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안스님─인간 욕망의 끝은

인간 욕망의 끝은 – 내 주변에 길이 있고 법이 있다

-혜안스님-

인간의 욕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도시의 길거리는 넓어졌지만, 도로에는 차들이 즐비하여 점점 더 속도가 나지 않는다.

건물은 놓아졌지만, 인간의 인격은 작아만 지고 있다.

고속도로는 넓어지고 많아져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우리의 시야가 좁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고도성장으로 사람들의 소비는 많아졌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더 가난해지고 기쁨은 줄어들어 가고 있다.

가족이 적은 핵가족 시대이지만 집은 더 커졌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삶은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지식정보화 시대 속에서 모두들 높은 학력은 뽐내고 지식을 자랑하지만,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상식과 지혜는 부족하고, 판단력은 모자라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킨다.

학식 높은 사람들이 늘어 전문가 시대이지만 문제해결을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최첨단의 의학과 기술은 많은 질병을 정복해 넉넉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서 병고는 사라지지 많는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로 연결되는 것일까? 모두들 너무나 의문을 보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이 모든 것이 불치병인지를 모르는 채….

발달되어 가면 갈수록 가진 것은 몇 배가 됐지만, 진정한 가치는 더 줄어들었고, 다양한 지식으로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 버렸다.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과학의 꽃이라고 하는 우주여행, 우주를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달에 갔다 왔다 하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졌다.

또한 외계는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내면의 세계는 잃어버려 너무나 공허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들은 그들의 넉넉하고 화려한 삶을 위하여 스스로 오염시켜 놓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다시 공기 정화기를 개발하고 다시 돈을 주고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어만 가고 있다.

무한한 지식으로 원자와 분자를 쪼개고 쪼개서 엄청난 과학문명을 이루었지만,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편견을 부수지는 못하고 있는 엄청난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다.

풍족으로 우리는 몸과 키는 커졌지만, 참다운 풍요인 인품은 너무나 왜소해져 가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익은 더 많이 추구했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더 나빠지고 있다.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이유로 여가와 휴식시간은 많이 늘어났지만,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어 삭막하기까지 하다.

엄청나게 빨라진 고속 철도, 너무나 편리한 일회용품들 속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하여 너무나 줄어든 양심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어느 곳으로 그리도 급히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제발 발 밑도 살피고,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시길 권한다.

가끔 한번쯤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는 여유와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웃과 타인도 한번쯤은 돌보는 베품이 필요하다.

그 속에 행복이 있고, 소중한 삶이 배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경계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우리 스스로가 지킴으로서 만드는 경계인 것이다.

그 경계가 진정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경계인 것이고, 성인들이 원하는 경계가 바로 이러한 경계가 아닌가 한다.

내일의 행복과 만족을 원한다면, 오늘 조금 힘들더라도 주변을 살펴 보라.

그러면 그 속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음을 볼 것이다.

먼 곳에서 찾지 말라.

-법인경판제작연구소장-

혜안스님─돈과 행복

돈과 행복 /”행복은 삶의 목표 이루어 가는 것” 혜안 스님/법인경판제작연구소장

행복의 조건에 돈을 내세우는 것은 나 스스로 달갑지 않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이 없다면 행복의 조건을 완전히 이루기는 힘들다.

행복이 상대적인 가치라면 돈 역시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항상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돈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돈으로 인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만족감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그 어떠한 만족감이라도 얻을 수 있는

적은 돈을 나는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배고플 때,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 있는

5,000원은 행복이다.

5,000원으로 원하는

밥을 사먹고 얻을 수 있는 배부른 만족감이 행복이다.

우리가 목이 마를 때 1,000원으로 마실 수 있는 음료수,

목이 마른 상태의 갈증을 없애줄 수 있는 1,000원은

바로 그 때 행복을 구하는 조건인 것이다.

5,000원과 1,000원처럼 액수 차이가 나지만,

그 상황에서 각각의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금액의 차이가 행복의 차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없는 상태 즉,

빈털터리라면 이러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돈이 적건 많건 간에,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비극적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돈으로 인해서 우리는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소유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 상태에 대한 만족을 느끼는 가

느끼지 못하는 가에 대한 문제이다.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대해서 만족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된다 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곧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소유하게 되는

물질들에 의해서 만족을 얻고

그 결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만큼의 물질의 양을 소유하고,

소유한 것에 대해서 만족을 느꼈을 때

결국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돈으로 인해서 가질 수 있는

물질은 행복의 절대적인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행복의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의식주 역시 인간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의식주가 필요하다.

의식주는 다분히 물질적인 요소이다.

우리가 입는 것, 먹는 것, 자거나 머물며

쉬는 곳이 필요하다.

지금이 몇 만 년전의 석기시대라면

우리 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필요한 것을 구하며 살았겠지만

현대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것이

이러한 것을 구해준다.

직접 농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추우면 옷을 입거나

따뜻한 집에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주는 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행복의 조건으로 삶의 목표를 들고 싶다.

우리 인간은 어차피 결국은 죽게 되어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 다시

윤회한다고 하기도 하며, 천국에 가서 산다고

하기도 하지만 종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인간은 삶에 대해서 고민했을 것이다.

나 역시 사춘기 때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나이 들면 언젠가는 죽을 텐데,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어차피 죽긴 하지만,

죽기 전에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

우리는 어릴 때 커서 뭐가 될래?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마 그 때부터 우리는 삶의 목표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보통 우리는 성인이

되기 전 까지 원하는 직업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삶의 목표가 된다.

직업을 가진 후에는 직업 안에서 이루고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한다.

하나 하나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 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고자 했던 자화상을 이루는 것이

바로 궁극적인 행복의 조건이 될 것이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다.

즉 바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이룰 때 가질 수 있는

만족감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이다.

그 만족감은 우리 자신에게 큰 행복이 된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노력하고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이다.

삶의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지,

아무 계획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살려는 사람은

하루 하루가 똑같고 매일 매일이 행복이 없는 삶일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로 행복의 조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