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스님ㅡ눈을뜨고 귀를 열어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불자들은 절에와서 기도할 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십시요 남편 출세하게 해 주십시요 건강한 아들 딸 낳게 해 주십시요 우리 아들 사업 성취하게 해 주십시요.

.

.

등등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한 켠, 한 사람 하나의 부류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고 세상을 마음대로 하는 절대권력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와 내가 공생,공존,공명하고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나도 번영하고 너도 번영하는 것 그 방법을 알려 주는 가르침이며 공부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모두가 이익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절에 외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 같은 데서는 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에는 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처님 앞에 기도함에 있어 다같이 잘 살 수 있도록 내 몸에 있는 부처님 종자, 즉 불성을 개발하고 너와 내가 다같이 부처가 되자고 발원하고 서원하는 것이 참다운 기도의 자세이자 바른 기도입니다 이렇듯 불성을 깨닫고 개발하여 너와 내가 함께 성불하자는 것이 불자들의 구경 목적이고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며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우리의 본분사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또한 희로애락을 극복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가르침 입니다 흔히들 삼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지요 삼독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희로애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 불자님들은 제방의 사찰을 참배하면서 사천왕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지요.

마군이나 외도로부터 불법을 호지하는 네 명의 천신입니다 그런데 사천왕을 자세히 보세요 하나는 비파를 들고 있고 또 하나는 칼을 들고 있고 다른 하나는 탑을 들고 있는가 하면 또 한 왕은 용을 짓밟고 있습니다 비파라는 악기를 들고 있으니 즐거움이요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탑을 들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짓밟고 있어 보세요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슬프겠어요 또 한 왕은 칼을 들고 있으니 노여움을 뜻합니다 실로 이 사천왕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뜻하는 상징에 다름 아닙니다.

사천왕이라는 것, 즉 희로애락이라는 것이 바로 이 우주를 지배하고 지키고 있으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희로애락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 부처님께서 설파히신 무상의 도리인 것입니다 기쁠때 늘 기쁘기를 바라지만 그 기쁨 뒤에는 슬픔이나 괴로움이 또 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기쁨을 찾을 것이 아니라 삼독의 어두운 무명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합니다 이것이 참되게 벗어나고 고의 굴레에서 일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법계의 육도 가운데 하늘세계는 즐거움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 중생마저도 즐거움의 복락이 다하면 다시 괴로움의 세상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탐.

진.

치 삼독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어둠이 극하면 새벽이 옵니다 극한 어둠에서 여명이 밝아오는 법입니다 내 속에 있는 어둠은 불성을 밝힘으로써 어둠을 극복하고 나아가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내가 괴로움이 극할 때 바로 나의 업이 가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가 괴롭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고 그 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서 광명을 향한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현실에서 업을 변화시키고 고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험하고 어려운 세상 고통의 세상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해서 하루빨리 밝은 지혜세상을 이 땅에 이룩해야 하겠습니다 녹음방초가 부처님의 국토를 나타냄이요 새소리 물소리 바로 부처님의 법음이며 가르침이라 금강연 가운데 현묘하게 나타난 달의 모습, 이것이 본래 부처님의 몸이요 부처님의 모습이구나 우리가 눈을 바로 뜨면 우리 앞에 나타난 녹음방초의 모습이 그대로 부처님의 국토로 보여집니다 귀를 열고 보면 지저귀는 새소리와 흐르는 물소리 그대로 부처님의 법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강연 속에 비춰진 달빛이나 해의 모습 그것이 부처님의 모습이요 눈을 뜨고 보면 이 우주가 그대로가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볼 수가 없습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현실에서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현해스님─안을 보라 그리고 찾아라

◈안을 보라 그리고 찾아라-

현해스님

◈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이것을 문득 홀로 알게 되면 이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근본이 되는 것이네.

자신의 집에 무진장한 보배를 버려두고 남의 집 문전마다 밥을 비는 거러지여.

우리는 왜 밖에서만 찾으려하는가? 왜 내 집 창고에 가득한 보배들은 보지 못하고, 남의 집 문전을 걸식하는 거지가 되었는가?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한 모든 불자님들에게 있어 지금 가장 소중한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소원은 어떻해야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바로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열매를 따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서 그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동안 타인에게 베풀어준 자비의 공덕씨를 뿌려 놨어야 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많은 시간 동안 운동하고, 남을 위한 간병공덕의 씨를 뿌려 두었어야 하며,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많은 시간 동안 내 자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씨를 뿌리고 아울러 다른 집 자식들의 발전을 위한 기도공덕의 씨를 뿌려 두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많은 시간 동안의 쉼없는 정진공덕을 쌓아야만 하는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부처님에게만 기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시고 그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는 우리 안의 부처님은 보지 못하고 사찰의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에게만 달려와서 기대고, 울며, 하소연합니다.

분명 많은 시간 동안 우리 안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하면 너희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을 것인데 아무도 그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자꾸만 자기 바깥의 부처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잠시나마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입으로 맛 볼 수 있는 것,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감각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잠시 쉬고 안으로 안으로 모든 감각들을 집중하여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면의 모습을 보며, 내면의 느낌을 관찰하여 보십시오.

자세히 더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여러분 안의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그 부처님에게 소원을 빌고 그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장 영험이 빠를 것입니다.

제가 잠시 저와 오랜 인연의 한 보살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분을 처음 뵙게 된 건 약 20여 년 전 일입니다.

