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입이 되어 허공에 걸려

통신시구괘허공 通身是口掛虛空 온 몸이 입이 되어 허공에 걸려

불관동소남북풍 不管東西南北風 동서남북 바람을 가리지 않고

일등여거담반야 一等與渠談般若 언제나 바람 따라 반야를 노래하네

적정동료적정동 滴丁東了滴丁東 뎅그렁 뗑 뗑그렁 뗑

절에 가면 처마 밑에 풍경이 달려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작은 종 모양의 요령 안에 방울이 달렸고 그 밑에 보통 불고기 모양의 쇠붙이가 달려 있다. 이 풍경을 소재로 멋진 시를 지은 사람은 천동여정(天童如淨)선사(禪師)이다. 그는 조동종에 속해 있던 승려로 남송(南宋) 때 사람이다. 생몰 연대가1163에서 1228년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를 반야를 노래한다고 한 것은 깊은 직관력을 터득한 경지라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를 반야송(般若頌)이라고 불러왔듯이 선시사(禪詩史)에서 반야의 세계를 노래한 백미(白眉)로 알려져 있다. 여정(如淨)의 문하에서 수학한 일본 조동종의 개조인 도원(道元)은 이 시가 단연 선시로서 최고의 격을 갖춘 시라 하였다.

예로부터 바람소리 물소리가 모두 반야를 노래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 반야를 증득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 반야의 화음으로 들릴 것이다. 때로는 사람이 사람의 말이 아닌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디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가 실상의 이치를 관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면 마음에 와 닿는 모든 것이 부처의 세계에서 들려 오는 반야의 소리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두두(頭頭)가 비로(毘盧)요 물물(物物)이 화장(華藏)이다” 고 한 말이 있듯이 실상을 통달한 지혜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이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온 세상이 비로자나의 법신 정토(淨土)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긍정하고 살아야 할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불만에 의하여 이 세상을 부정하고픈 때가 있기도 하나 대자연의 이치 속에는 아무런 결함과 하자가 없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원만 그 자체라는 것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2월 (제15호)

연꽃잎 달빛 향해

부용월향회중조 芙蓉月向懷中照 연꽃잎 달빛 향해 가슴을 열고

양류풍래면상취 楊柳風來面上吹 버들잎 바람 불어 얼굴이 간지럽네.

야반정전자지무 夜半庭前柘枝舞 밤새도록 뜰 앞에서 춤을 추다가

천명라수습연지 天明羅袖濕臙脂 날이 밝아 비단소매 분 냄새가 축축하네.

못에 핀 연꽃에 달빛이 쏟아진다. 가슴에 빛을 품은 아름다운 연꽃잎이 청정무구의 극치를 드러낸다. 버들가지 흔들며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또 얼굴이 간지럽다. 번뇌는 이미 떠났다. 공연히 인생을 시비로 몰지 말라. 안으로 흐르는 은은한 환희는 내 흥에 도취되어 춤을 추고 말 일이다. ꡐ자지무(柘枝舞)ꡑ란 원래 혼자 추는 춤이다. 밤새도록 춤을 추었더니 날이 밝자 옷자락에 연지가 배여 축축한 냄새가 난다.

이 시는 『선문염송』에 나오는 심문담비(心聞曇賁)의 송(頌)으로 매우 심오한 선의 지취(旨趣)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위산(僞山)이 앉아 있는데 제자 앙산(仰山)이 들어왔다. 위산이 두 주먹을 마주 쥐어 보였다. 앙산이 얼른 알아보면서 여자들이 하는 무릎만 약간 굽히는 절을 했다. 이를 본 위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ꡒ옳지, 옳지ꡓ 했다는 것이다.

이를 화제로 심문이 이와 같은 시를 지었다.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은 심문은 송대의 선승(禪僧)이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선은 식심분별이 갈아 앉은 경계에서 일어나는 직관의 순발력으로 때로는 상식을 뛰어넘는 예지를 발휘한다. 이것이 선수행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일차 방정식의 공식이 이차 방정식에 적용될 수 없듯이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번뇌를 여읜 사람의 의중을 알 수 가 없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8월 제57호

어느 집 피리 소리 강 위에 들려오고

성래강상수가적 聲來江上誰家笛 어느 집 피리 소리 강 위에 들려오고

월조파심인절적 月照波心人絶跡 달은 파도 한복판을 비추는데 사람은 하나 없네.

하행차신금도차 何幸此身今到此 이 몸이 여기 온 것 다행이구나.

의선고자망허벽 倚船孤坐望虛碧 뱃전에 기대어 푸른 허공 쳐다보니

달빛 젖은 애수가 서리는 시이다. 불운한 시절을 만난 어느 선사가 달밤에 강가 나루터에 도착 하였다. 뱃전에 기대어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는데 뉘 집에선가 객수를 달래주는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이 허적한 이 시의 작자에게는 남모르는 슬픔이 있다. 세상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만 돌아가고 아무도 도(道)의 참 정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진리의 참 가치를 외면하고 파당적 분쟁과 배타적 고집으로 불교를 비방하고 배척하는 목소리가 권력 실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조 초기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으로 국시가 바뀌었을 때 안간힘을 다하며 호불(護佛)에 힘쓰던 함허득통(涵虛得通1376~1433)선사의 근심이 이 시에 배어 있다.

21세에 출가해 제방을 순력하던 그는 오대산에 들어가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영감암(靈鑑庵)에 가서 나옹스님 영정을 참배하고 이틀을 묵었는데, 나옹스님이 현몽하여 이름과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기화(己和)라는 본래 법명과 득통이라는 호를 꿈속에서 받았다는 것이다.

공공연히 불교를 배척하는 유자들의 횡포가 심할 때 그는 『현정론(顯正論)』과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을 지어 불교를 적극 옹호 하면서 유자들의 불교폄하를 반박하였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찰이 헐리는 등 불교 수난이 계속돼 이를 가슴 아파하다 봉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유명한 『금강경오가해설의』와 『원각경소』가 남아 전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