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의 유지는 올바른 가르침의 유지
“마치 세존께서 설하시는 여섯 가지 요점[六處]과 같습니다. 여섯 가지 요점이란, 올바른 가르침의 유지[正法住], 올바른 가르침의 소멸[正法滅], 계본[波羅提木叉], 교단의 규범[毘尼], 출가하는 것, 구족계를 받는 것입니다. 대승을 위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섯 가지 요점을 설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올바른 가르침의 유지는 대승을 위하기 때문이니, 대승의 유지가 곧 올바른 가르침의 유지라고 설하는 것입니다[大乘住者 卽正法住]. 올바른 가르침의 소멸은 대승을 위하기 때문이니, 대승의 소멸이 곧 올바른 가르침의 소멸이라고 설하는 것입니다[大乘滅者 卽正法滅]. 계본과 교단의 규범, 이 두 가지는 뜻은 하나인데 이름만 다른 것입니다. 교단의 규범은 곧 대승의 배움입니다[比尼者卽大乘學]. 그것은 부처님에 의지하여 출가하여서 구족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계[大乘威儀戒]가 교단의 규범이며, 출가이며, 구족계를 받는 것이라 설하는 것입니다. 즉 아라한의 길에는 출가도 구족계를 받음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라한 스스로도 여래에게 의지하여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아라한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아라한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어진 것[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칼을 갖고 자기를 해치러 오는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라한은 완전한 즐거움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의지처는 다시 의지할 대상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지처가 없는 중생은 그러한 두려움이 있으며, 그러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곧 귀의처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라한의 경우에도 두려움이 있으며,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여래에게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