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박복하다 비웃지 말라

막소생애박 莫笑生涯薄 내 생애 박복하다 비웃지 말라

요현일소도 腰懸一小刀 허리에 찬 작은 칼 하나로

등등천지내 騰騰天地內 하늘과 땅 사이에 늠름하나니

처처진오가 處處盡吾家 이 세상 모든 곳이 내 집이라네

이 시의 작자 침굉(枕肱:1618~1686) 스님은 조선조 숙종 때의 스님이다. 출가 수도자의 기백이 넘치는 이 시 한 편이 그의 생애를 돋보이게 한다. 법명이 현변(懸辯)이었던 그는 9살에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으나 10년이 지난 19살 때 고산 윤선도가 양자로 삼아 환속시키려 하였으나 울면서 애원하여 승려로 남았던 사람이다. 그런 뒤 을사사화 때 윤선도가 광양에 유배되었을 때 찾아가 창랑가(滄浪歌)를 지어 위로한 일도 있었다. 소요태능(逍遙太能)의 법을 이어 선암사, 송광사 등 호남의 여러 사찰에 주석하면서 법을 폈다.

부귀영화 멀리하고 가진 것 없어도 허리에 패도하나 차고서 천지 안에 꿀리지 않게 살았다. 운수행각으로 천하를 떠도니 어디든지 내 있는 곳이 내 집이 된다. 작은 칼은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 곧 지혜의 칼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9월 제82호

남북으로 갈라진 산의 작은 오솔길에

산북산남세로분 山北山南細路分 남북으로 갈라진 산의 작은 오솔길에

송화함우락빈분 松花含雨落繽紛 비 머금은 송화가 어지럽게 떨어지는데

도인급정귀모사 道人汲井歸茅舍 도인은 물을 길어 띠집으로 돌아가고

일대청연염백운 一帶靑煙染白雲 푸른 연기 띠를 둘러 흰 구름을 물들이네.

산중의 띠를 엮어 지붕을 만든 움막집에 한 도인이 샘에서 물을 길어가 밥을 지었는가 보다. 굴뚝에서 솟아 오른 푸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흰 구름을 물들인다. 마침 산에 들어와 오솔길을 가던 한 나그네가 이 광경을 보고 시를 한 편 지었다. 고려의 문신 이숭인(李崇仁1349~1392)이 지은 이 시는 푸른 연기(靑煙)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시이다.

고려 말의 문신으로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도은(陶隱) 이숭인은 대학자이면서도 정치적 파란만장을 겪은 인물이었다. 문장이 출중했던 그는 정몽주와 더불어 실록을 편수하고 벼슬도 역임 동지사사 등에 전임되기도 했지만 여말의 혼란한 정치적 와중에 수차례의 유배를 당하고, 조선조의 개국에 이르러 정도전과 처세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도전이 보낸 자객 황거정에 의해 유배지에서 장살(杖殺)을 당해 비운의 생애를 마감한다.

날이 다하도록 봄을 찾아도

진일심춘불견춘 盡日尋春不見春 날이 다하도록 봄을 찾아도 봄을 보지 못하고

망혜변답농두운 芒鞋遍踏籠頭雲 짚신이 닳도록 이랑머리 구름만 밟고 다녔네

귀래소연매화취 歸來笑撚梅花臭 허탕치고 돌아와 매화꽃이 피었기에 향기를 맡았더니

춘재지두이십분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흠뻑 가지 위에 있었네

어떤 사람이 봄을 찾아 나섰다. 들이랑 산골짜기를 온통 쏘다니며 해가 저물도록 봄을 찾았으나 봄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 왔더니 마당가에 있는 매화 가지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향기를 코로 맡다가 온종일 찾아 헤맸던 봄이 바로 꽃향기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내면의 자기 마음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상징해 놓은 이야기다. 가령 인간이 원하는 행복이 어디 있느냐 하면 이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객관의 조건에서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나아가서 ‘도(道)다. 진리다’고 하는 것도 우리들 마음을 떠나서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 곁에 도가 있고 사람 곁에 진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는 진리를 찾기가 쉽지 않는 것이 중생이다. 내 곁에 행복이 있어도 그 행복을 모르고 먼 곳을 다니면서 찾는다는 뜻으로 한, “마음밖에 부처를 찾지 말라”는 선가의 말은 수행자들에게 엄격한 주의를 주는 말로 알려져 있다. 마음 빼면 인생이 없고 마음 빼면 우주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마음에 의해 있는 것이고 마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이 유심(唯心)의 도리를 사람들이 쉽게 알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을 알기까지는 숱한 헤맴과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사실이다. 메틸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나 카알 붓세의 산너머 행복 이야기도 이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부정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매화향기에 서 봄을 찾았다고 긍정으로 마무리했다.

이 시의 원작자가 누군지 어느 때 사람인지 알려지지 않은 채 전해져 작자미상으로 간주되는데, 다만 어떤 비구니 스님이 지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애틋한 서정이 배여 있어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3월 (제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