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철스님─짚신스님

짚신스님

-원철스님-

중국 당나라 때의 진종숙이라는 스님은 도인으로 명성이 자자한데도 절에서 살지 않았다.

큰 절에 있으면 엄청난 예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다 허물 어져가는 집에서 작업복 같은 허름한 승복을 입고 짚신을 삼으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여분의 짚신은 대문 앞에 걸어 놓고 오가는 길손들에 게 그냥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사는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대접을 받는 것 자체가 빚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절강성 용흥사라는 절에서 일천 여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호령하면서 산 적도 있었다.

그때도 숨어서 짚신을 삼아 대중 에게 몰래 나누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모든 걸 버리고 숨어 살면서 입에 풀칠할 정도가 되면 나머지 짚신은 남들에게 그냥 주었다.

말 그대로 적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짚신스님’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감추어도 사향의 향기는 퍼지기 마련이고 호주머니의 송곳은 삐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후배 승려들이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아 왔다.

하지만 그는 전부 문 앞에서 쫓아버렸다.

젊었을 때처럼 대중을 또 모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접받는 것을 빚이라 생각하여 받지 않는 것, 짚신을 삼으면서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 삼매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의 가치창출이다.

스님에게 짚신을 만드는 행위란 단순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수행을 위한 방법론이었다.

– 원철스님 /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에서 –

월철스님─이 세상 엄마는 모두 바보다

이 세상 엄마는 모두 바보다 -원철스님- 성철스님 어머니 역시 “10년 후에 돌아오겠다.

“며 집 나간 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무소식인 자식에게 물어 물어 찾아갈때는 천생 어머니 모습 그대로 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챙기던 모습은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성스러움 마저 풍겼다고 이 책은 전한다.

어머니는 준비한 물건을 절 앞에 있는 바위에 올려놓고 산 아래로 내려간 뒤 한참 후 다시 올라와 바위위가 깨끗하면 아들인 성철 스님이 가져간 걸로 생각하고 기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올려 놓은 물건이 널브러져 있으면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앞이 캄캄해 하늘과 땅마저 분간되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해엔 금강산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며느리가 전해 달라고 맡긴 편지는 아들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까닭에 내밀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집이 가까워지자 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 졌고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절집의 “바보 엄마”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당나라 동산양개 선사는 어머니를 하직하는 글인 “사천서”을 남겼다.

아들은 이미 출가했으니 이제 없는 자식처럼 여기시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뜻은 아랑곳없이 당신 스타일대로 답장을 했다.

“자유포모지의(子有抛母之意)나 낭무사자지심(娘無捨子之心)이라” 자식은 어머니를 버릴 수 있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버릴 마음이 없구나.

이 세상 엄마는 모두 바보다.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바보다.

-원철 스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도 멀지않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