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진스님─일하는 즐거움

일하는 즐거움

-宗眞스님법문- 사람은 저마다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이 인과(因果)의 정리(定理)다.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내가 심지않고 남이 심은 것을 빼앗으려 해도 안된다.

저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깨닫고 성실 하게 살아야 한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을 불교에서는 인과법(因果法)이라고 한다.

옛말에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했다.

뿌려야만 거둘 수 있고, 더 많이 땀흘려 노력해야만 탐스런 수확을 할 수 있다.

땀을 흘리지 않는 곳에 성공의 꽃이 필 수 없고 행복의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 보람있는 것, 가치 있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요 땀의 결과다.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려는 허망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땀을 흘리지 않고 행복을 얻으려는 것은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것과 같다.

일하지 않으면서 열매만 따는 것은 도둑질이다.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방법이 없다.

불교의 계율은 노력없이 남의 물건을 갖는 것을 큰 죄악으로 보고 있다.

[사분율(四分律)]에 보면 ‘주지 않는 물건을 갖지 말라’고 했다.

만약 주지 않는 물건을 가지면 바라이죄(波羅夷罪) 에 해당한다고 했다.

바라이죄란 승단에서 쫓겨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이 죄는 출가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는 물건을 훔치면 사회에서 격리시켜 감옥에 보낸다.

인생은 결코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참으면서 일하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은 모든 성공의 어머니며 노동은 행복의 아버지다.

때문에 옛부터 노동은 인간생활에서 무엇보다 신성하고 소중한 것으로 인식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해지는 시간은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때다.

회사에서 눈코뜰새 없이 일하는 남자의 모습은 가장 아름답다.

남편을 기다리며 정성스럽게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은 천사의 모습보다 아름답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학생은 믿음직 스럽다.

사람은 가치있는 일을 달성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참다운 즐거움이나 행복은 느낄 수 없다.

회사에서 실직(失職)을 한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에 더욱 괴로와한다.

실직으로 수입이 없어 생계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중국의 백장(百丈)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가르쳤다.

하루는 제자들이 스승이 노구(老軀)에도 일하는 것이 민망해 호미를 감추자 스님은 하루를 굶었다.

철저한 작무생산(作務生産)의 정신이야말로 인생을 지켜주는 기둥이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모든 것을 주물러 황금으로 만든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어떤 일을 하든지 힘껏 하면 그곳에서 광명이 발견된다’는 좌우명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는 부(富)와 명성을 얻었다.

열심히 일하고 땀흘리는 사람, 그는 모든 것을 주물러 황금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성불(成佛)은 수도(修道)라는 일을 통해 이뤄지고 수확의 기쁨은 밭가는 노동을 통해 이뤄진다.

땀흘리는 사람에게만 성공의 열매를 딸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겠다.

종진스님─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해야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해야 해인총림 율주 종진 스님

地藏菩薩誓願力/지장보살서원력

(지장보살님 세우신 서원의 힘이여)

恒沙衆生出苦海/항사중생출고해

(갠지스강 모래같이 많은 중생 고통에서 구하시고)

十殿照律地獄空/시(십)전보율지옥공

(시왕전에서 재판을 밝게 비춰 지옥을 비우시며)

業盡衆生放人間/업진중생방인간

(업이 다한 중생들 인간세계 나가게 하시니)

莫言地藏得閒遊/막언지장득한유

(지장보살님 한가롭다 말하지 마시오)

地獄門前淚不收/지옥문전루불수

(지옥문 앞에서 눈물을 거두지 못하시네)

명부전 주련을 유심히 보신 분은 이 글귀를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사찰 참배하실 때 대웅전이나 선원 등의 전각에 쓰인 주련을 새겨보시면 공부하시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찰을 참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지만 주련 공부도 하시면서 순례하시면 더 재미있고 더 깊은 맛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쉽게 말한다면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더 편안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사가 어떠하십니까?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파서, 배가 부르면 너무 배가 불러서, 이래도 저래도 고통입니다.

오죽하면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 하지 않습니까? 이런 중생을 위해 지장보살님은 서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크나 큰 원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할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정성은 한마음입니다. 예경드릴 때 ‘지심귀명례’ 그러죠? 지극한 마음이 한마음이고 한마음이 정성입니다. 정성스런 기도는 꾸준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한 술 밥에 배부르랴’ 하는 말이 있죠? 한 번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성스런 기도를 한 후 결과는 말하지 마십시오.

지극정성으로 꾸준하게 기도를 하면 결과는 저절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밭을 매면서 밭고랑을 센다고 합니다. 노력은 손톱만큼 해 놓고 결과는 크게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심성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 보아야 효험 없습니다.

