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복은 아껴야 한다

복은 아껴야 한다

-경봉 스님-

과수원의 과목(果木) 키우는 법을 배우는데 칠판 강의를 듣거나 말과 글로써 배우더라도 자기가직접 과수원에서 이삼십년간 과목을 키워보면 선생에게 배운 그 이상의 것을 자기도 모르게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이러한 것을 자기 자식이 제일 가까우니 자식에게 가르친다.

자식에게 가르친다지만 도저히 말로써 가르칠 수 없는 묘한 이치가 있다.

또 말로써 설명해주더라도 듣는 사람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안장의 오묘한 진리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글로써 보일 수 없다.

어느 정도는 말과 글로 이야기하여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경지에 들어가지 못하면 무슨 소린지 모른다.

우리 수행하는 이들은 수행하는 것을 매일 점검해야 하고 또 세속에 사는 이들은 부모님 밑에서 살 때에는 몰랐는데 장가가고 시집가서 보니 걱정되지 않는 일이 없다.

모든 근심과 걱정을 살펴보면 모두 물질 아니면 사람의 걱정이니 불교를 믿는 이들은 부처님의 그 초월한 정신에 계합되어 수심 걱정 보따리를 확 털어버리고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멋들어지게 살아야 한다.

여러분들이 오늘부터 회계를 대기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무슨 보람된 일을 하였는가, 이 소소령령한 자성 자리에 무슨 이익이 될 만한 수양을 쌓았는가, 또 남에게 착한 일을 하여 사회에 헌신한 일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 보살행을 생각이라도 해보았는가 , 이것을 전부 기록해 봐서 부끄러우면 불교를 신봉하는 불자로서의 생활을 다시 시작해서 뒷날 다시 기록해볼 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겠다.

일본 선종의 조동종 시조 도원(道元)선사의 수제자 되는 스님이 그 당시 전좌(典座)라는 소임을 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수좌가 보니까 매일 밤 자정쯤 되면 무엇을 끓여서 혼자서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수좌가 조실 스님인 도원 스님게 이 일을 말하자 조실 스님이 자정 때쯤 돼서 살펴보니 사실인지라 “무엇을 만들어서 너 혼자만 먹느냐, 나도 좀 주려무나.” 하니까 한사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세 번째 밤에는 조금 주는 것을 먹어보니 고약한 냄새가 나고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이라서 그 제자에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이것은 수채 구멍에 누른밥 찌꺼기와 밥 남은 것을 공양주들이 마구 버리기에 아까워서 버릴 수는 없고 이것을 먹기 위하여 다른 스님네들이 다 잠든 자정에 비밀히 끓여 먹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이 감격하여 말하기를 “흘러가는 물이라도 쓸데없이 함부로 쓰지 않도록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이 일이 우리 일상생활에 매우 경계될 말한 일이다.

그래서 선문(禪門)의 규범에 이르기를 한 낱의 쌀이 땅에 떨어졌으면 나의 살점이 떨어진 거와 같이 생각하고 한 방울의 간장이 땅에 떨어지면 나의 핏방울이 떨어진 듯이 생각하라고 하였다.

경봉스님─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 진다

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 진다

-경봉스님-

항상 말하지만 법문은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다 됐고, 법문을 들으려는 대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다 마친 것이다.

부처님이 49년간 설법을 했는데 나중에 영산회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꽃 한 송이를 인천대중(人天大衆)에게 들어보였다.

거기에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몸을 얼마나 유지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이 법회에 승속(僧俗)이 많이 모였는데 많은 대중이 100년만 지나면 서로가 다 어디에 가 있는지 행방조차도 알 수 없고 얼굴 또한 볼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늘 덧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몸을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풀끝의 이슬과도 같고 번갯불과 같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허망한 가운데 허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 허망하지 않은 물건인가.

옛 조사가 말했다.

“한 물건이 사람 사람에게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명자(名字)도 없고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천지보다 더 크고 해와 달보다 더 밝으며 검기로는 칠통보다 더 검은데 이러한 물건이 우리의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동정(語默動靜)의 일상생활하는데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하루 24시간 가운데 9시간 일하고 6시간 잠자고 5시간 놀면 4시간이 남는데, 이 4시간 남는 시간을 정신을 통일하고 집중해서 이 알 수 없는 것을 참구해야 한다.

이것이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물 흘러가듯 자꾸만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정신을 통일하는 묘를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한바탕 멋들어지게 연극을 하다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멋들어지게 하는 것인가.

