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무성요죽류 澗水無聲遶竹流 개울물 소리 없이 대밭을 감아 흐르고
죽서화초농춘유 竹西花草弄春柔 대밭 가 꽃과 풀은 봄기운에 취했구나.
모첨상대좌종일 茅簷相對坐終日 풀집 처마를 보며 진종일 앉자 있으니
일조불명산갱유 一鳥不鳴山更幽 새 한 마리 울지 않아 산이 더욱 깊네.
왕안석(王安石1021~1086)은 송나라 때 개혁정치를 주장한 인물로 흔히 조선시대 조광조(1482~1519)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부국강병과 인재양성을 목표로 내세웠던 신법(新法)을 실현코자 많은 파란을 겪었던 그는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종산(鐘山)에서 여생을 보냈다. 학자요 문인이기도 했던 그는 구양수(歐陽修)를 스승으로 하여 명석하고 박력 있는 문체를 만들어 냈다. 문장의 대가가 되어 당· 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치기도 한다. 자연을 읊은 시가 특히 우수하며, 유교와 불교의 경학에도 밝았다. 불교에 심취해 많은 경전을 열람하고 당대의 고승들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 시는 종산에 묻혀 살 때 지은 자연시로 고요한 자연 속에 선(禪)의 경지가 은근히 피어나는 선시의 대표작이랄 만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