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 차마 말할 수 없지만

世事不堪說(세사불감설) 세상일 차마 말할 수 없지만

心悲安可窮(심비안가궁) 마음의 슬픔 어찌 다할 수 있으리오.

春風雙涕淚(춘풍쌍체루) 봄바람에 두줄기 눈물 흘리며

獨臥萬山中(독와만산중) 홀로 산속 깊이 누워 있다네.

누구에게나 삶의 애한은 있을 것이다. 비록 남에게 말은 못하지만 가슴속에 속 앓이 하는 사정을 안고 비애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존재 자체가 비원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원이 이루어 지지 않을 때는 모두가 슬퍼지는 것 아닐까? “봄바람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홀로 산속 깊이 누워 있다”는 말이 읽는 사람의 마음마저 애틋하게 하고 있다.

이 시는 조선조 효종 때의 문신 김육(金堉:1580~1658)이 지은 것이다. 일종의 세제 개혁이었던 대동법 실시를 강력히 주장하고 화폐 유통을 주장하며, 북벌(北伐)에 골몰하고 있는 효종에게 북벌을 단념하고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던 강직한 성품을 가졌던 인물로 알려 있다.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우의정과 영의정까지 지냈다.

선묘-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돌아 나와

한 칸 맞배집에 기거하는 선묘낭자는

소백준령 그 너머에 거센바다를 잠재워 놓고

소백산 등성이마다 연화대를 만들어

그리운 이를 모셔놓고도

이 세상에서는 단 한 발짝도 다가설 수 없는 사랑을

실바람이 들어 올린 꽃잎처럼

가벼얍게 들어 올리고 있다

제 몸을 스스로 들어 올린 뜬 돌처럼

곱게 단장한,

정갈한 모습 그대로 선정에 들어있다

하 영 文殊華(시인, 마산 반야불교학당) 글. 월간반야 2008년 6월 제91호

서산에 달지고

월락서봉효경명 月落西峰曉磬鳴 서산에 달 지고 새벽 풍경 울리니

죽풍소슬주신청 竹風蕭瑟做新晴 댓바람 소슬한 게 기분 맑게 하구나

연단예흘빙경궤 蓮壇禮訖凭經几 불단에 예불하고 경상에 기대니

재시선창일반명 纔是禪窓一半明 이제사 선창이 반쯤 밝아오네

연파(蓮坡·1772~1811)대사는 『아암유집(兒庵遺集)』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어려서 대둔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데 법명은 혜장(惠藏)이었고 법호가 연파였다. 자호를 아암이라 하여 문집의 이름을 『아암유집』이라 한 것이다. 27세때 당시의 고승 정암(晶巖)대사의 인가를 받아 그의 법을 이었으나 연담유일(蓮潭有一)을 깊이 존경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를 왔을 때 벽련사에 다산이 촌로차림으로 들어와 연파대사를 만나 담론을 나눈 것이 인연이 되어 대사가 입적한 후 다산이 대사의 비명을 지었다.

위의 시는 청신한 산사의 새벽 분위기에 어우러져 있는 맑은 정신이 배어있는 시이다. 제목이 <산거잡흥>으로 되어 있는 시의 첫수인데 새벽달 질 무렵 한줄기 바람에 풍경이 울릴 때 법당에 가 예불을 하고 돌아와 경상 앞에 앉아 잠시 명상을 하는데 창호지 밖으로 날이 새는지 어둠이 걷히며 먼동이 트는 밝음이 느껴지는 전경을 묘사했다. 절에서 잠을 자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산사의 새벽 분위기는 참으로 청신하다. 산사의 새벽을 체험해 보시라.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10월 제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