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가늘어 방울도 되지 않고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봄비가 가늘어 방울도 되지 않고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 녹은 남쪽 시내 물이 불어났으니

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 새싹들도 많이 돋아났겠지.

봄밤에 가늘게 내리는 가랑비 소리를 희미하게 듣고 눈 녹은 시냇가에 돋아날 새싹들을 생각하는 시상이 무척 자연스럽다. 대지를 적셔주는 봄날의 밤비가 만물을 소생시키는 영양임을 이 시는 은연중 일깨워 준다.

이 시는 고려 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지은 시이다.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라고 불리기도 한 그는 대학자로서의 이름을 남겼지만, 여말의 어지러운 정치 현실 속에 임 향한 일편단심의 지조를 읊은 시조 단심가를 남겨 만고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겼지만 선죽교에서 피살을 당하는 한을 남기고 생애를 마쳤다.

봄동화

마음이 몹시 부대끼는 날

어머님은 맷돌을 돌리셨다

노란 콩이 반쪽으로 갈라지고

곱디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맷돌을 돌리셨다

때때로 매화나무 가지에 까치가 와서 울고

먼 데선 쑥국새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할아버지 글 읽는 소리

사랑채 문풍지를 빠져나와

솟을대문을 열고

팔작지붕 위로 훌쩍 날아

봄 하늘 송화가루같이 창공을 날아오르면

어머니는 옥양목 앞치마에 이마를 닦으시고

참나무 숯불을 발갛게 피워

놋쇠주전자에 찻물을 끓이셨다

마음이 맑아지는, 향기로운 찻물로

어둡고 비좁은 내 방을 가득 채워 주셨다

어버이날 아침

작설차 한 잔 정성들여 끓여 놓고

찻잔을 들여다본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위에

일흔의 나이테가 색색으로 그려진다.

文殊華 하 영(시인. 마산반야학당) 글. 월간반야 2009년 3월 제100호

* 이 시는 하영 시인의 제3시집 『자귀꽃 세상』 (1997, 문학아카데미)에 실혔고, 2008년 한국시인협회 시화집, 가족사랑시집 『사철 푸른 어머니의 텃밭』에 재수록된 것입니다.

봄눈(春雪)

봄눈 내리는 날

지리산智異山에 가보라

혹, 귀 밝고 눈 밝은 사람이라면

깊고 낮은 골짜기 오르내리며

물감주머니를 매달고 있는

아기부처님 발자국 소리

들을 수 있으리

마른 나뭇가지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기지개 켜는 것을 볼 수 있으리

文殊華 하영 시인 글. 월간 반야 2010년 3월 1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