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자 산나무

풍동과빈락 風動果頻落 바람 불자 산 나무 열매 자꾸 떨어지고

산고월이침 山高月易沈 산이 높으니 달이 벌써 지려하네.

시중인불견 時中人不見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데

창외백운심 窓外白雲深 창 밖에 흰 구름만 자욱하구나.

이조 중기 부휴선수(浮休善修1545~1615)선사가 남긴 이 시는 산중의 정취가 조용히 풍겨 나온다. 사람이 자기 시간을 갖고 살기가 어렵다. 매일 누구를 만나서 사교를 하고 어떤 일에 매달려 그 치다꺼리에 부심하다 보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겨를이 없어져 버린다. 또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끝없이 객관 경계를 쫓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비추어보지 못한다. 어쩌면 이 시대는 사람이 자기 반조(返照)를 하지 않는 시대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세상은 반성하기를 싫어하면서 일방적 고집으로 사는 것 같다. 욕망의 공간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정신적 여백을 사양하는 것 같다. 도인들의 삶의 자취를 한 번 보라. 그들은 자기 고독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고독해 몸부림치지 않는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롭기 때문에 그 시간을 사랑하며 잘 견딘다. 혼자만의 세계에는 언제나 자화상을 바로 보는 거울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기 자화상을 바로 보는 일이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아무도 없는 홀로의 시간에 자연을 벗하여 세상을 관조하면 초연한 자기의 본래 모습이 만상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부용영관(芙蓉靈觀)의 법을 이은 부휴는 임진란 당시 덕유산에 은거하면서 무주 구천동에서 한때 간경(看經)에 여념없이 지낸 적도 있다. 송광사에도 머물다가 나중에 칠불암에 가서 그 곳에서 입적하였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2월 제51호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風幡問答)

육조 혜능스님은 오조 홍인스님으로부터 법과 가사를 받고 17년간 재속(在俗)의 은거생활을 한 후, 의봉(儀鳳) 원년(676) 남해의 제지사(制止寺)에 이러러 인종(印宗)법사(627~713)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회상(會上)을 만났습니다.

그 때 인종법사가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모두 바람이 찰간으로 부는 것을 보라. 꼭대기의 깃발이 움직이는가?” 대중들이 말했습니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으로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으로 봅니다.” 혹은 “이것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견해(見解)가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하며 논쟁이 어렵게 되어 진정하지 않게 되자 혜능스님이 좌석에서 일어나 법사에게 대답했습니다. “본래 대중들의 망상심이 움직이고(動) 움직이지 않는 것(不動)일 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본래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는 것과는 관계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인종법사는 놀라서(驚愕) 멍하게(茫然)되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어 법사가 물었습니다. 거사(혜능스님)는 어디에서 왔소? 혜능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ꡒ본래 온 것도 아니요, 지금 또한 가는 것도 아닙니다.ꡓ 법사는 법상(高座)에서 내려와 혜능을 맞아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위의 이야기는 『역대법보기』의「혜능장」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좀 더 명확히 알리고자 첨삭 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여기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대중들을 향해 혜능스님이 내어 보인 것은 바람과 깃발이라는 객관적인 대상인 사물에 집착하는 대중들의 견해를 타파하고 각자의 주관적인 입장으로 되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마음이라는 본체와 깃발과 바람의 움직임이라는 현상(작용)을 다 같이 수용하는 체용일여(體用一如)의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송대(宋代)의 무문혜개(1183~1260)스님은 그가 편집한『무문관』에서 ꡐ바람이 깃발을 움직이게 한 것도 아니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며, 또한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ꡑ라고 했습니다. 즉 주관적인 마음과 객관적인 바람과 깃발이 모두 차별적인 것으로 보고 자기와 일체 만법이 하나가 되는 경지(萬法一如)가 되는 무심의 경지를 설하셨던 것입니다.

인해스님 (동국대 강사) 글. 월간반야 2005년 9월 제 58호

바람끝바위

시락리 바닷가, 바람끝바위의 바람 끝자리에 핀

갯메꽃 발그레한 웃음을 엿보며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 등에 옹그리고 앉아

바위 끄트머리

아슬아슬한 틈새를 비집고 가느다란 길을 내는

갯고동을 뒤따라가니

오래 전 잊어버렸던 길,

어딘가로 마구 휩쓸려가던 마음길이 보였습니다.

바람의 말, 별의 말들이, 모시조개의

숨소리와 이웃하여

도란도란 주고받는 밀어密語가 들리고

산하대지를 적멸도량으로 삼았던,

옛 어른들의 말씀도 어슴푸레 들렸습니다.

산치대탑에 스며들던 달빛이 내 맘의 문을 열었듯

저 바다 윤슬 또한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엽니다.

마삭줄도 칡넝쿨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길을 내고

말미잘 다시마도

초록으로 넘실대는 향기로운 길을 냅니다.

文殊華 하영 (시인, 반야불교학당) 글. 월간반야 2009년 4월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