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것은____

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것은.

경봉 큰스님 법문중에서 사람이 처세함에 있어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 사이에 있어서 겸손하고 화(和)하고 사양할 줄 알아야 된다.

손기이인(損己利人)이라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라.

석가 부처님은 나도 이익이 되고 남도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 것이며 또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온것도 내 몸을 위해서 난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났다고 하였으며 49년을 설법하셨다.

물위무익(勿爲無益)이라,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이익없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이익없는 짓은 하지말라.

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것은 불교 진리를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멋지게 살아가는데 뜻이 있다.

당신유손(當愼有損)이라 일을 함에있어 손해가 될 것은 마땅히 삼가하여야 된다.

비애희락(悲哀喜樂)이라 슬픈 일이나 기쁜일에 동하지 말고 물영과정(勿令過情)이라 정과 분수에 맞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자면 만경창파에 배를 타고 가는것과 같아서 바람도 일어나고 비도오고 풍파도 일어 배가 뒤집혀 질듯이 위험한 고비속에서도 견디면 구름도 비도 풍파도 없는 경지를 가게 되는 것이다.

호흡정여(呼吸精如)라 우리는 음식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코로서는 호흡을 잘 조절하고 음식도 탐내지 말아야 하며 물건도 적당히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안신규방(安身閨房)이라 주색(酒色)에 빠지지 말며 자기 부부외는 일체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정습정혜(靜習定慧)라 고요히 앉아 선정과(禪定)과 지혜(智慧)를 닦아야 정신이 통일되고 지혜가 생긴다.

경봉스님─사람목숨

사람 목숨

-경봉스님-

여러분이 집에 꿀치는 벌을 먹이면 그 조그마한 것이 꿀을 치려고 삼십리 밖에 나가 꽃가루를 묻혀서 향기를 취해오면 아직 날개가 안난 벌은 그 안에서 꿀치는 데까지 운반을 해주는데 그 집안에 사람이 죽어서 벌통에 부고를 부치면 벌목에 흰테를 두르고 나온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지 놀고 먹어서는 안되고 자기가 노력을 해서 먹고 살도록 해야된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리적이요 과학적이요 철학적이다.

무엇이든지 이치에 당해야 되지 이치에 안당하면 안된다.

내가 전번에도 얘기했지만…

부산에 있는 어느 집에서 쥐약을 쳤는데 그 쥐약을 먹은 쥐도 죽고 또 그 쥐를 먹은 고양이도 다 죽게 되어서 집주인이 그것을 보고 그 고양이와 쥐를 위하여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이백칠십 자를 읽는데 다 죽어가는 고양이가 주인앞에 쫒아와 엎드려서 그 심경 읽는 소리를 다 듣고 숨을 거둔다.

소나 개나 말이나 이런 짐승에게 경을 읽으면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부처님의 진리법문이기 때문에 귀를 통해서 심장으로 들어가면 속이 시원해져서 가만히 듣고있다.

서울 세검정에서 나무뿌리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며칠전에 정신이상이 되어서 여기 왔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내가 집안에 나무뿌리를 여러개 파두었더니 개미 수십만 마리가 집안을 하도 더럽혀서 그 개미를 휘발유를 뿌려 죽였더니 그로 인해 정신이상이 생겨서 여기 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마음으로 참회하라고 했더니 요즈음은 병세가 좀 나아졌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부처님이 여러 제자를 모아놓고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이렇게 물으니 한 제자가 “수일간에 있습니다” 이랬다.

사람이 살다가 수일간에 죽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너는 공부 못하겠다” 그러고는 다른 제자에게 묻기를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하니까

“밥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이랬다.

“너도 공부 못하겠다” 그러고 또 물었다.

“인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이렇게 물으니 한 제자가 이렇게 말했다.

“호흡지간에 있습니다” 숨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너는 공부하겠다” 이랬다.

이와같이 사람의 목숨은 눈 깜짝할 순식간에 달려있다.

경봉스님─부처란 마음 자리 하나 밝힌 사람

부처란 마음 자리 하나 밝힌 사람

-경봉스님-

법좌에 올라 한참 묵연히 계시다가 주장자를 세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병을 다스리는데 약을 많이 먹는 것만이 다 약이 되는 것은 아니고 신선의 환단이라는 약이 있는데 그 약을 콩알만큼만 먹어도 일체 모든 병이 다 다스려지는 것과 같이 종사(宗師)의 법문은 많은 것이 아니라 눈만 껌뻑하고 손만 들어도 다 그 속에 법문이 있다.

산두월괘운문병 (山頭月掛雲門餠) 문외수류조주다 (門外水流趙州茶) 산 머리에 달이 걸려 있으니 운문의 떡이요, 문 밖에 물이 흐르니 조주의 차로다.

개중하자진삼매 (箇中何者眞三昧) 구월국화구월개 (九月菊花九月開) 이날 가운데 어떤 것이 삼매요, 구월 국화꽃은 구월에 피도다.

예전에 운문스님이란 선지식이 계셨는데 사람들이 법문을 들으러 가면 그 스님 말씀이 ‘떡 먹고 가거라’하는데서 운문병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러나 떡이나 주고서 떡 먹고 가거라 하면 괜찮지만 떡이나 주어야지…

또 조주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께 법문을 들으러 가면 ‘차 먹고 가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조주스님의 차(茶) 진리법문인 것이다.

동짓달 초이렛날 여러분에게 주는 법문인데 이 두 글귀만 알면 모두 이 도리를 알게된다.

