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만이 완전한 열반을 얻는다
“세존이시여, 아라한과 벽지불은 두려움을 갖습니다. 또한 아라한과 벽지불에게는 업(業)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有餘]. 윤회(輪廻), 재생(再生)으로 이어지는 성질[生法]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태어남이 있으며 업의 잔재가 있습니다. 청정한 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순수하지 않으며, 일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마땅히 지어야 할 바가 있습니다. 피안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마땅히 끊어야 할 바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오직 여래, 응공, 정등각만이 완전한 열반을 얻으며 모든 공덕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아라한과 벽지불은 모든 공덕을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오직 여래만이 완전한 열반을 얻으며,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합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한량이 있는 공덕을 성취할 뿐입니다.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오직 여래만이 완전한 열반을 얻으며,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생각할 수 있는 공덕만을 성취할 뿐입니다.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오직 여래(如來)만이 완전한 열반(涅槃)을 얻으며, 마땅히 끊어야 할 모든 허물을 모두 끊으며 가장 훌륭한 청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허물을 남겨 가장 훌륭한 청정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방편일 뿐이니, 오직 여래만이 완전한 열반을 얻어서 모든 중생이 존중하는 바 되며 아라한, 벽지불, 보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열반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아라한과 벽지불이 해탈의 네 가지 지혜[解脫四智]를 관찰하며 마침내 번뇌가 쉬는 경지[蘇息處]를 얻는다’는 것 역시 여래의 방편이니, 업의 잔재를 남기는 것이고 궁극적인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 가르침[不了議設]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