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스님─열반당 도깨비

열반당 도깨비

-무오스님-

염불 기도만을 10년간 계속해 온 ○○보살이 있었다.

전국의 대소사찰을 찾아 다니며 백일기도에도 동참하고 집안에도 기도실을 마련, 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하고 하루 세 번씩 정진하며 수선 안거철이면 수행하는 스님들 공양을 지어드리고 공덕을 짓겠다고 집을 나섰고 대소 불사에 권선 화주하는데 아주 열성인 보살이었다.

겉으로 나타나기는 신심이 깊고 수행력이 많은 지극한 불자이지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기적인 마음과 고집 또 불같은 성격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도반이 그 보살의 잘못된 신심을 고쳐 볼까 하여 그 보살이 기도하는 법당을 찾았다.

법당에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진성과 함께 구슬땀이 흐르는 것을 씻을 새도없이 절을 하는 보살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법당 문을 두드리며 ○○보살님! ○○보살님 하고 불러댔다.

기도 시간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보살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며 절만 하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만 하는 그 보살의 뒤에 대고 도반은 더 큰소리로 ‘○○보살’을 불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된 보살은 염불을 그치고 법당 밖의 도반에게 화를 벌컥 냈다.

” 왜 보살님은 남의 기도시간에 내 이름을 그렇게 불러 댑니까?” 도반은 웃으며 “보살님 내가 보살님 이름을 10분간 불렀는데 보살님은 그 정도에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보살님이 관세음 보살님을 10년간이나 불러댔으니 관세음보살님이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하였다.

마음 공부를 위해 염불하고 참선을 하지만 이기심이 바탕이 된 신앙과 수행은 자신의 업만 두텁게 할 뿐이다.

(대중불교에서 인용) 관세음보살님이란 자비와 구원의 화신을 일컫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자신의 구원으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을 향한 크나큰 사랑으로 조건없이 베풀어지는 것이므로 무연 자비라 하지요.

우리 불자들이 관세음보살을 칭명함은 적게는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지만 부처님의 본원을 온갖 생령들 속에서 실현코자하는 회향의 크고 넓은 마음으로 쓰여 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때에는 단순히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관세음이라는 위대한 정신을 한갖 자신의 장엄물로 삼으려는 소아적인 발상에 그치고 말게 됩니다.

절에 10년 아니라 30년, 평생을 다녔더라도 관세음을 부르는 우리들의 마음이 관세음의 마음으로 변형되어 가지 못하고 여전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충만하여 겉으로 짓는 상과 신심은 정신과 시간을 허비할 뿐입니다.

비록 단 한번을 염불하고 단 한번을 절할지언정 관세음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일념이 만년되게 정진함이 진정한 불자의 기도입니다.

큰절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열반당 도깨비’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열반에 이를 정도의 신행을 잘한 분을 일컫는 것 같아도 그 진짜 뜻은 이렇습니다.

수십년 절에 다녀 절에 행사나 염불 기도등은 열심히 하지만 그 마음을 부처요, 보살의 마음으로 바꾸지 못하고 어느 일에나 나서면서 사중과 대중들의 흉허물을 들춰 내어 분란과 시비의 일을 만들어 내는 보살이나 불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흉이나 허물은 쓸어 덮어주고 오히려 사랑과 자비의 손길로 덜깨인 제자들을 이끄신 것을 우리는 주리반특가나 라훌라 난타등의 예화에서 봅니다.

좀 부족한 제자일망정 부모가 못난 아들 아끼듯 더욱 따뜻하게 감싸고 보살필 때 본성속에 숨어있는 지혜와 자비의 싹이 움터 나와 온전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룬 이들이 그들이지요.

혹 들리는 말로 “절에 수십년 다녔어도 배운 것이 없다” “되는 일이 없다”는 등의 말로 평소에는 열심히 복을 닦고도 한순간에 복을 털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실제로 절에 왔다 갔다 한 것은 몸 뿐이요 마음은 세간의 분요한 잡사에 사로 잡혀 마음 닦는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이 절뿐만 아니라 여러 사찰의 신도님들을 보아도 법회를 통해 법문을 듣고 마음닦는 공부를 하여 안심입명을 얻고자 하는 분들은 틈틈이 혹은 일요법회 정기 법회등을 동참하여 한구절의 법구라도 열심히 듣고 공부 하고자 하나 대부분의 불자들은 ○○기도 ○○불사 하는등의 일에는 서로가 열을 내면서도 공부하러 모이자 하는 법회에는 흔한 말로 내놓은 보살입니다.

불자라고 하면 부처님의 아들과 딸이거나 제자라는 뜻을 가리킵니다.

이 몸은 부정모혈을 빌어 나왔을 망정 수계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그것을 가리켜 진리의 아들, 법의 계승자라 하는 것이지요.

한번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나 자신의 참 가치가 진정한 법의 계승자요.

진리의 아들 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확연하게 다가 온다면 그 기쁨 즉 법희 선열 속에서의 삶 또한 안정과 행복이 약속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불자요.

법의 계승자요.

진리의 아들 딸임을 각성한 이들이 자신의 삶이 곧 부처님의 삶이요.

법의 삶이 되도록 함에는 부단한 정진과 노력이 함께 요구 됩니다.

법과 진리의 이름뿐인 계승자와 상속자가 아니라 법과 진리의 참다운 구현자요, 전법자로서의 자세를 갖추고자 함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학생은 학생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거사는 거사대로 보살은 보살대로 함께 모여서 법을 논의하고 법에 의해 생각하고 법에 의해 잠드는 생활이 계속 되면서 은연중에 중생으로서의 구습이 하나하나 닦여져 나가고 불보살의 지혜와 자비의 정신으로 훈습된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며 그와 같은 불자들이 모이고 만나는 것을 불자공동체, 불국정토의 구현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며 비로소 부처와 조사의 은혜를 제대로 갚았다 할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중에 인생 4난득이라 하신 것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나기 어렵고 남자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재세시 뵙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우리는 백천만겁을 지내도록 만나기 어려운 불법의 가르침을 만난 사람들이지만 이생을 바르고 진리적인 삶으로 살지 못하고 비껴갈 때 다시 어느때 후일을 기약할 것인지 심사숙고할 일입니다.

정기법회일,일요가족법회하는 오전 10시에는 그날의 모든 일 가운데 법회가 중심이 되도록 하루의 계획을 짜려고 노력 하며 가족과 함께 성전을 모시고 절로 나서는 발걸음이 곧 우리 불교를 흥왕케하고 가정을 복되게 하는 첩경이 되고 지름길이 됩니다.

그렇게 될 때 ‘ “수십년을 다녀도…'” ‘ “열반당 도깨비'” 등의 자랑스럽지 못한 이야기들을 우리 주위에서 방생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계절에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