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스님─뭐가 바쁜가

뭐가 바쁜가?

-성수스님-

살 때 살 줄 알고 살아야, 갈 때 갈 줄 알고 갑니다.

오늘부터 해 지기 전에 자신이 자신을 한 번 만나보세요.

뭐가 바쁜가? 죽자 살자 일하는 것이 늙어 죽는 것밖에 하는 것이 없어요.

늙으면 간다고 하지만 갈 곳도 안 찾아 놓고 한 치 앞 갈 길도 모릅니다.

또 갈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간다고 하니 전부 남의 다리 긁고 수박 겉핥고 살아요.

오늘부터 정말 ‘내가 누구냐?’ 하고 물어보세요.

한 번 물어서 대답 안 하고 두 번 물어서 답이 없으면, 세 번 만에 죽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 말 안 듣는 놈에게 밥주고 물주고 하겠습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면 ‘하나 둘 셋’ 할 때 나와서 서로 끌어안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천하만물은 무비선(無非禪)이요, 세상만사는 무비도(無非道)로다.

나무 아미타불! 내가 나를 한 번 만나서 끌어안고 보면 지금 부른 노래처럼 천하만물은 진리 아님이 없고 세상 만가지 일이 道 아님이 없습니다.

네 탓이니 내 탓이니 늙었다고 원망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해 지기 전에 등을 땅에 붙이지 말고 눈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등을 땅에 붙이면 뱀의 몸을 받고, 눈 붙이면 장님 연습하는 겁니다.

나는 90세가 다 되었는데도 눈이 초롱초롱합니다.

아직까지 낮에 등을 땅에 붙인 일도, 눈 붙인 일도 없어요.

눈을 붙이고 흐리멍덩하게 살면 피가 탁해집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부처님 흉내내야 됩니다.

여러분이 불교 믿는다고 할 때 믿을 ‘신(信)’자 하나라도 똑똑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절에는 뭐 하러 가느냐고 하면 안 늙어 죽는 법 배우러 간다고 해야 합니다.

‘불살생’이 파리나 모기도 죽이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사실은 생사고뇌에 죽지 말라는 말입니다.

죽는 일하며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나는 아직 47년째 병원에도 안 가고 약도 안 먹고 밥도 다섯 숟가락 밖에 안 먹어요.

절에 와서 복 지으려고 부처님께 실컷 절하고 나가다가 신에 흙이 묻었다고 남에게 욕하면 절한 복을 다 쏟아버리게 됩니다.

심보를 잘 써야 합니다.

알고 살아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하루에 한 마디씩 내가 본 세상을 쓰면 좋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밝은 시간을 정말 금쪽같이 아껴야 합니다.

밝은 기운을 가지고 앞을 내다보며 여유있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자면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루에 한 마디씩 써야 합니다.

눈도 보배고, 귀도 보배고, 코도 보배고, 입도 보배고, 손도 보배고, 발도 보배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관리 잘해서 잘 쓰면 존경받고 잘못 쓰면 자기 아들딸에게도 밟힙니다.

정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을 때, 기와집 짓고 자가용 타면서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집주인을 만나봐야 합니다.

남의 집에서 몇십 년씩 살면서 집주인도 안 물어보고 만나볼 생각도 안 하고 전부 허탕으로 살고 있어요.

하루 한 마디씩 쓰면서 눈에게 귀에게 코에게도 물어보면 대화가 됩니다.

지안스님─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 /

지안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육조 혜능 선사가 출가 전에 가난한 나무꾼으로 살았다는 것은 선종사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 저자에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어느 날 나뭇짐을 지고 저자거리에 가서 팔았는데 마침 객주 집 주인이 사서 짐을 지고 따라가 짐을 내려놓고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때 객사에 투숙해 지내던 어떤 사람이 책을 낭랑하게 읽고 있었다.

무심코 듣고 있던 육조 스님(당시 나무꾼 노씨)의 귀에 “응당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귀가 번쩍 뜨이면서 알 수 없는 강력한 느낌이 가슴 속에 와 닿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책을 읽던 사람에게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이건 불경 가운데 (금강경)이라는 책이요.”

