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떨어져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날리고

落花千片萬片(낙화천편만편) 꽃잎은 떨어져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날리고

垂柳長條短條(수유장조단조) 긴 가닥 짧은 가닥 버들가지는 휘늘어졌는데

悄悵天涯獨客(초창천애독객) 슬프구나. 하늘 끝 외로운 나그네

不堪對此魂消(불감대차혼소) 이를 보고 있으니 혼이 녹아내리는 것 같구나.

행각 길에 올라 길을 가다가 저무는 봄의 서정에 울컥 슬픔이 서려와 지은 시이다. 때로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인 것 같은 처절한 고독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존재가 개체적으로 분리될 때는 하나뿐이 듯이 아무리 연기의 관계 속에 있다 하여도 하나는 어디까지나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자신과 똑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부의 고독을 느끼면서 자신을 전달할 곳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나를 100% 전달할 곳은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조선조 중엽의 백암성총(栢庵性聰:1631~1700) 스님이 지은 시이다. 길을 가다가 저무는 봄의 서정을 느끼고 지은 시로 제목이 ‘도중춘모(途中春暮)’로 되어 있다. 취미수초(翠微守初)에게 참학하여 법을 전해 받은 성총은 임자도에서 경전을 싣고 표류해 온 배를 발견 화엄경 소초와 회현기(會玄記), 기신론필삭기(起信論筆削記) 등을 발견하여 이를 간행해 유포하여 교학 부흥에 큰 공을 남기기도 하였다.

길은 실낱 같이 구부러져 푸른 산으로 닿았는데

線路縈紆接翠微(선로영우접취미) 길은 실낱 같이 구부러져 푸른 산으로 닿았는데

不煩問寺逐僧歸(불번문사축승귀) 절간이 어디냐고 묻기도 귀찮아 스님 가는대로 따라왔네.

到山才聽淸溪響(도산재청청계향) 산에 도착하자마자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니

舂破人間百是非(둉파인간백시비) 인간 세상 온갖 시비 찧어 부수어 버리는구나.

고려 때 문신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절을 소재로 한 몇 편의 시를 남겼다.

위의 시는 산사를 찾아간 이야기가 풍경화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전‧후집 합하여 53권이나 되는 방대한 량으로 시문뿐만 아니라 수록된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벼슬도 재상을 역임하기까지 한 그였지만 문인으로의 명성과 명예를 더 중히 여기고 살았다 한다.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를 쓰면서 자주 절을 찾으며 마음을 쉬었던 흔적이 가끔 발견된다. 마지막 구절의 인간의 온갖 시비를 절구통에 방아를 찧듯이 부수어 버린다는 말의 뉘앙스가 묘하다.

길동무도 없이

춘산무반독심유 春山無伴獨尋幽 길동무도 없이 혼자 봄 산 깊숙이 들어가니

협로도화친장두 挾路桃花襯杖頭 길가의 복사꽃 지팡이에 스친다.

일숙상운소우야 一宿上雲疎雨夜 상운암의 밤은 성근 비에 젖는데

선심시사양유유 禪心詩思兩悠悠 선심과 시 생각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이 시는 불우한 생애를 마쳤던 조선조 명종 때의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선사의 시이다. “지금 내가 없으면 불법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기꺼이 불교를 위해 순교의 길을 택했던 그도 문정왕후가 살아 계셨을 땐 두터운 신임을 받고, 온갖 탄압을 받고 쇠망하는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유생들의 끈질긴 협공을 받던 보우선사는 문정왕후가 죽자 끝내 제주도로 귀양을 갔다가 타살을 당한다. 문정왕후가 죽자마자 불과 6개월 동안 보우를 죽여야 한다는 계(啓)가 75건, 불교의 폐단과 보우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가 423건이나 쏟아져 올라왔다고 한다.

이 시는 상운암이란 암자에서 숙박을 하면서 지은 시이다. 제목이 ‘숙상운암’으로 되어 있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5월 제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