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스님─해원의 기도(3)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3)

법안스님

해원(解寃)의 기도 참회기도는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업을

안으로 깊이 참회해서 그 업을 녹이는 길이지만 해원기도는 나로 인해서 상처를 입은 상대방의 마음속에 심어진 원한과 독심을 풀어 업을 녹이는 것이다.

나의 몸․입․생각(身口意)으로 해서 상처를 받아 가슴에 못이 박힌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해소해 주고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며

피해에 대한 대가를 조금이라도 보상해서 원한과 독심을 녹여 주는 것이 해원상생의 기도이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하려면 내가 누구에겐가 손해를 끼쳤거나 누명을

씌운 일이 있을 때 또는 배신을 하였거나

공연한 시비를 하여 마음에 상처를 준 일이

있었다면 기도에 앞서 먼저 상대방을

찾아가서 실지로 참회하고 불보살님전에 불공을 해서 그 마음을 풀어준다면

이것은 무엇보다 빠른 길이요,

확실하게 푸는 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어서 이 세상에 없거나 또는 멀리 있어서 직접 만나서 풀 수 없는

사정일 때는 심법(心法)을 통해서

나 혼자라도 해원기도를 해서 그 원한의 상극기운을 풀어야 한다.

마음이란 미묘해서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선악간에 생각을 거듭하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이생에 못 풀면 다음생의 어느 때까지

저장되어 있다가 인연을 만나게 되면 싹트며

또 한편으론 상대방의 마음속에 인(因)을 심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법계(法界)에서는 자동

녹음되어 되고 마치 비디오 찍듯이

찍혀서 갈무리되기 때문에 인과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인도인들은 아카직 레코드라고 하였다.

거대한 우주 녹화기에 모두 저장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여도 우주법계의 눈은 사람의 선악(善惡)․정사(正邪)을

아카직 레코드에 비디오․오디오를 찍으니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은 곧 인과의 진리이다.

인간 세상에서 지은 죄는 법망을 면할 수도

혹 있으나 인과의 응보와 진리의 감응은

없는 듯한 가운데 자연히 되는 것이므로

속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된 일에서 상대방이 설사

잘못했더라도 그 일로 그가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원한이 심어진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태평스럽게 그 일을 잊어버릴 수가 있으나 상대방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원한을 품었기 때문에 독심이 뭉쳐져서 오랜 시일이 지나 옛일이 되어버렸고 이미 그곳을 멀리

떠나있다가도 그때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면 당시의 그 마음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기운이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그 악한 기운이 나에게 다가올 때에는 재앙으로 오게 된다.

가깝게 지내던 이성간에도 한쪽이 배신을 했거나 또는 오해로 섭섭함을 타서 헤어지게 된 경우,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더라도 그때 아픈 마음의 기운은 소멸되지 아니하여 언젠가는 상대방에게 재앙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만일 결혼 생활이 불행할 때는 그 원인도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강력한 앙심을 품는다.

그러므로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마음에 아픔을 심어준 사람은 평소에 해원기도를 많이 해서 풀어주어야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 채 그 상극의 재앙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편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독한 기운을 품고 있었던 그 사람도 그 기운을 풀지 않는 한, 세세생생 남아 있다가 상극의 기운이 뭉쳐지면 상극의 기운이 상대방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더 큰 재앙을 입게 되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심어진 독초가 자라나고 커서 꽃이 피고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쌍방이 다 같이 상극의 기운을 해원기도를 통해서 녹여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원망심을 맺어주고 불평불만을 조장하여 갖게 해주면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의 마음에 심어지는 씨앗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죄와 복업의 근본은 오직 마음에 있어서 소소한 일이라도 남에게 원결을 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모든 악연의 종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광결선연(善緣)-널리 선연을 맺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이 있고 소원이 있을 때 반드시 먼저 해원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재앙이 닥쳤을 때도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남의 마음에 심어 놓은 상극기운이 되돌아 왔을 수도 있으니 바로 해원기도를 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재앙을 대처해 갈 심력을 얻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 가운데나 내 주위에는 혹, 한 맺힌 원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소원성취기도에 앞서 해원천도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산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어려운 때에나 중요한 시기에 이런 작용은 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입시기도 등에 이르면 조상 가운데 안좋게 죽은 분들을 위하여 해원천도를 올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며 이 선연으로 돌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항해하는 배가 돌풍에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해원기도를 할 때는 먼저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자업(自業)을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겸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풀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바치리라는 지극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정성도 지극해야 하지만 물질적 공양도 성의를 다해서 그 사람의 명의로 공덕을 지어주면 더욱 좋다.