지금도 있는 서울 조계사 앞의 불교서점에서였는데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책을 하나 추천해 달라는 보살님에게 책을 추천해 주고는 아침 저녁으로 다른 일체의 바람도 가지지 말고 그냥 염주 한 바퀴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처소를 묻길래 제가 있던 서울 안암동 개운사 승가대학과 저의 법명을 가르쳐 주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살님이 찾아와서는 ‘스님 덕분에 제가 살았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셨는데 정말 환희심이 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그 보살님이 다니던 절이 ‘광덕사’라는 절이였는데 그 절이 글쎄 4월 초파일을 앞두고 불이 난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법당 안에서 법회를 보는데 어떤 사람의 실수로 불이 났으니 오죽 했겠어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것이지요.

그 때에 그 보살님이 그곳에 계셨는데 정말 앞이 캄캄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우왕좌왕 하고 있다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는데 제가 가르쳐 준 ‘관세음보살’ 염송이 생각나더래요.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고자 하는 욕심도 없이 ‘관세음보살님’ 하고 몇 번을 부르는데, 저쪽에 창문이 하나 보이더래요.

그래서 뛰어가서 보니 창이 너무 높아서 올라 갈 수가 없는데, 어디선가 처사님 한 분이 오셔서는 자신의 등을 밟고 올라가라고 하더래요.

그 덕택에 아무런 화를 당하지 않고 살아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법당에는 창문이 없어요.

그 곳 법당에도 아무리 찾아봐도 창문이 없더래요.

그리고 그 처사님도 보이질 않구요.

그래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마도 ‘관세음보살님’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 보살님한테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옆집에서 가스가 폭발하여 불이 났는데 자신의 집 처마만 조금 태우고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 때도 ‘관세음보살님’을 염송했구요.

이런 이야기들이 신기하거나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접 당해보신 분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보살님은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특별한 수행을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냥 ‘관세음보살님’을 찾은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자신 내면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러분도 이제 법당에 엎드려서 불공비를 내거나 공양미를 내는 것으로 모든 기도를 다하려 하지 말고 항상 소원의 열매를 따기 위한 공덕과 기도의 씨를 뿌려두십시오.

언제나 나보다는 남을, 나보다는 우리를, 나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는 공덕의 씨를 뿌려두시기 바랍니다.

현해스님─가난한 수행자

가난한 수행자

-현해스님-

우리 불교에서는 빈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빈도’는 ‘가난한 수행자’라는 의미로 스님들이 자신을 낮추어 사용하는 말입니다.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못하지만, 정신적인 행복과 최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는 자부심도 함께 들어 있는 말입니다.

‘가난’이라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슬픔이 될 수도 있고, 자유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스님네들은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가진 것 없는 왕자가 되고, 여러분들은 많이 가지려 애를 씀으로써 돈 많은 거지가 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왜 가진 것 없는 왕자가 되고, 돈 많은 거지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의 풍요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인간들의 행복기준 때문입니다.

스님네들은 자기 집, 자기 돈, 자기 이름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언제나 신도님들의 존경과 공양물로 아무런 근심없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여러분 주위의 돈 많은 이웃들은 도둑과, 사기와, 집안간의 싸움, 그리고 정치적 희생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각종 질병과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함을 무수히 보아 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돈 많고, 이름이 높으면 뭐합니까? 언젠가는 병들고, 죽어서 사라질 것을 말입니다.

젊어서는 돈 벌고, 자리 쌓기에 바빠서 인생을 허비하고, 나이들어서는 그 젊었을 때의 고생으로 병들고 지쳐서 끝내 제대로 자신의 개인행복 한 번 찾아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우리들.

이것은 슬픔입니다.

물질과 권욕에 눈이 먼 우리네들의 슬픔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빈도’라고 자처하며 산으로 머리를 삭발하고 들어왔습니다.

세속에서 쌓은 재산과 명예, 지식과 기술을 모두 버리고 산으로 들어와 그야말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탄도 받을 수 있겠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공존하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성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아무리 여러분이 행복하다고 해도 우리 스님네들의 모든 것 다버린 이 행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입니다.

욕심에서 벗어나 무위자적하며 세상의 이치를 관찰하고, 그래서 자연을 닮아가는 이 생활이 바로 부처님의 법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님네들을 다른 잣대로 쳐다보지 마시고,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보고 존경하며, 또한 스님네들의 그 모습이 바로 부처님의 법인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올바르지 못한 수행을 하는 스님네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스님네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정말 무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여러분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바르지 못한 스님들도 여타의 청정한 스님들에 의해서 뉘우치고 참회하며 바른길을 걸어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불자들이 모두 쌓아 두어야 할 성스러운 일곱 가지 재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 일곱 가지 칠성재(七聖財)를 여실히 쌓아 두시기 바랍니다.

첫째의 성스러운 재물은 ‘믿음’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부처님의 제자들까지 믿어서 결국에는 모든 인간들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그런 믿음의 재물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재물은 올바른 행동입니다.

앞의 믿음이라는 재물을 모으려면 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재물이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이 나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세번째는 반성하는 자세입니다.

늘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또는 모든 사람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그른 일과 불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돌이켜보고 점검하는 그런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네번째는 참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른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옳음을 인정 받으려면 꾸준히 기다리고 노력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섯번째는 항상 좋은 말을 들으려 애쓰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 뿐만 아니라 세상의 좋은 이야기들을 듣고 본받으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여섯번째는 남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베풀라는 것입니다.

나의 생활이 빈곤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그 대가를 바라지 말고 남에게 베풀줄 아는 마음.

이 마음의 재물을 쌓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네 스님들과 같은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는 슬기롭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 슬기롭게 사는 방법만 알면 세상이 훨씬 행복해 보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물입니다.

누구도 훔쳐가지 못하는 이 일곱 가지 보배는 여러분의 삶을 훨씬 더 윤택하게 해 드릴 것입니다.

발행일

카테고리 현해스님법문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