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고 산 소중한 것들 –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낮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원자, 분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했다.

유혹은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여가 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 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품들

더 많은 광고 전단, 더 줄어든 양심,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인적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졌는데

춘심고원적무사 春深古院寂無事 인적 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졌는데

풍정한화낙만정 風定閑花落滿庭 바람 자자 꽃잎만 뜰에 가득 쌓였구나

감애모천운청담 堪愛暮天雲晴淡 해질 무렵 구름 색깔 너무 좋아서

난산시유자규제 亂山時有子規啼 산에는 여기 저기 두견새 우네

일찍이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가 이 말을 한 때는 18세기 초엽으로 인공의 문화가 오늘에 미치지 못했을 때다. 지구촌의 문명이 거대한 도시문화로 발전해 가는 추세에서 볼 때 사람들의 정서가 자연과의 교감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산 속의 춘경을 읊어 자연과 동화된 서정을 통해 아름다운 시상을 전개해 놓았다. 도시의 고민이 전혀 없는 자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다. 선시는 대부분 인간 실존의 고민 따위가 기술되지 않는다. 번뇌의 갈등이 극복된 경지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은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보조스님의 제자 혜심(惠諶)스님이 이 시를 지었다. 지리산 연곡사에서 어느 해 늦은 봄에 지어 당두(當頭)스님에게 주었다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무의자(無衣子) 시집에 수록된 시로 원제목이 ‘춘만유연곡사증당두로(春晩遊燕谷寺贈當頭老)’로 되어 있다. 늦은 봄 연곡사에 놀다가 당두스님에게 주다는 제목이다. 무의자는 혜심스님의 자호다. 입적하고 나서 고종이 시호를 내려 진각국사가 되었다. 유명한 선문염송 30권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보조스님이 죽고 난 뒤 보조스님이 창설한 수선사의 2대 법주가 되어 당시의 불교계를 이끈 공로를 남긴 분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6월 (제31호)

인생은 바람이고 구름인 것을

누가 날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날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번 왔다 가고 아니오며

인생 또한 한번가면 되돌아 올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이라, 구름이라 말하지 않으리요.

오늘 내 몸에 안긴 가을 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위에 무심이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무량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잘난 청춘도, 못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난 인생도, 저 잘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 진데

어느 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가는 생을 두고

무엇이 청춘이고 그 무엇이 인생이라고

따로 말을 하리까.

우리네 인생도

바람과 구름과 다를 바 없는 것을.

경허선사 ‘경허록’ 중에서. 월간 반야 2012년 6월 1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