종교적인 사업은 기운이 집중되는 사업이므로 큰 기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상대방이 원한을 품은 사실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재앙을 당할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일심법계를 향해서 혹 나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하고 마음을 풀라고 기원해야 한다.

아울러 그 사람의 몫으로 공덕사업에 공양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업을 녹이고 기운을 정화하는 데는 독경, 염불, 진언을 많이 하면 쉽게 녹여지며, 업설인 지장경이나 반야의 금강경, 백팔참회,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이나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광명진언 등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

기도 기간은 단기(短期)로는 3일이나 1주일을 정해서 하고 중기(中期)적으로는 21일이나 49일 등을 정해서 하면 좋으며, 장기(長期)적으로는 100일기도나 300일기도, 또는 천일기도나 만일기도로 해원기도를 할 때 참회 기도를 아울러 할 수도 있고 참회 기도를 할 때 해원 기도를 함께 해도 좋을 것이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는 게 정상이다.

게으를수록 자신에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신앙은 부지런해야 하며, 부지런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신앙생활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안스님─참회의 기도(2)

어떤 기도를 올릴 것인가(2)-참회의 기도 참회기도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면 이제는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신앙과 수행은 참회로부터 시작된다.

참회란 두 종류의 의미가 합하여 진 것이다.

참(懺)이란 용서를 청하는 것이요, 회(悔)는 후회하는 것이란 의미이다.

남에게 용서를 청하고, 스스로는 후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길인 것이다.

기도(祈禱)라는 말씀 자체가 빌 기(祈), 빌 도(禱)이다.

국어사전에 [빌다] 1 구걸하다.

2.

간청하다.

3 사과하다 등의 뜻이 있다.

진리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는 것을 발로참회(發露懺悔)라고 하며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삼장1)(三障)이 소멸의 길이 열리고 해탈의 문이 열린다.

참회기도를 통해서 신행인은 마음의 찌꺼기를 하나하나 녹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자자(自恣)와 포살이라는 것이 있다.

삼장(三障) 1.

업장(業障 악업만을 이루는 장해, 불법에 들어가는 기연이 무르익지 않은 업.

2.

번뇌장-번뇌라고 하는 해탈을 얻기까지의 장해물.

유식에서는 소지장(所知障)의 댓구가 되고, 구사론에서는 해탈장(解脫障)의 댓구가 됨.

도덕적 장애.

3.

보장(報障)-악업의 과보로서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것.

과거의 업번뇌가 장애가 되어 그 결과로 장애가 되고, 현재의 바른 길로 가려는데 장애가 되는 것.

나는 죄가 하나도 없다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어 쌓여 있는 죄업을 씻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참회기도이다.

불보살님이 자비의 방편으로 중생을 죄업에서 구제하는 길로써 참회의 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참회기도는 본래 불성을 회복하는 길이요 구원이며 거듭남인 것이다.

우리 신행인들은 참회기도로써 무명심을 녹이고 업장을 녹여야 한다.

참회기도는 오염된 옷을 세탁하는 것과 같다.

불행한 일이 생기고 불안한 일이 있을 때 남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고 먼저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기를 살피고 자기를 깨우치고 뉘우치는 참회가 앞서야 한다.

자기반성이 없는 구도자는 허물을 고칠 수 없고 습관을 다듬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자기 변화를 기대할 수 없고 전진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는 일이 없도록 37조도품 가운데 사정단(四正斷) 또는 사정근(四正勤)이 있다.

이미 생긴 악을 없애려고 힘쓰는 것이 첫째요, 악이 생기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 둘째요, 선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이 셋째요, 이미 생긴 선을 늘리도록 힘쓰는 것이 넷째이다.

그러므로 똑같은 과오를 두 번 다시 짓지 않으려는 다짐하는 기도를 하고 앞으로 선행을 닦아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일시적인 생각이나 또 형식적으로 하는 참회의 기도는 아무리 하여도 그 감응을 얻을 수 없다.

옛말에 부처님도 “천배를 올려야 한 번 돌아 보신다”한 것은 진리는 천 번 만 번 거듭 공을 들이는 그 정성에 감응한다는 뜻이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간곡히 용서를 빌면서 사무치는 기도를 하여야 가히 죄업을 녹일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도 숨김없이 진솔한 자기 죄의 고백 없이는 진리의 감응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기도를 할 때 나의 무명이 걷히고 지혜문이 열려서 성불의 기초가 다듬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