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니파타(sutta-nipata)를 다시 읽으며

선택하지 않은 것도 선택이라 했던

사르트르를 생각하다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오래전 시월 어느 날

은행잎이 깔아놓은 샛노란 융단 길은

윤슬처럼 반짝였다.

수타니파타(sutta-nipata)를 다시 읽으며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꽃잎을 따서

따신물에 그 마음 우려마시며

다시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오래전 시월 어느 날, 소금창고에 마주 앉아

양고기 스테이크를 한손으로 먹었는지, 양손으로 먹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아이리쉬 커피의 푸른 불꽃은 신비로웠다

아,

비행접시처럼 날아오르던 푸른 불꽃이여

부처님의 광배(光背)처럼 따습게 빛나던 횃불이여

다시 이 가을, 모기도 쇠파리도 없는

소금창고에 혼자 앉아 편지를 쓴다.

연화대의 촛불을 무쏘의 뿔처럼 이고 가는

그대만 읽을 수 없는 길고 긴 연서를 쓴다

* 이 詩는 경남 시인협회 창간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 설화상봉수 : 차나무

文殊華 하 영 (시인 , 마산반야학당 회원) 글. 월간반야 2009년 2월 제99호

손님이 오자 저녁연기도 잦아들고

客來暝煙集(객래명연집) 손님이 오자 저녁연기도 잦아들고

野寺鐘聲歇(야사종성헐) 들판의 절에서는 종소리도 그쳤네.

倂榻淸凉夜(병탑청량야) 맑고 시원한 밤 나란히 걸상에 앉아

同看松上月(동간송상월) 함께 소나무 위의 달을 바라본다네.

해가 저문 저녁 무렵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인적이 별로 없는 고즈넉한 우거(寓居)에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반갑기 짝이 없다. 초라한 상을 차려 저녁을 함께 먹었는지 모른다. 아래 절간에서 저녁예불을 올리며 치던 종소리도 그치고 어둠이 더 깊어지자 어느 사이 달이 떠 소나무 위에 걸렸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걸상에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을 들어 소나무 가지 위의 달을 쳐다보다 말이 멈춰졌다. 이것을 유마(維摩)의 불이선(佛二禪)의 경지라 하면 어떨까?

이 시는 추사(秋思)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오언절구라는 시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 지은 것 같기도 하다 찾아온 사람이 혹 초의선사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설자의 상상이다.

소나무 밑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송하문동자 松下問童子 소나무 밑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언사채약거 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초를 캐러 갔다고

지재차산중 只在此山中 다만 이 산속에 있을 테지만

운심부지처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서 알 수가 없구나.

산속에 은둔하고 사는 현자(賢者)가 있었다. 이 사람을 만나고자 찾아갔더니 동자가 말하기를 스승은 약초를 캐러 나갔다 한다. 산 속 어디쯤 있을 테지만 구름이 깊어 행방을 알 수 없다.

이 시는 신선도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로 도가풍이 물씬 나는 시다. 당시(唐詩)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수록되어 있는 명시(名詩)이기도 하다. 작자 가도(賈島779~843)는 한 때 스님이었던 사람으로 법명을 무본(無本)이라 하였다. 환속한 후 유랑시인으로 생애를 마친 그는 이 한편의 시를 남김으로서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시를 좋아한 그가 어느 날 시구의 글자를 맞추는데 골몰하며 길을 걷다가 한퇴지의 행차에 무례를 범해 낭패를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는 “시상에 사로잡혀 글자에 골몰하다 그랬다”고 변명하자 한퇴지가 쾌히 용서하고 글자를 정해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새는 못가의 나무에서 자고(鳥宿池邊樹),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밀친다 (僧推月下門)”는 글귀를 짓는데, 두 번째 구의 밀칠 ‘퇴(推)’자를 두드릴 ‘고(鼓)’자와 비교하여, 어느 자가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한퇴지의 행차를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퇴지가 ‘퇴’자를 정해주면서 그의 시재(詩才)를 인정, 이로 인해 환속하여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천성이 유랑을 좋아하여 자호를 낭선(浪仙)이라 했듯이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를 지을 때 글자 하나를 선택하는데 무척 고심을 하여 고음(苦吟)시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두 시구를 삼년 만에 얻어 한번 읊으매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二句三年得 一吟雙淚流)”고 하였다 . 당시의 은둔자들의 탈속적 생활이 일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그도 은둔자들을 찾아 심방하기 좋아했는지 이 시의 원제목도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尋隱者不遇)”로 되어 있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4년 2월 제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