가령 연극배우가 비극의 배역을 맡았다고 하자.

그 배우가 마음 가운데 딴 생각을 비우고 자신이 그 극중배역과 혼연일치가 되는 연기라야 사람들이 감동한다.

사바세계에 와서 우리가 맡은 배역대로 연극을 잘 하려면 우선 물질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삶에 대한 애착을 비워야 한다.

물질 아니면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나온 이유는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빈 몸 빈손으로 옷까지 훨훨 벗고 나왔는데, 공연한 탐욕과 쓸데없는 망상으로 모두 근심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누구를 해칠 생각도 근심걱정도 없었다.

그런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은 될 만큼 되는데, 망상이란 도둑놈 때문에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에 대산청만(大山靑巒)이라는 문학박사가 있다.

그 사람에게는 늙은 하녀가 있었는데 병자를 앉혀놓고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면 병이 금방 낫곤 했다.

박사가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가관이었다.

그것이 미신인 것만은 분명한 듯한데 병이 완쾌되니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하녀를 보고 무엇을 이르냐고 물었다.

하녀는 “오무기 고무기 오소고고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박사가 생각해보니 ‘오무기’는 보리요 ‘고무기’는 밀, ‘이소고고’는 두 되 다섯 홉이란 말이다.

‘보리 밀 두되 다섯 홉’이란 말에 병이 나을 까닭이 없는데 병이 잘 낫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본에서 문학박사가 되자면 불교를 모르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불교경전에는 문학과 관련 깊은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금강경〉을 보다가 경 가운데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낸다’고 하는 구절을 보게 됐다.

육조 혜능대사도 다른 사람이 〈금강경〉을 읽을 때 이 구절을 듣고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이 구절의 일본 발음이 ‘오무소주 이소고싱’.

아마도 하녀는 누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잘못 외어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는 말을 늘 외운 것이다.

박사가 하녀에게 외우는 것이 잘못됐으니 다시 외우라고 고쳐주었다.

하녀는 그런가보다 하고 다음부터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금강경 구절을 외워줬는데, 진짜지만 병이 낫지 않았다.

그래서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고 또 다시 바꿔서 읽으니까 그제야 병이 나았다.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박사가 말해준 것은 진짜이지만, 많이 외우지도 않았고 또 이렇게 하면 정말 병이 나을까,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의심이 나서다.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모든 성현의 법을 길러낸다고 하였다.

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진다.” 한 물건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요 형상이 없어 본래 고요하도다.

능히 만상에 주인이 되고 사시절을 따라 마르지 않는데 장부에겐 누구나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가 있거니 북두(北斗)와 남성(南星)을 등을 지고 보아라

경봉스님─도인(道人)의 육미탕(六味湯)

도인(道人)의 육미탕(六味湯)

경봉큰스님 법문 오래전에 경봉 큰스님께서 법문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첫째.

신심(信心) 세 냥쭝.

둘째.

무언무설 (無言無設) 한 냥쭝.

셋째.

만사무집착 (萬事無執着) 한 냥쭝.

넷째.

안한무사 (安閑無事) 한 냥쭝.

다섯째.

담연부동 (湛然不動) 한 냥쭝.

여섯째.

감인 (堪忍) 다섯 냥쭝.

이것을 가지고 밑구멍 쑥 빠진 약탕관에 젖지않는 물을 붓고 뜨겁지 않은 불로 끓여서 밑구멍 없는 그릇에 담아 마시는 것이다.

첫째.

신심.

왜? 하지말고 믿는 것입니다.

부자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또 친구간에도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무언무설.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죠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시비나 일으키는 그런 말 하지말라는 말입니다.

셋째.

만사무집착.

모든일에 집착이 없어야 겠습니다.

사람에도, 물질에도, 집착하지말고 초월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나 물질에 집착하면 죽은뒤에도 마누라 찾아 다니고 자식 찾아 다니고 죽어서도 돈벌러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허공에 팔 내젓듯이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넷째.

안한무사.

항상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돈이나 사물에 집착하면 그것 때문에 항상 마음이 편안하지가 못합니다.

無事란 일이 없어서 편안한게 아니라 일을 만들지 않아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담연부동.

이 마음은 본래 청정한 물과 같고 밝은 달과 같은데 이 밝은 자리에 스스로가 먹구름을 끼이게 해서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이치를 알아 動함이 없어야 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 서원을 세우고 나아가야 겠습니다.

여섯째.

감인.

아주 중요 합니다.

若無忍行이면 萬事不成이라 하였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