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속아보시면 안될까요

어떤 사람이 화장실을 갔답니다. 하루를 살면서 가장 많이 가는 곳 중 한 장소.

우연히 눈을 들어 보니, 앞에 짤막한 글귀가 조그마한 메모지에 적혀 있더랍니다.

“당신에게 오늘 기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 한마디.

피씩 웃고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그 한 줄의 글귀가 계속 기억에 남더랍니다.

왠지 정말로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이상한 느낌. 그 날은 매우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그 글귀가 생각나더랍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의 많은 사람들이 짜증나지도 않았고, 한 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자신의 조그만 집이 자신이 쉴 수 있는 평화로운 장소인 듯한 포근한 느낌. 약간 쌀쌀한 날씨가 시원하게 느껴졌고, 어두운 길에 빛을 밝혀주는 낡은 가로등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그 위에 떠있는 달이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을 맞아주는 그런 풍족한 느낌. 얼굴에 저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지고, 내일도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희망.

단 한 줄의 글귀.

당신에게 오늘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이미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아마도 내일 그 글귀가 또 생각날 듯싶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그럴 겁니다. 매일 매일 전,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매일 되는 오늘이 제게는 좋은 일이 생기는 날일 테니까요.

여러분도 한 번 속아보지 않으시렵니까?

밑져야 본전이면, 한 번만 속아주세요.

당신에게 오늘 좋은 일이 생길 테니까요.

(글) 종산 황태준 (출처: 「좋은 글」). 월간 반야 2011년 12월 133호

한 번 서산문에 들어와

일입서문고로망 一入西門古路忘 한 번 서산문에 들어와 옛길을 잊었으니

수류수처몰사량 隨流隨處沒思量 흐르거나 머물거나 아무 생각 없다네.

산중세월수능기 山中歲月誰能紀 산중의 세월 그 누가 기억하랴.

기견괴음청우황 只見槐陰靑又黃 괴목나무 잎들이 푸르다 노래진다.

조선조 중엽 보응영허(普應暎虛 : 1541~1609)대사는 사대부의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이 뛰어나 글을 잘 하였다. 8살 때 대학을 공부하고 그 뜻을 이해하였으며, 어른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15살 때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을 하고는 충격을 받아 인생무상을 느끼고 19살 때 출가를 한다. 실상사에 계시던 인언(印彦)스님을 은사로 축발을 하고 5년간 시봉을 하면서 경론을 열람한다. 이후 제방으로 다니며 선교를 두루 섭렵하다 마침내 묘향산 서산스님의 문하로 들어가 서래밀지(西來密旨 : 禪旨)를 터득하고 다시 천하를 주유하다가 65세 때 다시 실상사로 돌아와 대법회를 열어 경론을 강하였다. 그가 남긴 문집 <영허집>에는 주옥같은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위의 시는 서래밀지를 터득한 후 읊은 시로 원제목은 번뇌를 일으키던 모든 것을 잊었다는 망기(忘機)로 되어 있다. 사람 사는 것, 그저 세상을 관조 하면서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0월 제83호

한 그루 그림자없는 나무를

일주무영목 一株無影木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이취화중재 移就火中栽 불 속에 옮겨 심으니

불가삼춘우 不假三春雨 봄비가 오지 않아도

홍화난만개 紅花爛漫開 붉은 꽃 어지럽게 피어나리라

무엇이 그림자 없는 나무일까? 굳이 말하자면 식물의 나무가 아닌 마음의 나무다. 곧 일체 중생의 본래각성을 나무에 비유했다. 보리수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나무는 본래 피팔라(pippala)라는 나무인데, 석가모니가 그 나무 밑에서 정각을 이루고부터 깨달음을 이룬 나무라는 뜻으로 보리수로 부르게 되었다. 이 보리수가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다. 음양에 관계되지 않으므로 그림자가 없고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다. 때문에 물이 없어도 이 나무는 자란다. 물론 계절에 따라 피는 꽃도 아니다. 봄비도 필요 없고 훈풍도 필요 없다. 불 속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중생들이 번뇌와 욕망의 불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번뇌와 욕망 속에서도 깨달음의 꽃은 핀다.

『소요당집』에서 하나 뽑은 이 시는 소요태능(逍遙太能1562∼649)스님의 작품이다. 그는 편양언기(鞭羊彦機)와 함께 서산문하를 대표하는 선승이며 탁월한 선지를 터득한 인물로 널리 추앙받았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였는데, 그의 문하를 소요파라고 부르고 있다. 한때 부휴선수(浮休善修) 밑에서 대장경을 배우다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나중에 서산문하에 들어가 법을 전해 받고 금강산 오대산 등지에서 교화를 펴다 만년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머물다 입적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5월 제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