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네없네 깔아뭉개

유무좌단로진상 有無坐斷露眞常 있네 없네 깔아뭉개 진상을 드러내니

일점고명약태양 一點孤明若太陽 한 점 밝은 그것 태양 같구나.

직하승당유끽방 直下承當猶喫棒 바로 곧 알아채도 방망이 맞을 건데

나감냉좌암사량 那堪冷坐暗思量 어찌 쓸쓸히 앉아 이리저리 생각하랴.

선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선 논리를 세우는 것부터가 금물이다. 관념화된 의식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각 자체가 철저히 비워져야 한다. 있네, 없네 하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으면 변견(邊見)에 떨어져 중도실상을 통달하지 못한다. 제 일구의 뜻을 바로 이 점을 밝혀 놓았다. 유와 무를 다 끊어 없애고 나니 참되고 한결같은 그 자리가 드러나더란 말이다. 밝기가 한 점 태양과 같아 어둠을 몽땅 삼켜버렸다. 이 자리에서는 알았다는 지견이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물며 생각을 굴리는 것이야말로 절대 금물이다.

이 시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이 지은 시이다. 고려 말 보조국사의 수제자가 되어 보조의 법을 이은 혜심은 진사에 급제했으나 보조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한다. 자호를 무의자(無衣子)라 했으며 『선문염송』30권을 지었는데 중국의 『전등록』에 버금가는 명저로 알려져 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7월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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