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서로 만날때 향기를 얻고

물물봉시각득향 物物逢時各得香 서로서로 만날 때 향기를 얻고

화풍도처진춘양 和風到處盡春陽 온화한 바람 속에 봄볕도 따사롭네

인생고락종심기 人生苦樂從心起 인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활안조래만사강 活眼照來萬事康 활달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만사가 모 두 편안하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음의 느낌에 따라서 아름답고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때문에 좋은 느낌을 가지고 세상을 살면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너와 나의 만남에 있어서 꽃의 향기처럼 서로서로 마음의 향기를 풍기자. 온화한 봄바람이 양지의 언덕을 스치듯 기분 좋게 세상을 살아갈 때 원망하고 증오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마음의 눈이 열려 지혜로운 처신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내게 갖추어졌느냐가 문제다. 인생은 생각에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생각에 끼어 드는 감정이 잘못될 때 절망과 비탄에 빠져 스스로 포기하게 되며 따라서 자신의 인생이 실패로 끝난다는 뜻이다. 도심(道心)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실패는 없다. 세속적 가치를 초월하여 삶의 본질을 탐구하여 자기 정체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경계에 부딪쳐 자신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지금 빠져 있는 감정에서 쉬이 벗어날 수도 있다. 비탄이나 고통에 짓눌리는 일도 마음을 바꾸면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해 질 수 있다. 모든 분별은 스스로의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을 A는 부정적으로 보고 B는 긍정적으로 보는 수가 얼마든지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음 대로지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역시 마음이 문제일 뿐이다.

이 시는 근세의 대선사였던 경봉(鏡峰)스님의 시다. 스님의 법명은 정석(靖錫), 속성은 김씨였다. 1892년에 밀양에서 출생하여 어려서 유학을 마치고 15세에 모친상을 당하고 이듬해 16세에 출가, 양산 통도사에서 성해스님을 의지해 스님이 되었다. 두루 경전을 섭렵하고 참선수행으로 정진하다가 36세에 한밤중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 그후 제방의 수좌를 제접하면서 여러 선원의 조실로 추대되었다. 1982년 법랍 76 세수 91세로 입적하였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4월 (제17호)

새해의 불법을

신년불법위군선 新年佛法爲君宣 새해의 불법을 그대 위해 설하노니

대지풍류기호연 大地風流氣浩然 대지의 풍류 그 호연한 기운으로

숙장구앙탕옥설 宿障舊殃湯沃雪 숙세의 업장을 눈같이 녹이고

신광변조일승천 神光遍照日昇天 마음의 빛 두루 비춰 해가 솟아라.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이 남긴 시 중에 정단(正旦)이라는 제목의 시가 한 편 있다. 새해 아침에 하는 연두발원(年頭發願) 같은 내용이다. 보통 사람들이 연례적으로 하는 새해 소원이 현실에 대두되는 객관적 문제를 의식하고 발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시에서는 숙세의 업장을 녹여 마음의 빛이 해처럼 솟아 온 누리를 비추게 되어져라 하는 내면적 수행의 의지가 실려 있다. 새해의 의미를 숙업을 녹이는 새로운 전기로 맞이하는 데 두고 있다. 삶이란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다. 새해란 기계적으로 시간 진행이 가져오는 물리학적인 세월이 아니다. 마음의 청소부터 시작하는 삶이라야 시간을 깨끗이 하는 새해의 의미를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9년 1월 제98호

새벽이면 창가에 숲 그림자 아른거리고

신창림영개 晨窓林影開 새벽이면 창가에 숲 그림자 아른거리고

야침산천향 夜枕山泉響 밤이면 베개 밑에 샘물 소리 스며오네

은거부하구 隱居復何求 숨어 사는 판에 무얼 구하려 하겠는가?

무언도심장 無言道心長 말없이 살다보면 도심이 자라겠지.

이 시는 주자(朱子)의 은구재(隱求齋)라는 제목의 시이다. 젊은 시절에 주자는 불교나 도교에도 상당한 심취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바로 산에 사는 도인의 수도생활을 읊어 놓은 것 같다. 숨어사는 은둔자의 노래라 볼 수 있고, 물외한인(物外閒人)의 탈속한 생활을 묘사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유교적 학문에 통달 주자학이란 새로운 학풍을 세운 그였지만 노장학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고 한 때 불교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24세에 임관하여 4년간을 관직에 종사하였지만 그 후로 20여 년을 조정의 연금을 받아가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여 40세가 넘어서 그의 사상의 대강(大綱)을 확립하였다.

“말없이 도심을 기른다.” 는 이 말은 진리를 탐구하는 근본정신이자 삶의 본질을 밝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말이다. 사실 도심을 잃어버리면 내 인생의 알맹이를 잃는 것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