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래강상수가적 聲來江上誰家笛 어느 집 피리 소리 강 위에 들려오고
월조파심인절적 月照波心人絶跡 달은 파도 한복판을 비추는데 사람은 하나 없네.
하행차신금도차 何幸此身今到此 이 몸이 여기 온 것 다행이구나.
의선고자망허벽 倚船孤坐望虛碧 뱃전에 기대어 푸른 허공 쳐다보니
달빛 젖은 애수가 서리는 시이다. 불운한 시절을 만난 어느 선사가 달밤에 강가 나루터에 도착 하였다. 뱃전에 기대어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는데 뉘 집에선가 객수를 달래주는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이 허적한 이 시의 작자에게는 남모르는 슬픔이 있다. 세상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만 돌아가고 아무도 도(道)의 참 정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진리의 참 가치를 외면하고 파당적 분쟁과 배타적 고집으로 불교를 비방하고 배척하는 목소리가 권력 실세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조 초기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으로 국시가 바뀌었을 때 안간힘을 다하며 호불(護佛)에 힘쓰던 함허득통(涵虛得通1376~1433)선사의 근심이 이 시에 배어 있다.
21세에 출가해 제방을 순력하던 그는 오대산에 들어가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영감암(靈鑑庵)에 가서 나옹스님 영정을 참배하고 이틀을 묵었는데, 나옹스님이 현몽하여 이름과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기화(己和)라는 본래 법명과 득통이라는 호를 꿈속에서 받았다는 것이다.
공공연히 불교를 배척하는 유자들의 횡포가 심할 때 그는 『현정론(顯正論)』과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을 지어 불교를 적극 옹호 하면서 유자들의 불교폄하를 반박하였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찰이 헐리는 등 불교 수난이 계속돼 이를 가슴 아파하다 봉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유명한 『금강경오가해설의』와 『원각경소』가 남아 전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