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 그림자없는 나무를

일주무영목 一株無影木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이취화중재 移就火中栽 불 속에 옮겨 심으니

불가삼춘우 不假三春雨 봄비가 오지 않아도

홍화난만개 紅花爛漫開 붉은 꽃 어지럽게 피어나리라

무엇이 그림자 없는 나무일까? 굳이 말하자면 식물의 나무가 아닌 마음의 나무다. 곧 일체 중생의 본래각성을 나무에 비유했다. 보리수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나무는 본래 피팔라(pippala)라는 나무인데, 석가모니가 그 나무 밑에서 정각을 이루고부터 깨달음을 이룬 나무라는 뜻으로 보리수로 부르게 되었다. 이 보리수가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다. 음양에 관계되지 않으므로 그림자가 없고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다. 때문에 물이 없어도 이 나무는 자란다. 물론 계절에 따라 피는 꽃도 아니다. 봄비도 필요 없고 훈풍도 필요 없다. 불 속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중생들이 번뇌와 욕망의 불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번뇌와 욕망 속에서도 깨달음의 꽃은 핀다.

『소요당집』에서 하나 뽑은 이 시는 소요태능(逍遙太能1562∼649)스님의 작품이다. 그는 편양언기(鞭羊彦機)와 함께 서산문하를 대표하는 선승이며 탁월한 선지를 터득한 인물로 널리 추앙받았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였는데, 그의 문하를 소요파라고 부르고 있다. 한때 부휴선수(浮休善修) 밑에서 대장경을 배우다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나중에 서산문하에 들어가 법을 전해 받고 금강산 오대산 등지에서 교화를 펴다 만년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머물다 입적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5월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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