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남스님─자살은 생명에 대한 모독

자살은 생명에 대한 모독

-혜남스님-

우리 축구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원정 16강에 들어가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다.

이러한 때에 한류 스타 박용하 씨가 자살함으로 인하여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박 씨는 한류스타로서 일본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어 거기서도 눈물바다를 이루어 한 음식점에 마련된 빈소에는 이틀 만에 1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박 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안겨주고 간 셈이다.

삼가 조의를 표하고 왕생극락을 비는 바이다.

보도에 의하면 근래에 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이고 특히 연예인의 자살이 많다고 한다.

이를 염려한 원로 연예인들이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에 대한 폭력이다”라고 말하며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고 한다.

마음에 새길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왜 하는가?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사례를 짚어보니 권자에서 물러나 새로운 권력으로부터 압력을 느낄 때, 타의에 의하여 직장에서 물러났을 때, 연예인이 인기에 불안을 느낄 때 주목받던 교수가 연구 실적이 부진할 때,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등이 떠올랐다.

부모의 반대를 피하여 작은 절로 찾아와 주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냉수 한 그릇 불전에 올리고 “이렇게 빈손으로 결혼식을 올리듯이 늘 빈손 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사십시오”라고 가장 짧고 뜻 깊은 결혼식 주례를 하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본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이치를 관찰한다면 무슨 잃어버릴 권력이 있으며 잃어버릴 재산 지식 명예가 있겠는가.

모든 것이 구름처럼 왔다가 가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소중한 것은 참다운 생명이다.

이 생명 에너지를 나는 불성 자성 한 물건 등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은 불성종자를 버리는 것이고 생명의 근원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깊이 생각 하기를 빈다.

-불교신문-

지안스님─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지안스님-

“만약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려고 하거든 응당 법계의 성품을 관찰하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화엄경) 4구게로 알려진 이 말은 불교의 근본 대의를 명시해 놓은 말이다.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라는 말은 초기 경전인 (법구경)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현상계의 삼라만상 두두 물물이 모두 마음에 의해서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종합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대승기신론)에서는 중생의 마음을 법(法)이라고 정의 내려 둔 구절도 있다.

불교의 근본 주제가 마음이다.

깨달음을 얻은 분상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 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하였다.

마음,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이 마음의 정체를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

선가에서는 이를 견성성불이라 하였다.

잘 알려진 설화로 원효스님이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 다는 이야기가 있다.

(임간록(林間錄))에 전해지는 이 내용은 원효스님이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 당나라에 들어가려다 노숙을 하게 되었다.

밤이 깊어 잠을 자다 원효스님이 갈증을 느껴 잠에서 깨었다.

물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물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어둠 속에서 이리 저리 더듬어 살피며 물을 찾았다.

다행히 옹달샘 같은 웅덩이가 손끝에 감지되어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갈증을 풀고 다시 잠을 잤다.

이튿날 잠을 깨어 길을 재촉해 떠나려던 원효스님이 간밤에 마셨던 물이 해골이 썩어 고여 있는 더러운 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갑자기 속이 메스꺼우며 구토가 오르려는 것을 느꼈다.

비위가 상하여 기분이 언짢아짐을 느꼈던 원효스님의 머릿속에 다시 섬광이 일어났다.

홀연히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이에 원효스님은 이렇게 독백을 했다.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가지가지 법도 없어진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도 오직 생각이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달리 찾겠는가? 내 이제 당나라에 갈 필요가 없구나.”(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別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마음이 생기니 가지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니 가지가지 법이 없어진다”는 말은 본래 (능가경)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마음속에 한 생각이 일어남을 뜻한다.

(능가경)은 달마스님이 처음 중국에 왔을 때부터 중요시한 경 으로 처음에는 달마선종을 능가종이라 부르기도 했다.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되는 달마가 2조 혜가스님에게 4권 (능가경) 을 전해 선법의 심요를 삼았다.

그 후 5조 호인스님과 6조 혜능스님 대에 와서 (금강경)이 중요시 된 것이다.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깨달은 원효스님은 당나라 행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후 그는 화엄의 대가가 되어 불법을 널리 퍼뜨리게 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

마음 밖에 달리 법이 없다.” 모르고 마셨을 땐 아무 일이 없었는데 해골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속이 메스꺼웠다.

이 무슨 조화의 장난인가? [불교신문]

혜남스님─순간순간이 해탈임을 깨닫고 내 안의 아미타불 찾자

“순간순간이 해탈임을 깨닫고 내 안의 아미타불 찾자” 양산 통도사 전계대화상

혜남스님

〈화엄경〉의 게송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모든 본성이 마음으로 이뤄진지 알아라”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을 잘 쓰면 행복하게 되고 마음을 잘 못 쓰면 불행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중생이 부처님과 가르침인 법, 부처님의 법을 따르며 수행하는 스님을 마음깊이 생각하며 염불한 공덕으로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은 흔히 소리를 내며 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하는 염불도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등 물리적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 등 마음속의 심리적인 것들은 놓아버리면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세속의 공부는 계속 쌓아가는 것이 미덕이고 최고이지만, 도문(道門)의 길에 접어들면 필요 없는 것들을 하나씩 버려 나가야 합니다.

계속 버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단계가 곧 도의 경지인 것입니다.

흑씨 범지가 부처님께 법문을 청하기 위해 양손에 꽃을 들고 부처님께 올리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놓아버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흑씨 범지는 오른손에 든 꽃을 놓아버렸지만 부처님은 또 “놓아버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왼손의 꽃마저 놓아버렸지만 또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흑씨 범지는 “더 이상 놓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더 놓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부처님께 여쭙게 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놓으라 한 것은 꽃을 놓으라 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 6진(六塵)과 안으로 6근(六根), 중간의 6식(六識)을 한꺼번에 놓아버리라 한 것이다.

놓아버릴 곳이 없으면 이 곳이 네가 생사를 면한 곳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쓸데없는 잡생각을 다 놓아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망심이 다한 그 자리가 곧 부처자리요, 그 시간으로 부처가 된다는 말입니다.

흔히 우리는 행복을 먼 곳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고귀한 서적이나 사람을 만나 이를 찾으려고도 합니다.

또한 작은 씨앗을 심어 먼 미래가 되어서야 수확할 수 있는 열매를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 이 자리가 곧 부처님이 계신 곳이요, 해탈의 시간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어디를 가시던지 그 순간순간이 해탈이며, 누구를 만나던지 만나는 그 사람이 바로 부처요, 해탈이며 행복임을 잊지 마시고 살아가시길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