부처님이 이르시기를,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라 널리 일체 중생을 보니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부처님의 덕상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모두 동불중생(同佛衆生)이요, 곧 진리자리는 부처님과 중생은 한가지로 여래의 지혜와 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또 일체 중생의 종종환화(種種幻化)가 여래의 원광묘심(如來圓光妙心)이라 하니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환화가 곧 여래의 원만하고 묘한 마음이 되는 것이니 이 마음을 버리고 나면 다른 것이 뭐 있겠는가?

뚜렷이 깨친 이 묘한 마음 원광묘심을 버리고 다른 것이, 구할것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다만 이 마음자리 하나 밝힌 사람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聖賢)들도 그 마음을 닦으려고 이산 저산 다니지만 그 도를 배우려면 오직 이 법문을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과 종사의 모든 법문이 모두 이 하나이니 간절히 밖을 향해 구하지 말라는 말이다.

곧 물은 찬것이 물의 성질이요, 불은 더운것이 불의 성질이요, 소금은 짠 것이 소금의 성질이며 사람은 깨칠 마음 자리가 곧 자기인 것을 알고 이 심정 자리가 물들지 않아야 본자원성(本自圓性)이 뚜렷이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인 것이다.

흔히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놀랄 것이 아니라 이자리 즉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이몸이 곧 여여한 부처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모범이 되고 법규가 될 말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겠는데 참으로 듣기 어려운 말이니 잘 기억하여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처세함에 있어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 사이에 있어서 겸손하고 화(和)하고 사양할 줄 알아야 된다.

– 손기이인(損己利人)이라.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라.

석가 부처님은 나도 이익이 되고 남도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 것이며 또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온 것도 내 몸을 위해서 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났다고 하였으며 49년을 설법하셨다.

– 물위무익(勿爲無益)이라.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이익 없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

이익 없는 짓은 하지말라.

우리가 불교를 신앙하는 것은 불교 진리를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멋지게 살아가는데 뜻이 있다.

– 당신유손(當愼有損)이라.

일을 함에 있어 손해가 될 것은 마땅히 삼가 하여야 된다.

– 비애희락(悲哀喜樂)이라.

슬픈 일이나 기쁜일에 동하지 말고

– 물영과정(勿令過情)이라, 정과 분수에 맞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자면 만경창파에 배를 타고 가는것과 같아서 바람도 일어나고 비도오고 풍파도 일어 배가 뒤집혀 질듯이 위험한 고비속에서도 견디면 구름도 비도 풍파도 없는 경지를 가게 되는 것이다.

– 호흡정여(呼吸精如)라.

우리는 음식만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코로서는 호흡을 잘 조절하고 음식도 탐내지 말아야 하며 물건도 적당히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 안신규방(安身閨房)이라.

주색(酒色)에 빠지지 말며 자기 부부외는 일체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 정습정혜(靜習定慧)라 고요히 앉아 선정과(禪定)과 지혜(智慧)를 닦아야 정신이 통일되고 지혜가 생긴다.

참선을 하려고 앉아 있으면 화두는 죽 끓듯이 끓어 달아나서 서울, 부산, 진주, 마산으로 딸, 아들 친한 집으로 돌아다닌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현재, 미래 일이 생각되고 이생각, 저생각 하다보면 무슨 지혜가 생길 수 있나 편히 앉아서 닦아야 한다.

– 안심무망(安心無妄)이라.

마음이 편안하고 망령된 생각이 뚝 떨어져야 지혜도 밝아져서 장사도 잘 되지만 망령된 생각으로 어떻게 하여 남을 속여 재물을 얻으려고 생각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자기만 돈 벌려고 하니 그 돈이 나갈 때는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집안을 망치고 나가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 좌와순시(坐臥順時)라.

앉는 것과 눕는 것은 때에 맞추어 하라는 뜻이고 모든 일에는 때와 순서가 있다.

봄 이오고 여름, 가을, 겨울이 옴에 모두 자연의 진리 법칙이다.

– 물영신태적유선공(勿令身태積有善功)이라.

몸은 게으르게 가지지 말며 착한 공덕을 쌓으라는 것이다.

내가 일생동안 남을 위하여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 노트에 한번 적어보라.

옛날 하회땅에 유 정승이 있었는데 7대 할아버지가 재를 넘어가는 갈림길에다 집을 한채 지어 놓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옷없는 이에게 옷을, 신 없는 사람에게 신을, 노자없는 사람에게 노자를 주기를 30여년 동안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소원이 그가 사는 곳이 넓은 벌판인데 그곳에 그의 자손이 꽉 차도록 하는 것이 그의 원력이었다.

그토록 많은 공덕을 베풀었으므로 원력이 이루어져 그 집안에 백의(白依) 정승(政丞)이 났다고 한다.

그러니 논에 물이 아무리 있어도 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말라 버리는 것과 같이 전생에 복을 조금 지었더라도 금생에 내가 논에 뒷물 넣듯이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음덕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

– 구고도액(救苦度厄)하고 제곤부위(濟困扶危)하라.

고생되는 사람을 구제하고 액난있는 사람을 건져주고 곤난한 사람을 건져주고 위태로운 사람을 붙들어 주라.

의연영축산두월(依然靈축山頭月) 만겁년전여시수(萬劫年前汝是誰) 저 영축산 머리에 걸린달아 만겁년전에 너가 이 누구냐?

할! 하시고 하좌하시다.

-경봉 큰스님-

자료출처: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