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암

바람에 춤도 추고

굽이굽이 돌아가도

경(經)읽던 동박새가

반야암 없다더라

침묵은

숲에 잠들고

난 향기에 취한 절 .

때로는 안개 빛에

가려진 생각 끝 쯤

촉각세운 문답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면벽의

숨은 그림자에

찬바람이 일고 있다.

김보안 (시조시인·양산여고교장) 글. 월간반야 2008년 12월 제97호

반달이 밝게 떠서

반륜명월조서상 半輪明月照西床 반달이 밝게 떠서 서쪽 상을 비추는데

소관전다열주향 小鑵煎茶熱炷香 작은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을 피워 놓고

공시조심동일치 共是操心同一致 함께 마음 다잡아 운치를 같이 하니

막장현백착상량 莫將玄白錯商量 검고 흰 것을 가지고 잘못 헤아리지 말라

이조 초기의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한때 스님이 되어 절간에 살기도 하였다. 그의 법명은 설잠(雪岑)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의상 스님의 『법상게』에 관한 주석서인 『법계도주』 등 약간의 저술도 남아 있다. 단종을 옹위하려다 세상에 대한 울분을 품고 광인처럼 행세하던 그가 불교에 귀의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는지 이 시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에 들어 있는 달관자의 한가로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반달이 떠서 서쪽 창으로 방안을 비추는데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로에 향을 하나 꽂았다. 이른바 다반향초(茶半香初)의 운치다. 이 속에서는 세상의 시비를 따질 것 없다. 흑백논리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망상 속을 벗어나면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적정을 즐기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들면 세상은 모두 하나가 된다.

바루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면서

일발천가반 一鉢千家飯 바루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면서

고신만리유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 만리를 떠도네

청목도인소 靑目睹人少 눈 푸른 이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문로백운두 問路白雲頭 흰 구름에게 갈 길을 물어 볼까나.

운수송(雲水頌)으로 알려진 포대화상(布袋和尙)의 시다. 이 시 한 편이 그의 생애를 말해 주고 있다. 일생을 떠돌이 삶을 살았다는 포대화상의 애환이 엿보이는 내용이다. 구름처럼 물처럼 정처 없이 떠돌며 유랑으로 일생을 보낸 그도, 어쩌면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가 없어 무척이나 외로웠는지 모른다. 구름에게 길을 묻는다는 마지막 구가 세상을 초월한 자의 자유보다 그리움의 향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포대화상은 생몰연대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는 기이한 언행으로 세상을 살아 숱한 일화를 남긴 전설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중국 오대(五代) 때 양(梁)나라 봉화(奉化)출신으로 몸이 뚱뚱하고 배가 늘어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지 보면 달라고 하여 그 속에 넣어 담아 사방을 떠돌아 다녔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날씨나 길흉화복에 대한 것을 말해 정확히 맞춰주기도 했다고 한다. 긴 자루를 메고 다닌다 해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포대화상이라 불렀으며, 또 장정자(長汀子)라 부르기도 했다. 미륵보살의 화현(化現)이라고 그를 존경하여 그의 모습을 그려 받드는 풍습도 생겨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실제 그가 단정히 앉아서 입적할 때에(일설916년),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 분신백천억(分身百千億) /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이란 게송을 읊고 입적하였다 고한다.

미륵, 참된 미륵이여!

백천억으로 몸을 나누어

때때로 그때 사람들에게 보여줬건만

그때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구나.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3년 12월 제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