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이 달다

늦은 저녁

현관 앞 초코허브

눈빛 향기롭다

고마워서,

숱이 많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귓불을 살짝 건들었을 뿐인데

그 아이,

가진 향기를 몽땅, 내 손에 건네준다.

그 손으로 먹는 늦은 저녁이 달다

그래그래, 오늘은 네가

고단한 내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말랑말랑한 스펀지다

칠흑의 어둠을 뚫고 나온 협궤열차의 기적소리다

정성껏 등피를 닦고 심지를 갈아 끼운 램프 불빛이다

달다. 혼자 먹는 늦은 저녁밥.

文殊華 하 영(시인, 반야불교학당)의 글

대 변혁을 기대하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 나라도, 사람도, 교육도 유기체다.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닌 다양하게 변모하고 상대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이 사회와 더불어 태어나고, 성장하고, 번성기와 쇠퇴기를 거쳐 사멸하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요즈음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들어서서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다.

지금은 교육이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적 차원의 화두로 변하고 있다. 어쩌면 교육계 안에서도 한 지엽적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정권과 특정집단이 강경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의아해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변화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의 변화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있게 마련이고, 바람직한 변화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변화를 거역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 또한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서 근 10년을 방황하고 있는 우리 경제와 맞물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서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만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잘못한다는 식의 해결법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의식의 변화를 이룩해야 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 시대 우리가 원해서 만든 민주사회는 열려 있는 사회다. 어떠한 상황 , 어떠한 사람과도 만날 수 있다. 옛날 전통사회에서는 폐쇄된 상황에서도 살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폐쇄된 집단에서는 자연히 서로에 대한 감수성이 무디어지고, 상대방과 공동체의식의 형성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방된 상황에서 외부세계의 다양성과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딪치면서 자신의 주장과 역량을 시험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자기 뿐 아니라 우리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생물학에서 흔히 인용되는 근친교배에서 ‘열성유전’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든지, 지역주의의 폐해가 오늘의 우리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바람직한 유기체의 성숙에는 변화와 결단, 대 타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거대한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급선무다. 먼저 어떻게 변해야 하며,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원로를 비롯한 지식인,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모여 현재의 시국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이끌어내고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정부는 그 추진의 주체가 되었으면 한다.

좁게는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에 이어 나를 포함한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내가 소속한 집단, 직장, 조직의 분위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몇 해 전 어느 대기업의 총수는 ‘자기의 성과 아내만 바꾸지 말고 다 바꾸어야 한다’고 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의 변화에 이어 나라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음 세기까지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의 이름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것만 버리면 모든 게 가능하리라.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3년 6월 (제31호)

사유의 정물화

내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다닐 때 미술수업을 하던 어느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사과 한 개를 가져와 교탁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가만히 놓여 있는 사과같은 것을 그린 그림을 정물화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때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그림 가운데 정물화를 제일 먼저 이해하게 되었다.

정물이라는 말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놓여 있는 물건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자칫 활력이 없는 무생물을 뜻하는 말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할런지도 모르지만, 고요한 본래모습 혹은 본래상태를 뜻하는 말이므로, 나는 이 말을 매우 좋아한다. 또한 불교의 교의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 중 열반을 뜻하는 적정 혹은 적멸이라는 말도 결국은 정물과 같은 개념을 지니고 있다. 『법화경』 4구게에 “모든 법은 본래부터 고요한 모습일 뿐이다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고 했다.

고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동작을 뜻하는 말로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어떤 한결같은 상태가 유지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조변석개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두고 생각해 보면, 정물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변하지 않는 옛 모습을 보여주는 그 무엇이 한없이 그립기도 하다. 물론 제행무상이라고 했듯이 모든 것은 덧없이 변해가기 마련이다. 생멸의 인연 속에서 일어나는 중생계의 일이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있기 때문에,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상황변동이 항상 일어난다. 더구나 역사가 흐르면 그만큼 시간적 진행이 있어, 어제의 시간이 오늘이 아니듯이 오늘의 상황이 어제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변화 속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은 옛것을 잃어버린 슬픔과, 변해버렸는데도 변하지 않았을 적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살다가 이제는 부유해져 형편이 좋아진 사람들도 마음 한 구석에 옛날의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다 헤어진 사람이 사랑했던 시절의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은 보통 미래에 대한 꿈이 자기의 모습이 변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동경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대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연이 그대로 변하지 않고 남기를 바란다. 어쩌면 인간의 양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것은 인간의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A라는 상황을 누구나 천편일률적으로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A가 아닌 B를 원한다. 역사는 언제나 변증법적인 논리를 타고 흐른다. A를 주장하는 시절이 있는가 하면 어느 때에 가서는 또 A를 반대한다. 소위 개혁이라는 것도 이러한 변증법적인 정반합의 논리에 의해 시도된다.

그래서 한 시대의 이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키고자 하는 어떤 문제의식도 그것에 의한 부작용이 따른다. 문제는 사회란 언제나 주장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공존해야 하며 이 공존의 공간을 보존하는 자체가 새로운 이념을 주장해 내세우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서로 상반된 견해 때문에 적이 될 수는 없다. 편이 다르다고 해서, 즉 내 편이 아니라고 해서 적이 아니란 말이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정당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좀더 넓은 면에서 보면 같은 종교인이고 같은 정치인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정화시키고 살아야 한다. 선동적 구호만 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진실한 뜻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 곧 자기 사유에 대한 정물화가 필요하다. 지조 없이 변절하는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자기 사유에 대한 정물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고요히 객관화 시켜서, 탁자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그리듯이 자기 생각을 반성해 보고 관조해보는 사고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누가 더 진지한 생각으로 사유의 공간을 넓혀 전체를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는 지도자의 안목을 높이는 탁견이다. 선거바람이 일 양춘의 4월, T.S 엘리어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기후 좋은 우리나라의 4월이야 어디 잔인할 수가 있겠는가? 만개한 벚꽃처럼 꽃등 같은 마음이 되는 4월이었으면 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4월 제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