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은 영락없는 독수리 형상이다.
날개 크게 펼쳐 하늘 허공을 돌며
먹이를 낚아채기 직전, 저 거침없는 몰입의 긴장을 나는 느낀다.
무진장무진장 눈이라도 퍼붓는 날이면
흰 날개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이고
산의 들숨날숨 따라가다 나도 함께 숨을 멈추고 만다.
명창의 한 호흡과 고수의 북 치는 소리 사이
그 사이의 짧은 침묵 같은, 잠시라도 방심한다면
세상 꽉 붙들고 있는 모든 쇠줄들
한순간에 끊어져 세차게 퉁겨 나가버릴 것 같은,
팽팽한 율에 그만 숨이 자지러지는 것이다.
겨울산을 면벽 삼아 수좌들 동안거에 들고
생각 놓으면 섬광처럼 날아와 눈알 뽑아버릴
독수리 한 마리 제 앞에 날려놓고
그도 물잔 속의 물처럼 수평으로 앉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잔속의 물 다 쏟고 마는
그 자리에 내 시를 들이밀고, 이놈 독수리야!
용맹스럽게 두 눈 부릅뜨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그들처럼 죽기를 살기처럼 생각한다면
마주하는 산이 언젠가는 문짝처럼 가까워지고
영축산은 또 문짝의 문풍지처럼 얇아지려니
그날이 오면 타는 손가락으로 산을 뻥 찔러보고 싶다.
날아라 독수리야 날아라 독수리야
산에 구멍 하나 내고 입바람을 훅 불어넣고 싶다.
산 뒤에 앉아 계신 이 누구인지 몰라도
냉큼 고수의 북채 뺏어들고
딱! 소리가 나게 산의 정수리 때려
맹금이 날개로 제 몸을 때려서 하늘로 날아가는 소리
마침내 우주로 날아오르는 산을 보고 싶은 것이다.
•
출처: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정일근 시인 글. 월간 반야 2011년 5월 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