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 사고 청풍을 팔았더니

백운매료매청풍 白雲買了賣淸風 흰 구름 사고 청풍을 팔았더니

산진가사철골궁 散盡家私徹骨窮 살림살이 바닥나 뼛속까지 가난하네

유득수간초모옥 留得數間草暮屋 남은 건 두어 간 띠 집뿐이니

임별부여병정동 臨別付與丙丁童 떠날 제 불 속에 던져버려야지

물외한인(物外閒人)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번잡스러움을 피하여 아무데도 걸림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한 이 말은 도인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속의 욕락(慾樂)을 벗어나 마음 비우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 가풍이 그대로 세상 물정 밖에서 한가로이 여유자적 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구름과 바람을 사고판다는 첫 구는 탐욕이 사라진 무소유의 정신을 읊은 구절이다. 바람과 구름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소유가 아니므로 기실 사고 팔 수도 없다. 그런데 왜 사고 판다고 했는가? 하늘에 흰 구름 떠 있으면 그것을 벗하고 맑은 바람 불어오면 상쾌한 기분 느낀다. 무심히 살다 보니 근심걱정 사라져 번뇌 없어 좋지만 가진 것 하나 없으니, 살림살이 바닥이 나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두어간 띠집 뿐이라는 것은 아직 명이 붙어 있는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이마저 떠날 적에 불에 태워 화장하고 말 것이다. 불을 병정동이라 한다. 가난해질 대로 가난해진 마음이 차라리 눈물이 날 정도로 맑아 보인다.

이 시는 중국 송나라 때 석옥청공(石屋淸珙1272∼1352)선사의 시다. 고려의 태고 보우(太古普雨1301∼1382)선사가 석옥의 법을 받아와 고려불교를 중흥시켰다. 백운경한(白雲景閑1299~1375)도 석옥에게 법을 물어 지도를 받다가 공민왕 때 고려로 돌아왔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3월

흰 구름 쌓이는 산속의 삼간 초옥

白雲堆裏屋三間(백운퇴리옥삼간) 흰 구름 쌓이는 산속의 삼간 초옥

坐臥經行得自閑(좌와경행득자한) 앉고 눕고 거닐면서 스스로 한가롭네.

澗水冷冷談般若(간수냉냉담반야)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말하는데

淸風和月遍身寒(청풍화월변신한) 달빛 실은 맑은 바람 온몸이 서늘하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옛 도인들은 자연 그대로가 도락을 즐기는 생활 그 자체였다.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서 자연을 관조하면 내가 산이 되고 구름이 되며, 바람이 되고, 달빛이 되고 시냇물이 된다. 보고 듣는 마음의 심상이 진속(眞俗)을 하나로 어울리게 해 불국정토의 본래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옹집(懶翁集)’에 수록 되어 있는 산거(山居)라는 제목의 이 시는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인이 되어 있는 순수한 이미지의 서정이 나타나고 있다. 자연과 같이 사는 삶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이 아닐까? 인공의 문명이 어쩌면 삶의 폐해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흰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흰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 않다가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손님이 찾아오자 비로소 문을 여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노) 온 골짜기에 송화가 쇠었네.

조선조 중기 이달(李達: 1539~1618)은 한시(漢詩)의 대가로 알려진 유명한 시인이다. 호가 손곡蓀谷으로 시문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으며 서예에도 조에가 깊었다. 위의 시는 그가 남긴 대표적인 시로 산사(山寺)라는 제목의 시이다. 그는 주옥같은 많은 시를 남겼는데 [손곡시집]에 33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전한다.

서자출신인 자신에 대한 한(恨)을 노래하고 불우한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시들이 많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과 그의 누나 허난설헌을 가르쳤다. 허균은 이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이란 스승 이달의 전기를 그가 지었다. 허난설헌도 이달에게 시를 배워 이조를 대표하는 여류 한시인(漢詩人)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