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으로 하는 방편의 일이여

자비방편사 慈悲方便事 자비심으로 하는 방편의 일이여

촉처유공부 觸處有工夫 부딪치는 곳마다 공부가 있구나

응변수성색 應變隨聲色 소리와 형상 따라 응용하고 변통하니

단단반주주 團團盤走珠 둥근 쟁반 위에 구슬이 구르네

사람 사는 일이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면 세상일이 수월해질 수도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하는 일은 괴롭지만,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는 일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일상의 평범한 일과가 실상은 생활의 방편이다. 말하자면 살아가는 방식을 저마다 현실 속에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 저런 일이 삶의 파동이요 존재의 활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일에 자비를 띠고 이타 원력으로 한다면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본분공부다. 깨달음을 체득하여 도를 얻는 본분공부이다.

또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불공드리는 일이라고 했다. 때문에 공들이는 일 그 자체가 바로 공부다.

천동굉지(天童宏智1091~1157)선사는 중국 송나라 때 묵조선의 거장이었다. 묵조선이란 화두참구를 하지 않는 선법이다. 5가 7종의 중국 선의 종파 중 조동종 등은 임제종 선풍과 달리 선수행에 공안을 채택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 천동굉지는 간화선(看話禪)의 거장 대혜종고(大慧宗杲)와 같은 시대 인물로, 간화선법을 주장하던 대혜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 역시 당대의 거봉이었다. 그가 먼저 입적하자 묵조타파를 부르짖으며 오직 간화만이 참된 선법이라 주장했던 대혜가 천동의 49재 때 영가법문을 하면서 “법의 바다가 말라버렸고 법의 깃대가 꺾이었다”고 애도를 하기도 했다. 달인분상에서는 밥 먹고 잠자는 것도 공부라고 한다. 자유자재하게 온갖 경계, 곧 소리와 형상을 대하면서 어디에도 걸림 없는 것이 ꡐ쟁반에 구르는 구슬과 같다ꡑ한 마지막 구가 시원하고 여유가 넘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8월 제45호

자네는 친정이 멀어서

군가원환호 君家遠還好 자네는 친정이 멀어서 좋겠네.

미귀유유설 未歸猶有說 가지 못해도 멀어 못 간다 하면 되니까

이아가동향 而我嫁同鄕 나는 한동네로 시집왔지만

자모삼년별 慈母三年別 삼년 동안 어머니께 가보지 못했다네.

촌부의 심사를 그려놓은 이 시는 무척 감동적이면서 사람의 동정을 유발하는 시이다. 같은 동네로 시집간 아낙이 시집살이에 바빠 한동네 있는 어머니를 3년 동안 찾아뵙지를 못했다는 말이다. 무슨 사정이 있어 시가를 한시도 떠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병든 시부모나 남편을 섬기기 위한 하나의 도리 때문이었을까? 엄격한 시가의 법도 때문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친정이 멀리 있는 친구를 빗대어 자기의 안타까움을 은연히 하소연하고 있다.

이 시는 조선조 후기의 문인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시다. 당시 조정의 벼슬도 두루 역임했던 그는 율곡의 학문을 사모하면서 학문에 몰두, 성리학에 밝았으며 만년에 후학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근사록(近思錄)을 의지하여 사상을 키우고 학문을 넓혔다고 전해지며, ‘석담작해(石潭酌海)’, ‘침두서(枕頭書)’ 등의 유저가 있으며 문집 ‘산운집(山雲集)’에 많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촌부(村婦)라는 제목의 시다.

요산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9년 2월 제99호

있네없네 깔아뭉개

유무좌단로진상 有無坐斷露眞常 있네 없네 깔아뭉개 진상을 드러내니

일점고명약태양 一點孤明若太陽 한 점 밝은 그것 태양 같구나.

직하승당유끽방 直下承當猶喫棒 바로 곧 알아채도 방망이 맞을 건데

나감냉좌암사량 那堪冷坐暗思量 어찌 쓸쓸히 앉아 이리저리 생각하랴.

선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선 논리를 세우는 것부터가 금물이다. 관념화된 의식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 자체가 철저히 비워져야 한다. 있네, 없네 하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으면 변견(邊見)에 떨어져 중도실상을 통달하지 못한다. 제 일구의 뜻을 바로 이 점을 밝혀 놓았다. 유와 무를 다 끊어 없애고 나니 참되고 한결같은 그 자리가 드러나더란 말이다. 밝기가 한 점 태양과 같아 어둠을 몽땅 삼켜버렸다. 이 자리에서는 알았다는 지견이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물며 생각을 굴리는 것이야말로 절대 금물이다.

이 시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이 지은 시이다. 고려 말 보조국사의 수제자가 되어 보조의 법을 이은 혜심은 진사에 급제했으나 보조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한다. 자호를 무의자(無衣子)라 했으며 『선문염송』30권을 지었는데 중국의 『전등록』에 버금가는 명저로 알려져 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7월 제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