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 한 마지기 노는 밭이여

산전일편한전지 山前一片閑田地 산비탈 한 마지기 노는 밭이여

차수정녕문조옹 叉手정녕問祖翁 손 모아 어르신께 여쭈나이다.

기도매래환자매 幾度賣來還自買 몇 번이나 팔았다가 다시 샀지요?

위린송죽인청풍 爲隣松竹引淸風 솔바람 댓잎소리 못내 그리웠습니다.

산비탈에 묵혀진 밭 한 마지기가 있다. 대대로 이를 가꾸며 살아왔던 그리운 시절이 생각나서 먼 조상 할아버지에게 넌지시 여쭈고 싶다. 이 밭의 임자가 누구누구였는지. 밭 근처에는 소나무 대밭이 있어 언제나 맑은 바람을 불러오고 있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자연 그대로 살던 시절이라 고향의 소식이 묻혀 있어 언제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 시는 중국 송나라 때 오조법연(五祖法演)선사가 지었다. 백운수단(白雲守端)의 법을 이었고 원오(圓悟克勤)의 스승이다. 만년에 오조산에서 선풍을 드날려 일세를 풍미케 하였다. 오조법연의 오도송으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시이다. 산비탈 노는 밭이란 우리의 본성 곧 마음자리를 상징한 것이다. 아무런 가식이 없고 소박한, 부도 없고 명예도 없던 내 자성의 참모습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공연히 환영에 도취되어 미로를 헤매다가 고향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조옹(할아버지)은 자기 진심을 의인화 시킨 말로 볼 수 있다. 고향 가는 길을 찾은 후 헤매던 시절을 회상하며 본성을 등졌던 것을 고향 밭을 팔았다고 비유하였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4월 (제29호)

산 속에 들어와

가주벽산잠 家住碧山岑 산속에 들어와 집지어 살지만

종래유보금 從來有寶琴 내게는 예부터 보배 거문고가 있어,

불방탄일곡 不妨彈一曲 때로는 한 곡조 타고 싶지만

지시소지음 祗是小知音 내 곡을 들어줄 사람이 없네.

낙도음(樂道吟)이라 알려진 고려 중기 청평거사 이자현(李資玄1061~1125)의 시이다. 도를 즐기면서 읊은 이 시는 작자의 생애를 그대로 나타내 놓은 시라 할 수 있다. 고려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현은 일찍이 선종6년에 문과에 급제해 대악서승(大樂署丞)이란 벼슬에 올랐지만 곧 사직하고 산으로 들어가 평생을 수도의 생활에 종사하였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청평산에 들어가 아버지가 지은 보현원이란 절을 문수원으로 바꾸어 고쳐 짓고 이곳에서 능엄경을 의지해 선을 닦고 선학에 몰두 하였다. 호를 식암(息庵)이라 했으며 때로는 희이자(希夷子)라고도 했다. 어릴 때 함께 지냈던 예종이 여러 번 입궐을 종용했으나 사양하고 수도로 일생을 마쳤다. 보배 거문고란 스스로 깨달은 자기 불성을 두고 한 말이다.

사흘은 강을 가고

三日江行七日山 삼일강행칠일산 사흘은 강을 가고 이레는 산을 간다.

一旬蹤迹是江山 일순종적시상산 열흘의 발자취가 강과 산뿐이구나

江山盡是胸中物 강산진시흉중물 강과 산이 모두다 가슴 속에 들었으니

咏出淸江咏出山 영출청강영출산 맑은 강을 노래하고 청산을 노래한다.

평생을 산을 따라 물을 따라 떠돌던 운수객(雲水客)이 있었다. 구름처럼 떠돌다 보니 발길 닫는 곳이 강이 아니면 산이다. 오늘은 이 강을 지나고 내일은 다시 저 산을 돈다. 천하강산을 돌며 보낸 생애가 이제 자신이 강산과 하나가 되어 강과 산이 모두 자기의 가슴 속이다. 보이는 사물이 모두가 자기 가슴 속에 들어와 앉아버리는 것이다. 내가 천지를 의지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지 만물이 오히려 나를 집으로 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숱한 세월을 행각한 끝에 얻은 대자유의 해탈낙이 곳곳에서 노래로 흘러나온다. 남이 보기에는 비록 쓸쓸하고 외로운 나그네지만 이 외로움은 우주가 하나로 된 큰 외로움이다. 모두가 어울려 하나가 되니 상대적 홀로감이 없어져버린 채 고독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환희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 시의 작자 괄허(括虛1720~1789)선사는 이조 중기의 스님이다. 경북 문경 출신으로 사불산 대승사에 입산출가 하여 나중에 당대의 선지식이 되었다. 환암(幻庵), 환응(喚應) 두 스님의 지도로 선지를 터득하고 환응의 법을 이어 받았다. 정조 13년에 세수 70으로 홀연히 좌탈입적(坐脫入寂) 하였다. “70년 지난 일이 꿈속의 사람이었네. 마음은 물속의 달과 같은데 몸은 어째서 오고 가고 하는가?”(七十年間事 依俙夢裏人 淡然同水月 何有去來身)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괄허집이란 문집이 남아 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1월 제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