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이야기

“스님,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자비사 신도 중 조금 연세가 드신 어느 보살이 하루는 내게 이렇게 푸념을 하셨다.
“아니, 왜요? 그러고 보니 안색이 퍽 안 좋으십니다. 어디 아프십니까?”
내가 놀라서 묻자 그 보살은,
“당뇨가 심해서요….”
라며 힘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보살님, 저도 당뇨병을 얻은 지 2십 년이나 됐습니다. 수치도 4백이 넘게 나오고요. 의사 말로는 퍽 중증이라고 하지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보살은 놀란 눈으로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고 건강하게 보이시는데요. 전 수치가 겨우 2백인데도 이리 힘든데…. 스님, 제게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시지요!”
“비결이란 게 있다면 제가 병을 잊고 지낼 만큼 바쁘게 사는 것이겠지요. 바삐 움직이다보니 미처 병을 의식하지 못하는 게지요. 보살님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보십시오. 병도 저만치 달아나 버릴 겁니다.”
나도 평소에 쉬 피로를 느끼고 목이 자주 마르며 때때로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치아도 성한 게 없을 정도로 자꾸 빠져나간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병원에 가서 따로 치료를 받은 적은 거의 없다.
특별히 좋은 약을 먹거나 자주 병원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당뇨병은 만성질환이라 치료가 쉽지 않기에 식사를 잘 조절해서 병이 호전되기만 바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병을 갖게 된 것에 늘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건강할 때보다도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남이 들으면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만이 병을 이기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조금만 게으르고 나태해도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아지고 자꾸만 눕고 싶어지는 때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할 일을 찾아서 바삐 움직이다보면 통증도, 아픔도 모두 잊게 된다. 그러니 병을 견디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활동하게 된다. 열심히 살아야 병을 이기고 견디는 힘을 얻는다.
‘보왕삼매론’을 보면,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사람은 병이 들어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또 건강할 때는 미처 몰랐던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건강할 때는 활동하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나 병을 갖고 나서 병을 견디기 위해 더 열심히 부지런히 활동하면서 사는 기쁨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또 몸이 아프니 비로소 병 앞에 무력한 자신을 느끼게 되고 겸허한 마음으로 지내게 된다. 건강할 때보다 더 고마운 마음으로 활동하는 기쁨을 몇 갑절 더 느끼고 사는 보람도 얻으니 이 모두 병으로 인한 깨달음이다.
병이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일을 찾아 즐거움을 얻으면 병은 자연히 낫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당뇨병을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병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더욱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 서면 스스로 낮아지는 ‘하심’수양 또한 절로 이루어지니 병이란 내게 얼마나 좋은 스승인가!
부산대 내과에 계신 김용기 박사는 십 년 전 이 당뇨병으로 해서 인연을 맺게 된 분이다.
당뇨 전문의로 부산에서 제1인자이신 김 박사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천주교 신자이시다. 어쩌다 만나면 늘 한결같이 내 건강을 염려해주고 걱정을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스님, 병원에 자주 들르셔야지요. 당뇨 수치가 꽤 높습니다!”
만날 적마다 이렇게 나를 나무라시곤 한다. 내가 내 병에 무신경하다 보니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병원에 자주 못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아예 병을 잊은 채 속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막상 수치를 보면 더럭 겁이 나고 걱정이 되니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김 박사는 이런 내가 걱정되는지 몇 번인가 당뇨 수치를 재는 기구를 선물한 적이 있다.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주 내 건강을 체크하고 관리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곤 하지만 역시 그때뿐이다.
일전에 천재숙 신도회장, 김용기 박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김 박사에게 늘 아픈 신도들 봐달라는 부탁만 하고 사는 나이기에 조촐한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식사 도중 김 박사는,
“저도 의사이긴 하지만 어떤 때는 의사라는 직업이 냉정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에 의사에겐 항상 정확하고 냉철한 판단이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거지요. 그런데 환자는 아파서 죽어가는데,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고 의사 자신은 감탄을 하며 기뻐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이 어찌 슬픈 아이러니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매우 인간적이고 솔직한 토로를 했다.
자연히 우리의 화제는 인간의 삶과 죽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김 박사님,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죽을 병에 걸린 환자가 있다면 이 사실을 본인에게 알리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모른 체 내버려두는 게 좋겠습니까?”
내 질문에 김 박사는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불치병 선고를 받았을 때 대부분의 환자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고서 좌절하게 되지요. 곧 분노로 이어지고 깊은 좌절로 인해 방황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죽음 선고를 받고 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하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알리는 편이 그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살마에 따라선 이를 알려서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이는 참으로 신중해야 할 어려운 문제입니다, 스님.”

나는 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불치병인 암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당신은 3년밖에 못 삽니다.’라며 죽음을 선고했다. 환자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더니 병세가 악화돼 몇 개월이 안 돼서 사망했다고 한다. 꼭 나아야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꺾이는 순간, 삶에 대한 욕구나 희망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이나 불치의 병을 얻어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의 자세에 따라 죽음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편히 갖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면 병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반면 마음에 슬픔과 분노와 걱정을 담고 살면 죽음도 더 쉽게, 더 빨리 자초된다고 믿는다.
생노병사의 괴로움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누구든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자. 그러다 보면 병도 고통도 저만치 멀리 가게 되고 죽고싶은 마음도 사라진다.
오늘 이 순간,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바쁘게 움직이자. 이것만이 스스로 병을 이기는 길이요, 죽음의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되리라.

三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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