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

하루는 운문(864~949)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십오일(十五日) 이전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묻지 않겠다.

하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해서는 어디 한 마디 일러 보아라.”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스승의 질문에 선 듯 나서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님은 스스로 답했습니다.

“날마다 좋은날(日日是好日)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날씨가 맑으면 좋다 궂으면 나쁘다 하며 생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우주의 본체(本體)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날씨가 좋든 싫든 모두가 자연의 현상일 뿐 거기에는 선, 악, 분별은 없습니다. 이를 선에서는 의심즉차(擬心卽差) 또는 동념즉괴(動念卽乖)라는 표현으로 사의(思議)를 하면 곧 진리와는 어그러지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만약 운문선사가 대중에게 물은 ‘십오일’을 기준으로 이전 ․ 이후라는 분별로서 헤아리게 된다면 운문선사가 요구하는 의도를 바르게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필경 운문선사와 같은 조사의 입장에서 십오일이라는 단순한 날짜의 구분을 두어 물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무릇 선의 경지는 스스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부득이 운문선사는 제이의문(第二義門)인 방편적인 말로써 자신의 선의 경지를 “날마다 좋은 날이다”라고 나타내 보였던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들이 살아가는 날들을 무명에서 벗어난 시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한결같이 좋은 날일 것이요. 임제선사가 말한 무위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일시호일’은 『벽암록』 6칙, 『선문염송』 1009칙에 나오는 공안입니다.

인해스님 (동화사 강사) 글. 월간반야 2005년 5월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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