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스님─재가자도 수행자 입니다

재가자도 수행자 입니다

-벽산스님-

목무소견무분별 (目無所見無分別) 이무소청절시비 (耳無所聽絶是非) 세상만사도불간 (世上萬事都不看) 단간심불자귀의 (但看心佛自歸依)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면 분별이 없고 귀로 듣는 바가 없으면 시비가 끊어진다 세상만사를 다 간섭하려 하지 말고 다만 부처의 마음을 보아 스스로 귀의하라.

부안 내소사에 가면 선원으로 유명한 월명암이란 암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월명암에 얽힌 부설 거사(浮雪居士) 이야기를 할 것이니, 잘 듣고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부설 거사에게는 영조와 영인 스님이라는 도반이 있었습니다.

도를 닦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함께 했습니다.

어느날 부설 거사는 영조, 영인 스님과 금강산으로 공부를 하러 가다가 묘화 부인을 만났습니다.

부설 거사는 묘화 부인과 지금의 월명암 자리에 토굴을 짓고 공부를 하였고 영조, 영인스님은 금강산으로 구도행을 떠났습니다.

부설 거사에게는 아들과 딸이 태어났는데, 그 이름이 등운과 월명이었습니다.

월명암이란 명칭은 월명(月明)이란 스님의 이름에서 따 온 것입니다.

10 년이란 세월이 흘러 금강산에서 공부하던 영조, 영인 스님이 돌아왔고, 세 사람은 그동안 공부한 바를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부설 거사가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공중에 던져,그릇이 깨지지도 않고 물도 흩어지지 않아야 제대로 공부를 한 것이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영인, 영조 스님은 모두 실패했는데, 부설 거사는 공중에 멈춰서 그릇이 깨지지도 않고 물이 쏟아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부설 거사는 영조, 영인 스님으로부터 속세에서 처자권속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공부를 했음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설 거사가 영조, 영인 스님에게 했던 법문이 위의 게송입니다.

이 시를 듣고 영조, 영인 스님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 불자님들에게 하는 이유는, 출가 사문이라고 해서 깨달을 수 있고 재가자라고 해서 깨닫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 법에는 출재가,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거든요.

누구나 배우고 익혀서 부지런히 닦는다면 자신이 이미 부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가자도 수행자임을 한시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것이 쉽지 않듯이 바른 법을 만나기 또한 쉽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데에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것이 없어요.

오로지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즉, 바른 법을 근본으로 해야지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참 부처입니다.

공부를 안해서 참 부처 노릇을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수행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그럼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간화선이라는 좋은 수행법이 있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시에 화두를 들고 공부하면 부처가 될 수 있어요.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라 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에게는 깨달을 수 있는 불성이 있다 했으니, 시시때때로 잊지 말고 걸어가면서, 밥을 먹으면서, 차를 마시면서, 앉아서 쉬면서, 화두를 들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불자님들이 자주 선과 교,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질문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는 없거든요.

단지 어느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할 뿐입니다.

교를 알려면 선을 해야 합니다.

조사어록에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敎是佛語)’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은 곧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이야기 하면, 그것이 바로 교라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널리 일체중생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부처의 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곧 근본 진리는 부처와 중생이 한 가지로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동불중생(同佛衆生)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자리에 집착하지 말고, 모두 있는 그대로 지혜의 덕상을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이세요.

나는 불자들에게 늘 (금강경)을 수지 독송할 것을 당부합니다.

부처님께서 49년동안 설한 법문 가운데 21년간 설한 가르침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만 설하는 곳이라도 그곳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나 부처님을 모신 절과 같이 모든 세간의 하늘이며, 사람이며, 아수라들이 와서 공양하거늘, 하물며 이 경전을 수지 독송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이는 가장 잘 사는 법을 바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에요.

부처님은 또, “삼천대천세계에서 가장 큰 산인 수미산만한 칠보들을 가지고 널리 보시하더라도 경전의 사구게를 받아 지녀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설해주는 공덕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어요.

물질보시 보다 법보시의 공덕이 크다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 남을 위해 진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짧은 말이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언제 어느 때 변화를 가져올 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에게 한권의 경이 있으나(我有一券經) 종이와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不因紙墨成) 한 글자도 펼치지 아니하여도(展開無一字) 항시 큰 광명을 놓는다.(常放大光明) 내 마음이 편안하고 온전하면 세상이 설사 시끄럽더라도 항시 편안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못하면 세상도 시끄럽고 어지러워지거든요.

우리가 공부하고 수행해야 세상도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즉 3독을 놓아버려야 불국정토가 이루어집니다.

3독은 마치 독사가 사람을 해하는 것과 같아 중생의 착한 마음을 해롭게 합니다.

그러니 인자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남을 사랑하며 삼보를 공경하는 마음을 지녀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다 마음에 달린 게지요.

‘무엇이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던고’.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이전의 본래 면목은 무엇이던고.

다함께 화두 들고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