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고요한 밤 산 속의 집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요요본자연 寂寂寥寥本自然 적막하기 짝이 없어 본래 그대로인데
하사서풍동임야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저 바람은 잠든 숲을 흔드나
일성한안려장천 一聲寒雁戾長天 기러기 소리내며 장천을 날아가네
산 속의 적막한 가을 밤 풍경을 읊으면서 인간의 내면을 관조한 시다. 이 시는 너무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다. 인간의 본래 한 생각의 번뇌망상을 일으키기 전에는 고요한 적멸 뿐이었다. 아무 일이 없는 고요 그 자체로 존재의 의식마저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는 것도 없었고 너라는 것도 없었다. 주객이 나누어져 서기 이전의 경계, 곧 본성의 세계에는 무명의 바람이 부는 일이 없다. 법화경의 사구게(四句偈)에서도 “제법은 항상 고요할 뿐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이라고 하였다.
내가 살아가는 이 한 생에 있어서 언제부터 이토록 많은 근심과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는가? 인연이 닿아 관계가 맺어지기 전에는 무심할 뿐이었는데, 인연 이후에 이리도 그립고 초조하기만 하다. 서풍이 불어 숲을 흔든다는 것은 생멸심의 번뇌가 바람이 되어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을 말하고 기러기가 울며 하늘을 날아간다는 것은 우리들 존재의 고민이 현실에 부딪혀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음을 뜻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왜 이러는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희·노·애·락을 싣고 사는 인생. 이것이 바로 숲을 흔드는 바람이요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10월 (제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