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천차만별 요지경 속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네모진 얼굴, 둥근 얼룰, 길쭉한 얼굴… 그런가 하면 험악하게 생긴 얼굴도 있고 선한 인상의 얼굴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이, 성격과 개성이 다양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택시 기사라고 한다. 그네들은 비좁은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온갖 사람을 만나야 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어야 한다. 때로는 좋은 일도 있고 가슴 뿌듯한 일도 있지만, 택시 기사들은 억울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운전 경력 30년째인 개인택시 기사 안정윤 씨는 지금도 5년 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웃음도 안 나올 정도로 기가 차다고 말한다.
어느 날, 여자 손님이 택시를 세우더니 대전 시내로 갈 수 있겠느냐
라고 물었다. 대전은 서울에서도 한참 먼 장거리라서 먼저 요금부터 조정해야 하는 게 순서인 법.
먼 곳이라 나름대로 왕복거리로 따져 요금을 계산한 뒤 “5만 원이면 갈 수 있지요”했더니 그 여자는 두말없이 차에 오르더란다. 행색이나 말투로 봐서 그저 평범한 여자 손님이었다. 차는 쏜살같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휴게소에서도 단 한 번밖에 쉬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는 안 씨의 생각보다 비교적 빨리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 대전역 근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그 여자는, “기사님, 수고스럽겠지만 잠깐 세워 주실래요? 내 여기 아는 곳인데 볼일이 있어서요. 잠깐이면 돼요.” 하면서 어느 옷가게를 손 끝으로 가리켰다.
“그러십시오.”
차 안에서 대기한 지가 한참이 지났다. 마냥 기다리다 못해 가게 안을 기웃거려 들여다보니 그녀가 사람들과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며 커피를 배달까지 시켜 마시는 것이 눈에 띄였다.
지루해서 나른하게 기지개를 켠 뒤 하품을 하고 있자니 조금 뒤 그녀가 밖으로 나오더니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안 씨에게 권했다. “누구는 다방에서 시켜 마시고 누구는 종이컵 커피를 마시게 하나?” 내심 슬며시 불만스러웠지만, 마침 슬슬 졸음이 오던 참이라 안 씨는 고맙게 받아마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득 한기가 몸을 엄습하는 느낌에 그는 퍼뜩 잠이 깼다. 차가운 빗방울이 열어 놓은 창문 안으로 사정없이 들이치고 있었다.
저녁 8시 30분. 날은 어느새 저물었는지 사방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걸까?
아차, 그 손님!
그제서야 퍼뜩 잠에서 깬 안 씨는 황급히 그녀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시야가 닿는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여기, 아까 그 여자분 어디 갔습니까?”
안 씨는 전에 그녀가 떠들고 앉아 있던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가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멀뚱히 그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다.
“아까 그 여자 손님 말인가요? 간 지 한참 됐지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불숙 들어오더니 커피를 사주겠다고 해서 마셨는데, 조금 있더니 어디론가 사라지더라구요.”
지방까지 내려가서 빈털터리로 터덜거리며 다시 올라오는 그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하루 벌이를 고스란히 손해 본 것은 차치하더라도, 돈 한 푼 없이 집에 돌아가서 마누라에게 대체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안 씨는 그저 눈앞이 깜깜해질 뿐이었다.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신 사건 이후,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들이 사주는 음료수는 절대 마시지 않고 우선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스님, 동료 기사들이 겪은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자면 제 얘긴 아무것도 아닌 셈입니다. 저보다 더한 일을 당하고 사는 택시 기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구료. 그런 험악한 일을 많이 겪으십니까?”
“택시 기사라면 누구든 한두 번쯤 겪게 되는 일이지요. 일전에 저와 가까운 동료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지요.”
늦은 밤 강남 XX동으로 가자며 두 여자가 택시에 올랐다. 주고받는 내용으로 보아 절친한 친구 사이인 듯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구슬픈 노래를 부르다가 울기도 하다가 누군가를 원망하는 소리도 하고… 앞에서 듣자니 민망하기까지 하더라고 했다. 한마디 하려다가 기사는 살다보니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 저러는가 보다.
하고 애써 이해하며 아무 말 없이 참고 앉아 있었다.
목적지 3분의 2쯤 되는 지점에 오자 한 여자가 잠시만 세워달라고 하더니 근처 약국으로 들어갔다가 곧 나왔다.
“아저씨, 시끄럽게 해서 어떡해요. 미안해서 드리는 건데…, 수고하시는데 이것 좀 드세요.”
이렇게 말하는 그 여자의 손에는 드링크가 한 병 들려 있었다. 그도 피곤했던 참이라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 마셨다. 조금 지나니 뒷좌석의 여자들도 지쳤는지 조용한 기색이었다. 얼마 후, 목적지에 다다랐는데도 그녀들은 내릴 기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손님, XX동 다온 것 같은데요, 어디에 내리십니까?”
그러자 그녀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주세요.
하고 미루면서 자꾸 기사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기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 여자가 노골적으로 그의 기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 괜찮으세요?”
“왜 그러십니까? 빨리 내리는 곳을 알려 주십시오.”
머릿속이 서서히 몽롱해지며 나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참으며 그가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졸음이 올 시간이 아닌데 자꾸 눈이 감겨오는 것이다.
`혹시 좀 전의 그 드링크가?”
그제야 손님들이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내리시지 않고 뭐하시는 겁니까?”
기사의 언성이 높아지자 그제야 두 여자는 마지못해 꾸물거리며 내리는데,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밖에서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차 안만 흘낏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더니 기사는 곧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창문을 굳게 잠그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알고 보니 그녀들은 택시 전문 털이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요 스님, 그때 그 친구가 왜 안 당했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평소에 수면제나 각성제 등의 약을 습관적으로 복용하기 때문에 약물 중독증세가 있거든요. 보통 웬만큼 먹어서는 듣지 않기 때문이죠.”
아연실색할 일이다. 택시비를 내기 싫다고 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도망가는 사람이나, 남의 돈을 빼앗기 위해 드링크에 약을 타서 권하는 사람들 이라면 진정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진정 배가 고프거나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듣게 될 때 내 마음은 아프다. 어이없이 당하는 사람보다 속이는 사람이 더 측은하고 안타깝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짓는 죄업이 그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사람이란 지은 바대로 거두는 법
이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들이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처럼 어이없이 당하는 실례들이 흔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일들이 어찌 택시를 운전하는 이들만이 겪는 일이겠는가. 사실 우리 주위에는 해서는 안 될 고약하고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뿌린대로 거둔다.
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게 마련인 것이다. 콩을 심어 놓고 팥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업자득
또는 인과응보
라는 말로 표현한다.
착하고 좋은 행위만 찾아서 열심히 하게 되면 좋은 습관이 생겨서 행복하게 잘살 수 있을 것이요, 나쁘고 악한 행위만 끊임없이 되풀이를 하다보면 자연히 그 살아가는 모습도 괴롭고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스스로 복을 짓지는 못할 망정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이는 죄를 짓는 일이다. 남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고약한 일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그 죄업은 계속 다음 생에도 이어지리라.
부디 마음을 곱게 지니자.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