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은행이 망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대변하여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리던 ‘대학’이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여 급기야 ‘문을 닫는 순서’가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역시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아닌가 싶다. 자식을 낳아 기를 것을 생각하니 양육비도 문제지만 남들처럼 번듯하게 교육시킬 것을 생각하니 이 ‘교육비’가 천문학적 수치로 예상되니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보아 출산율이 떨어지니 대학에 갈 인적 자원이 줄어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때가 되어 내년도 입시가 시작되었다. 수시모집이 이루어지고 각 대학은 사 활을 걸고 신입생을 유치하고 있다. 좀 여건이 나은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정원 채우기에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도 그럴 것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줄잡아 66만 여명, 대학의 모집 인원은 4년제가 38만 명 정도에다 전문대학이 26만 여명이니 대학의 입학정원과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수가 엇비슷하다. 여기에 재수생이 있다고 하여도 대입 포기자와 재수 희망자를 생각하면 크게 차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통계수치만 보아도 우리의 고등교육이 시작부터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모셔온(?) 학생들인데 교육을 소홀히 하고 대접을 예사로 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들어올 자원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으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다.

지난해에 이어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학년도 재정지원 제한 대학 평가결과 및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 선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평가 결과 346개 사립대학 가운데 15%인 43곳이 재정 지원을 제한받는 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이들 대학은 일반대학 28곳, 전문대학 15곳이고, 수도권 대학이 11곳, 지방대학이 32곳으로 이 가운데 17개 대학은 내년에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도 제한된다.

이처럼 정부는 대학들이 자율적으로는 도저히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보아 국가 차원에서 칼을 뽑아든 것이다. 2백여 개의 대학과 150개 정도의 전문대학을 신입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 인상 수준 등의 선정기준에 따라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먼저 평가 하위 15% 정도의 대학에 정부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다음엔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된다. 그래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되고 현장 실사를 거쳐 최종 퇴출되는 것이다. 퇴출의 마지막 순서는 법인의 폐쇄나 대학 통폐합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대학도 없거니와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이 되지 않는 대학을 선택하여 입학할 학생도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대학들이 ‘자기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진실로 이 시대에 걸맞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역량을 다할 수 있겠는지 엄정한 자기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궁하면 남 탓하고, 남과 비교한다. 그리고는 남에겐 엄정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과대평가하기 쉽다. 자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진 연후에 스스로 구조 조정이나 개혁을 하는 것이 옳다.

지방대학의 육성이 정치‧경제‧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는 큰 대안이다. 구조 개혁의 방향은 가까이 우리의 60년대 70년대 대학에서 찾는 것도 괜찮겠다. 그때는 전국에 대학의 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공과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법과대학, ○○농과대학 등 대학들이 특성화되어 있었다.

지금도 선진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은 그런 전통을 갖고 있지 않은가. 다음으론 수도권과 지방대학의 조화로운 육성이다. 현재 상태대로 두면 전국 대학의 문 닫는 순서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사학에서 국공립으로 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육성이 정치‧경제‧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막을 수 있는 큰 대안이다.

끝으로 우리 고등교육의 80% 이상을 맡고 있는 사학이 퇴출 위기를 맞을 경우 퇴로(退路)를 열어주어야 한다. 빠져나갈 구멍을 보고 좇아야 한다. 현재의 시설, 인력, 자산 등을 감안하여 가능한 사업과 인센티브를 주어 그들이 우리 국가 사회를 위해 이바지한 공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대학의 구조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객관성과 일관성을 잃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고, 차라리 끝까지 서로 경쟁하여 적자생존케 하는 것이 부작용이 적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1년 10월 131호

달마대사의 무공덕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보리달마(bodhi-dharma)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입니다. 그는 520년경 깨달음의 원력으로 중국 광주 남해군에 이르게 되는데, 『전등록』 제3권 보리달마전에 전하고 있는 보리달마와 불법천자였던 양무제의 첫 만남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양무제(梁武帝)가 달마 대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우고, 사경(寫經)하고, 승려들을 출가시키는 일을 수없이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이 일화는 『벽암록』 제1칙과 『종용록』 제2칙 등에도 나옵니다. 달마에 의해 시작되는 새로운 실천적 불교의 특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일화입니다.

양 무제는 황제로서 평생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사경을 하고, 승려들을 출가시켜서 불법을 옹호하고 홍포한 불법천자(佛法天子)로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법을 위해 평생을 받친 양 무제의 업적을 보리달마는 한마디로 ꡐ무공덕ꡑ이라고 단언해 버렸습니다.