이 일이 인연이 되어 나무꾼 노씨는 드디어 출가를 단행하여 황매산으로 오조 홍인 스님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응당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말은 금강경 ‘장엄정토분 제10’에 나오는 구절이다.

금강경이 중국 선종사에서 중요시 여겨진 동기는 바로 이 구절을 듣고 발심하여 출가한 육조스님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터득하고 있었다는 수보리와 부처님이 문답형식의 대화를 전개해 나가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체 관념적인 고집을 없애라는 것이 핵심 대의이다.

경 본문에서는 관념적 고집을 상(相)이라는 말로 표현해 놓고 있다.

이 상을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넷을 들고 또 법상(法相), 비법상(非法相)이라는 말도 나온다.

육조스님 출가동기 금강경의 핵

마음이 없으면 ‘업의 충돌’도 없어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내라’는 것은 일체 상(相)을 벗어난 마음을 쓰라는 뜻이다.

이를 달리 함이 없는 마음 무위심(無爲心)이라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경우 남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무심하고 순수한 상태 그대로, 도와 줘도 도와준 것이 없는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말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이때 B라는 사람이 A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A를 도와주었다라고 자기가 한 일을 남에게 자랑을 하거나 자기의 선행을 고의적으로 업적을 삼으려 하면 도와준 행위야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걸 자랑하거나 과시하려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큰 도움을 주고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자기의 선행을 끝까지 숨긴다면 이것이 도와준 사람을 더 감동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념에 붙들리지 않는 상(相)이 없는 마음이라야 무구청정(無垢淸淨)한 본래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어떤 관념에도 지배되지 않아야 이것이 바로 깨달음에 일치된 마음이다.

이 마음을 내면 중생세계에 업의 충돌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 2791호/ 2월15일자]

원담스님─“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원담스님-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던 시절과 사랑을 잊고 산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의 마음들이 얼마나 다른지 아실 겁니다.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면 행복하고 힘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이 없었던 날들을 생각해 보세요.

무기력하고 의욕도 없고 밥맛도 없고 마음이 황폐화됩니다.

더불어 우리들의 몸의 노화도 빨라집니다.

본인이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고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굴빛이 따뜻하고 평온합니다.

노인이 되어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들이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말해줄 겁니다.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발원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할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갑시다.

더위가 왔다고 몸과 마음이 쳐지면 주변의 것들이 바람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을 아끼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덥다고 쳐지지 말고 주변과 나를 챙겨봅시다.

더울수록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동시에 슬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자비(慈悲)’를 생각해 보세요.

사랑자에 슬플비입니다.

대부분 자비라고 하면 여유로운 마음이 자비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을 알아 우리를 구제하려 하신 것입니다.

사랑과 슬픔을 갖지 않으면 욕심과 자기 벽으로밖에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울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내 마음이 삭막해 진 것입니다.

주변에 많은 일 중 슬퍼하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슬퍼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이 기쁘면 배 아프고 슬프면 즐겁고 그러면 안 됩니다.

기쁨은 나누고 함께 슬퍼하는 것이 진정한 보살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슬픔과 기쁨이 그대로 부처님의 얼굴에 담겨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마음에는 모두 불보살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 보살의 마음을 언제나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안에 사랑과 슬픔을 나누고 챙길 줄 아는 마음을 가집시다.

슬퍼할 줄 아세요.

그 다음으로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별에는 우리의 꿈이 있습니다.

무한한 부처, 행복을 주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일상에 떠밀려 살다보니 꿈을 잃고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처가 우리에게 준 꿈입니다.

그 꿈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금생에 깨달음에 대한 원력은 꿈을 낳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 행복, 무한한 모습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인간은 묘해서 꿈이 무한대라고 합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꿈을 접으면 자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꿈이든 우리는 꿀 수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의 수많은 꿈 중 하나일 뿐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꿈을 놓치지 마세요.

노보살님들도 절대꿈 잃지 말고 발원 점검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다양한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꿈과 기도 모두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