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에 담긴 물이 정이 없다하지 말게나

休言潭水本無情(휴언담수본무정) 못에 담긴 물이 정이 없다하지 말게나.

厥性由來得一淸(궐성유래득일청) 그 본성은 원래 하나의 맑음뿐이라네.

最愛寥寥明月夜(최애요요명월야) 고요한 달밤이 가장 좋나니

隔窓時送洗心聲(격창시송세심성) 창 너머 때로 마음 씻기는 소리 들려온다네.

달밤의 못물을 두고 지은 멋진 시이다. 고요한 산방의 창 너머로 계곡의 웅덩이에 달빛이 교교하다. 물은 본래 맑은 것으로 모든 것을 씻어주는 청정이 그 이미지다. 때로는 물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씻어지는 깨끗함을 느낀다. 더구나 고요한 달밤에 호수나 연못의 물을 보면 은은한 정서가 가슴 속에 물이 되어 흐를 것이다. 달빛 젖은 명상에 아련히 떠오르는 물과 같은 정이 고요 속에 그림자처럼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중(靜中)의 동(動)이 되어 고요를 깨뜨리면서 고요에 가라앉는 돌멩이가 되기도 할 것이다.

무용수연(無用秀演1651~1719) 스님이 남긴 이 시는 당시 스님과 교류하던 사대부 김창흡에게 화답한 시로 그 제목이 나와 있다. 유자에게 은연중 불법의 참 이치를 물에 비유 설해준 것 같기도 하다.

멀리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

수리무인도(數里無人到) 멀리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

산황시각추(山黃始覺秋) 산이 단풍들어 가을인 줄 알았네

암간일각수(巖間一覺睡) 바위틈에 한 숨 자다 깨어 보니

망각백년우(忘却百年憂) 사는 걱정 모두 다 날라 가버렸네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는 지극히 평범한 시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탈속한 산거인의 맑은 서정이 스며 있다. 부용도개(芙蓉道楷)스님이 지은 시인데 스님은 중국 송나라 때 조동종의 스님이다. 생몰 연대는 1043∼1118년.

인구가 과밀하여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 같은 현대의 생리에서 볼 때 은자의 안일무사가 오히려 부럽기도 할 것이다. 인가를 멀리 벗어난 깊은 산중. 은거하고 사는 사람 이 있어 날 가는 줄 모르고 사는데, 어느 날 산에 단풍이 들어 산색이 울긋불긋 변하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계절이야 으레 오고 가는 것, 할 일 없어 바위틈에 누워 낮잠 한숨 잤더니 무심한 산이요 무심한 하늘이라, 사는 걱정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공연히 철학하는 사람들이 인간에게 불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 하는 인간이 되라”고 했지만 만족은 뭐고 불만은 뭐냐. 그대로 산 속에 한 그루 소나무가 되어버린 것을.

은자송(隱者頌)이라 할 이 시는 생존경쟁을 초월한 달인의 노래다. 비록 우리는 현실의 노예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누구 없이 한 생각 돌이키면 나 역시 은자요 도인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2년 11월 (제24호)

매우 깊고 미묘한 가르침

심심차미금강교 甚深且微金剛敎 매우 깊고 미묘한 ‘금강삼매’의 가르침을

금승앙신략기술 今承仰信略記述 이제 우러러 받들어 간략히 기술하였으니

원차선근변법계 願此善根遍法界 바라건대 이 선근이 법계에 두루 퍼져

보리일체무유결 普利一切無遺缺 널리 일체 중생을 빠짐없이 이롭게 하소서

이 시는 원효스님의 『금강삼매경론』의 말미에 붙어 있는 게송이다. 한국불교의 새벽을 연 원효스님의 탁월한 업적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지만 그가 남긴 게송은 몇 수 안된다. 미타증성게(彌陀證性偈)를 비롯하여 몇 개가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대비심에 입각한 원력이 깊이 서려 있다. 이 게송에서도 좋은 과보를 받게 될 선근이 법계에 가득하여 일체 중생 모두를 이롭게 해 달라는 원력이 피력되어 있다.

『금강삼매경론』은 『금강삼매경』을 주석한 책이다. 원래 자세히 해석한 광소(廣疏)와 간략히 요약한 약소(略疏)의 두 가지 본을 원효스님이 저술하였다. 이 소를 논이라고 격상하여 취급한 것은 중국의 역경 삼장들에 의해서이다. 중국과 한국에서 저술된 경전의 소가 논으로 취급된 예는 『금강삼매경론』뿐이다. 그만큼 원효의 저술이 높게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금강삼매란 보살 10지의 수행을 완성한 보살이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기 위하여 들어가는 선정을 일컫는 말이다. 번뇌장과 소지장의 일체 장애를 모두 끊었을 때 들어가는 선정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88년 3월 제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