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졌는데

춘심고원적무사 春深古院寂無事 인적 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졌는데

풍정한화낙만정 風定閑花落滿庭 바람 자자 꽃잎만 뜰에 가득 쌓였구나

감애모천운청담 堪愛暮天雲晴淡 해질 무렵 구름 색깔 너무 좋아서

난산시유자규제 亂山時有子規啼 산에는 여기 저기 두견새 우네

일찍이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그가 이 말을 한 때는 18세기 초엽으로 인공의 문화가 오늘에 미치지 못했을 때다. 지구촌의 문명이 거대한 도시문화로 발전해 가는 추세에서 볼 때 사람들의 정서가 자연과의 교감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산 속의 춘경을 읊어 자연과 동화된 서정을 통해 아름다운 시상을 전개해 놓았다. 도시의 고민이 전혀 없는 자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시다. 선시는 대부분 인간 실존의 고민 따위가 기술되지 않는다. 번뇌의 갈등이 극복된 경지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면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은 그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보조스님의 제자 혜심(惠諶)스님이 이 시를 지었다. 지리산 연곡사에서 어느 해 늦은 봄에 지어 당두(當頭)스님에게 주었다고 제목에서 밝히고 있다. 무의자(無衣子) 시집에 수록된 시로 원제목이 ‘춘만유연곡사증당두로(春晩遊燕谷寺贈當頭老)’로 되어 있다. 늦은 봄 연곡사에 놀다가 당두스님에게 주다는 제목이다. 무의자는 혜심스님의 자호다. 입적하고 나서 고종이 시호를 내려 진각국사가 되었다. 유명한 선문염송 30권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그가 바로 보조스님이 죽고 난 뒤 보조스님이 창설한 수선사의 2대 법주가 되어 당시의 불교계를 이끈 공로를 남긴 분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6월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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