 믿지 않을 것인가.

그대가 고향에서 왔으니

아마 고향의 일을 알 것이다.

떠나는 날 그 비단창 앞에

매화꽃이 피었던가?

주장자로 선상을 한번 울리고는,

“맑은 밤 삼경에 별들이 반짝이고

강성(江城) 오월에 매화꽃 떨어지네.”

하고 자리에서 내려 오시다.

자기생각 집착이 깨달음 걸림돌 만사를 인연에 맡겨 두고 옳고 그름에 상관하지 말라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한 칼로 두 동강을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