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초승달

반륜명월백운추 半輪明月白雲秋 하늘에는 초승달 산에는 흰 구름

풍송천성하처시 風送泉聲何處是 어디서 물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나

시방무량광불찰 十方無量光佛刹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 나라 다니며

진미래제작불사 盡未來際作佛事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 일 하리라.

이 시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 : 1055〜1101)의 임종게로 알려져 있는 시이다. 문종의 4째 왕자였던 스님은 11살에 출가하여 그 당시 왕사였던 난원(爛圓)을 의지하여 득도한 후 개성 영통사에 머물다 15세에 승통(僧統)이 되기도 하였다. 31살 때 송나라에 들어가 천태교학을 배우고 돌아와 고려에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흥왕사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립해 많은 경전을 간행하는 등 고려불교 발전에 큰 공로를 세웠다. 5째 왕자였던 동생 증엄(證儼)을 출가시켜 제자로 삼았고 이어 국사가 되었으나 47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이 시에는 죽음을 앞둔 대각국사의 발원이 들어있다. 시방의 부처님 나라를 두루 다니며 끝없는 불사를 하겠다는 불법홍포의 큰 원력이 담겨져 있다. 가을 산에 흰 구름과 함께 반달이 떴는데 어디선가 바람결에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 고즈넉한 산수의 풍경 속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면서도 내생의 원을 그리움 속에 펼쳐놓은 시이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3월 제76호

하늘과 땅은 텅 빈 한 채의 집이요

天地一虛堂(천지일허당) 하늘과 땅은 텅 빈 한 채의 집이요

古今一瞬息(고금일순식) 예와 지금은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이라네.

其中一主人(기중일주인) 그 가운데 있는 한 주인은

曠劫一顔色(광겁일안색) 영원토록 얼굴 한번 변하지 않네.

청허당 서산스님의 이 시는 주인공 법문이다. 천지만상을 장악하고 있는 한 주인공을 의인화 하여 천지의 집에서 고금의 시간을 모두 사는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는 주인이라 하였다.

각 구절이 모두 하나를 나타낸 일자법문이기도 하다. 결국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근본자리의 한 물건(一物)을 말해 놓은 시이다. 영원토록 얼굴 한번 변하지 않는 천지집에 사는 주인이 바로 중생의 본래면목이다.

또한 이것이 본 부처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본래 얼굴이 부처의 얼굴이란 말이다. 중생의 입장에서는 본래 가지고 있던 얼굴, 잃지 않았으면서도 잃어버린, 부처의 얼굴이었던 내 본래의 얼굴을 찾는 것이 나를 제도하는 것이다.

풀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하고

조의명명백초두 祖意明明百草頭 풀 끝마다 조사의 뜻 분명하고

춘림화발조성유 春林花發鳥聲幽 봄 숲에 꽃피자 새소리 그윽하다.

조래우과산여세 朝來雨過山如洗 아침빗발 스쳐간 산은 세수를 하였나?

홍백지지로미수 紅白枝枝露未收 붉고 흰 가지마다 이슬이 맺혔다.

정법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투철한 직관력이 있다. 풀잎 하나, 꽃 한 송이에서 우주의 신비를 보고 무궁한 진리의 세계에 대한 감동을 느낀다. 조의(祖意)란 조사의 뜻이란 말인데, 이 말은 불법의 단적인 핵심을 가리킨다. 풀 끝마다 무궁한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하나도 숨김이 없는 이 경지가 도를 통달한 도인의 눈에는 예사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고 숲에는 새가 운다. 이 자연의 섭리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작용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 시는 봄의 풍광을 읊은 것이나 자연을 관조하는 내밀한 여운이 흠씬 풍긴다. 비가 스친 봄 산이 세수를 한 듯 이슬 맺힌 가지가 오히려 해맑다. 맑은 서정이 정말 이슬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 시의 작자 감산덕청(감山德淸)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스님이다. 1546년 남경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보은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제방을 다니면서 도업을 닦아 선취를 터득하고 여러 곳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여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여산(廬山)에 오래 머물다 조계로 돌아와 1623년 78세로 입적했다. 어록을 비롯한 몽유전집(夢遊全集)등 많은 저서가 남아 전한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3월 (제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