기도는 죽은 사람도 살려

불교에서 기도를 제일 잘한 어른이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석가보살로 계실 때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그 부처님이 너무 거룩하셔서 신심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 몸에 충만해졌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기도를 하는데, 학처럼 다리 하나는 땅을 딛고 하나는 들고, 두 손은 합장을 하고, 눈은 부처님 얼굴만 주시 하고, 일주일 밤낮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용맹정진을 하신 공덕으로 무려 5겁이라고 하는 오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서 미륵보살보다 먼저 성불 하셨습니다.

울진 불영사 대웅전은 전에 ‘환생전’이라고 했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아주 어렵게 과거를 봐서 울진 군수가 된 사람이 취임 삼일 만에 갑자기 숨을 거둔 겁니다.

그 때 군수 부인은 장례를 치르지 않고 70m 떨어진 곳에 있는 불영사로 군수의 시신이 든 관을 모셔가 기도를 합니다. 자, 그 상황에서 누구를 미워한다든지 좋아한다든지 편안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극한 상황에서는 모든 생각이 정지 됩니다. 오직 남편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일념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니 그 염불소리가 얼마나 애절할 것이며, 정성이 얼마나 지극할 것입니까.

처음에는 스님들도 관속들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 감동을 하더니 나중에는 스님도, 관속들도 다 동참을 했습니다.

대중이 전부 한 몸,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삼일 후, 갑자기 관이 흔들리며 군수가 살아났습니다. 이 사실이 임금에게 보고가 되어 법당 이름을 환생전이라 하고 울진 군수가 며칠 동안 요양을 했던 방을 환희요라고 하사했다는 기록이 불영사 사적지에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 이야기 입니다. 또, 중국의 예가 있습니다.

송나라 때 한 스님이 인물이 너무 못나고 목소리가 안 좋았다고 합니다.

화를 많이 낸 사람은 얼굴이 곱지 않습니다.

남 욕을 많이 하면 목소리가 안 좋습니다. 이 스님이 낮에는 관세음보살 앞에서 관음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절을 천 번씩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20년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이 변하고 음성이 변하더라고 합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서 한 절의 주인이 되어 무려 700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기도를 통해서 자기 운명을 완전히 바꾼 유형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한 예는, 중국 양나라에 지장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삼업 깨끗해야 보살

재주가 있어서 젊을 때부터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관상을 보는 사람이 절에 와서 ‘스님은 3년 후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 때 스님의 세속 나이가 스물 아홉이었습니다. 스님은 고심 끝에 모든 제자들을 돌려보내고「금강경」을 3년간 불철주야로 독송했습니다.

관상 보는 이가 예견한 날 아침에 스님은 삭발을 하고 목욕을 깨끗이 하고는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이왕 가는 것 ‘좌탈하겠다’며 가만히 앉았는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안 죽는 겁니다.

그 때 하늘에서 공청(空聽)이 들려왔습니다. “경전을 독경한 공덕으로 천수의 두 배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그로부터 정확히 6년을 더 살고 68세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것도 지극정성의 기도를 통해서 수명을 연장한 예라 할 것입니다.

송나라 스님은 기도를 통해서 인물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장 스님은 「금강경」 독경을 해서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그리고 울진 군수는 부인의 기도로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사례만 하더라도 일심으로 기도를 할 것 같으면 그 결과는 저절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조심해야 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신(身), 구(口), 의(意) 삼업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몸단속, 입단속, 생각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 한 분이 부처님이요, 관세음보살이요, 지장보살이요, 대세지보살이요, 문수보살이요, 보현보살입니다.

100일 동안 기도하면서 세 가지 단속을 잘 하십시오.

정성과 꾸준함으로 열심히 할 것 같으면 이루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게을러서 못할 뿐입니다.

환희심 충만해야 성취

범어사 산 이름이 ‘금정산’입니다. 감로수란 한 방울만 입에 들어가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신비한 물이라고 합니다. 금정(金井)이 그 감로수가 담겨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 물에 저 하늘 꼭대기에 있는 범천의 고기가 와서 놀았다고 해서 범어사입니다. 고기가 물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듯 살 수 있는 사람은 장애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고통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고통이 없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통은 하나도 없고 행복만 받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구조적으로 장애가 있습니다. 그 장애를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괴로움을 가지고 왔습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공부를 통해서 스스로 그 괴로움을 벗어 버린 분입니다. 인도는 우리 더위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덥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온갖 괴로움을 이겨내서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가 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원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부터는 첫째도 정성 , 둘째도 정성, 셋째도 정성입니다. 입조심, 몸조심, 생각을 조심하며 꾸준하게 기도를 해서 지장기도 회향할 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환희심으로 충만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원은 저절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부산=주영미 기자

이 법문은 8월 2일 부산 범어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지장 100일 기도 및

고승초청대법회 여섯 번째 법석에서 해인총림 율주 종진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종진스님

1955년 동화사로 출가해 1963년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해인총림 율원의 율주를 맡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법계위원이며, 법계위원회 의제실무연구회 의장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