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죽음
“왜냐하면, 두 가지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죽음이란 이른바 육체적 죽음[分段死]과 부사의한 변화로서의 죽음[不思議變易死]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거짓된 중생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며, 부사의한 변화로서의 죽음은 아라한, 벽지불, 대력(大力)보살의 의생신(意生身)이며 궁극적으로 위없는 깨달음입니다.
두 가지 죽음 가운데 육체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아라한과 벽지불의 지혜 –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我生已盡] – 를 설하게 됩니다. 업의 잔재가 남게 되는 과보를 얻기 때문에 ‘청정한 행은 이미 완성했다'[梵行已立]고 설하게 됩니다. 범부와 인천(人天)의 과보를 얻을 중생은 능히 판단하지 못하고, 아라한이 되기 전 일곱 단계의 성자들은 그 이전에는 끊지 못하였던 허망한 번뇌를 끊었으므로 ‘지어야 할 바는 모두 마쳤다'[所作已辨]고 설하게 됩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이 끊은 바 번뇌는 다시 미래의 윤회하는 삶[後有]을 받지 않으므로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不受後有]고 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번뇌를 다 없앤 것도 아니며 또한 다시는 모든 생을 받는 것을 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시는 미래의 윤회하는 삶을 받지 않는다’고 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번뇌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