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달밤의 개구리 소리에

춘천월야일성와 春天月夜一聲蛙 봄날 달밤의 개구리 소리에

당파건곤공일가 撞破乾坤共一家 하늘과 땅을 쳐부수니 한 집안이 되었네.

정임마시수회득 正恁麽時誰會得 이때의 소식을 누가 알리오?

영두통각유현사 嶺頭痛脚有玄沙 산마루에 발 다친 현사가 있었구나.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선사는 간화선을 완성시킨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의 사대부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간화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편지들을 모아 수록한 책이 서장(書狀)이라는 책인데 이는 대혜어록 가운데 들어 있는 편지모음집이다. 서장에는 42명이나 되는 당시 사대부들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무구(無垢)거사 장구성(張九成)은 시랑(侍郞)을 역임한 사람인데 대혜의 법을 이었다. 위의 시는 그가 선을 참구하다 어느 봄날 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은 뒤 지었다는 시이다. 하늘과 땅을 쳐부수었다는 것은 현상의 차별을 넘어 진여의 세계를 체험 했다는 말이다. 남에게 말해 줄 수 없는 깨달음의 소식이 감격스럽기만 하여 선열에 가득 차 있는데 홀연히 현사사비(玄沙師備836~908)가 산고개를 넘다 발가락이 돌부리에 채여 아픈 통증을 느끼며 내려다 보다 피가 나는 것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는 오도기연(悟道機緣)이 생각나고, 자기의 오도기연과 상통됨을 확인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9년 5월 제 102호

복사꽃 연분홍 간밤 비에 젖어 있고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복사꽃 연분홍 간밤 비에 젖어 있고

柳綠更帶春煙 유록갱대춘연 푸른 버들가지에 봄 안개 어리네.

花落家童未掃 화락가동미소 꽃잎은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는데

鶯啼山客猶眠 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울음 속에 나그네는 졸고 있네.

춘경을 담고 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비온 뒷날 날이 개자 복사꽃 붉은 꽃잎 아직 물기를 머금고 버들가지 사이로 봄 안개가 어린다. 마당에는 떨어진 꽃잎이 쓸지 않은채로 남아 있고, 꾀꼬리 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데 누군가 봄에 취해 졸고 있는 것일까?

이 시의 작자 왕유(王維 699~759)는 당나라 전성기의 대시인이요 화가였던 사람이다. 이백 두보와 더불어 당시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로 불교에 심취하여 많은 시를 썼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그의 많은 시에는 선미(禪味)가 베여있다. 또한 자연시의 제1인자로 꼽히었으며 그의 시를 좋아했던 대종(代宗)으로부터 “천하의 문종(文宗)”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림에도 뛰어나 장안의 절 자은사에 그린 벽화 백묘화(白描畵)와 금벽청록(金碧靑綠)의 산수화가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 때 죽었으므로 왕우승이라고도 불리며 <왕우승문집> 10권이 있다. 당시의 고승들과 교유가 넓었으며 특히 하택신회(荷澤神會)선사를 의지해 참선을 하기도 했다. 불교 경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초서에도 능했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4년 4월. 제41호

별들이 늘려있는 깊은 밤

중성나열야명심 衆星羅列夜明深 별들이 널려 있는 깊은 밤

암점고등월미침 岩點孤燈月未沈 바위에 외로운 등불 하나 달은 기우는데

원만광화불마형 圓滿光華不磨瑩 뚜렷이 찬 광명은 이지러지지 않고 빛나니

괘재청천시아심 掛在靑天是我心 내 마음 푸른 하늘에 걸려 있다네

한산시에 나오는 이 시는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마음의 빛을 찾은 오도송(悟道頌)과 같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과 희미한 잔월, 바위에 점 찍힌 듯이 켜져 있는 등불 하나, 이러한 배경 속에 갑자기 온 우주에 꽉 차고 저물지 않고 이지러짐이 없는 광명을 찾아낸다. 바로 자기광명인 마음의 빛이다. 이것이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온 세상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구절에서 푸른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 내 마음이라 하였다.

한산시(寒山詩)는 대부분 산 속에 은둔한 자취를 나타내면서 자연에 돌아가는 탈속한 정취와 때로는 인생의 무상을 노래하였다. 주로 외면적인 묘사를 통해서 내면세계를 넌지시 엿보게 하는 매력들을 가지고 있다. 한산은 산 속에 은둔하여 도풍(道風)을 드날렸던 전설적인 인물로, 중국 당나라 때 천태 시풍현(始豊縣)의서쪽 한암(寒巖)의 굴속에서 살았다. 미친 사람 같은 차림과 행동으로 국청사에 드나들며 습득과 함께 밥을 얻어 댓통에 넣어 한산으로 돌아가 놀면서 절벽이나 바위에 수많은 시를 남겼는데, 태주 자사를 지냈던 여구윤(呂丘胤)이 모아 시집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2년8월 (제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