왜, 그는 공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여기서 ꡐ공덕ꡑ이란 말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복전과는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에서는 ꡒ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 올리는 것은 복을 닦는 것일 뿐이다. 복전(福田)을 가지고 공덕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공덕(功德)은 법신(法身)에 있으며, 복전(福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는 것이요, 견성이 바로 공(功)이요, 평등함이 곧 덕(德)이다ꡓ라고 했고, 『유마경』에는 “깊은 깨달음의 마음(深心)이 곧 진실된 도량이니, 공덕을 증익(增益)하기 때문이다. 심심(深心)이 시도량(是道場)이니 증익공득고(增益功德故)”라고 설하고 있으며, 『위산경책』에서도 ꡒ안으로 깨달음의 마음을 이루는 것을 공(功)이라 하고, 밖으로 편안함을 넓히는 것을 덕(內勤剋念之功 外弘不諍之德)이라고 한다ꡓ고 하였습니다. 즉 불교를 위하고, 혹은 남을 위해서 재물이나 마음으로 베푼다는 것은 복전은 될 수 있어도 공덕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달마는 양무제에게 선불교의 올바른 실천 정신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된 공덕이란 바로 우리 각자가 불법의 참된 도리를 깨닫고, 깨달음의 지혜로 일체 중생에게 진실된 불법을 회향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해스님 (동국대강사) 글. 월간반야 2005년 6월 제55호

산노을 비낄때

해질 무렵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오랜만에 산 너머 구름 사이로 하늘이 빨갛게 물드는 노을을 보았다. 요즈음은 이처럼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다. 옛날처럼 자주 볼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이 노을도 일출일몰에 으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멋진 노을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기상상태의 변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을도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의 노을과 산속의 산봉우리 너머로 비끼는 노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때로는 산위에 올라가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볼 때 먼 평야에 하늘과 땅이 닿은 데도 노을이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녁노을은 황혼을 가져오는 전초 단계이지만 신비로운 색깔로 사람의 마음에 생각의 공간을 키워준다. 무지개를 볼 때와 또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철학적 사유를 조장해 주는 힘은 무지개보다 훨씬 강하다.

일찍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을 보고 신앙에 의한 종교적 실존의 삶을 추구하는 단서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생각해보면 사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시간의 진행을 따라 통과되는 과정에 불과한 지극히 덧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욕의 갈림길을 사이에 두고 하릴없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부담만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욕망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느 정치인은 자신의 인생의 황혼을 노을빛으로 짙게 물들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황혼의 블루스를 부르며 어떤 이별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지나간 날을 회한하면서 깊은 애상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해가 질 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 산 너머 구름 사이로 토해내는 선혈 같은 핏빛을 보라.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무심한 도인의 가슴 속에도 솟아오르는 애틋한 향수 같은 것이 있다. 수많은 인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단독자로서 외톨이가 되는, 스스로 소외되는 고독이 노을처럼 영혼의 하늘을 물들여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저녁노을을 보고 자신의 고독을 발견한 자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연민을 가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지개처럼 살고 싶어 했던 인생의 꿈이 결국 노을빛 회한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숱한 고난의 사연도 노을 속에 투영해보면 모두가 스쳐간 기억의 편린에 불과하며 괴롭힘 당한 것에 대한 원망도 이제 곧 황혼이 오면 노을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산봉우리 위에 떠 있는 구름처럼 내 존재의 허상이 내 생각의 머리 위에 까닭 없이 떠 있음도 보게 될 것이다.

노을 비낄 때 일어나는 생각들, 그러나 이제 차라리 노을을 보고 나를 잊어버리자. 하늘의 신비 자연의 신비를 보고 나를 잊어버리자.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라는 일본의 시인이 있었다. 26세로 요절한 매우 불우한 시인이었지만 근래에 와서는 가장 사랑 받는 시인중의 한 사람이다. 스님의 아들로 태어난 이 사람은 어쩌다 고향을 쫓겨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학교 교사로 있으며 학생들을 선동하여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교장을 내쫓은 일이 발단이 되어 고향 사람들로부터 고향에서 축출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객지에서 망향의 슬픔을 안고 살다 한번은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고 조용한 바닷가로 찾아간다. 죽으려고 찾아간 바닷가 하얀 백사장에서 그는 작은 게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게를 보느라고 정신이 팔린다.

“동해 바닷가

조그만 갯바위 하얀 백사장

나는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지.”

백사장에서 게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 게에 눈이 팔려 놀다가 자살할 생각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와 위와 같이 시를 지었다. 바닷가 백사장에서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다는 간단한 서술이 읽는 이로 하여금 절제된 슬픔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모르긴 해도 이와 같은 시를 지었기 때문에 사랑 받는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사람은 때로 감정을 전환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보고 듣는 경계를 통해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다 보면 자신에게 북받쳐 있는 감정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찾을 수 있다.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는 누구에게나 찾으면 찾아지는 것이다. 산 노을이나 다쿠보쿠의 게처럼 말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9월 1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