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에겐 졸업시즌은 괴로운 계절이다. 우리 학제로 유치원부터 계산해 보면 17년, 그사이 재수를 한다든지 어학연수를 다녀온다든지, 다른 사정으로 휴학을 한다든지, 군 복무를 마친다면 20년이 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신체적 정신적 성장에다 지적성장을 위한 사투(死鬪)(?)가 끝나는 시점인데 어쩌면 홀가분하고 자랑스럽고, 즐거운 기분으로 새로운 사회에 달려나가야 할 텐데 괴롭다니 말이 되는가. 물론 모두가 괴로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로빈스’는 「인생 1/4분기에 맞는 위기」- 20대에 맞는 특이한 도전들-에서 ‘청년 위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부모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20대가 냉혹한 현실사회를 만나면서 겪은 좌절감과 불안, 그로 인한 일탈을 청년 위기로 표현한 것이리라. 유독 이 용어가 이 시기의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맞는 첫 번째 졸업시즌이기 때문이다. 잔혹한 계절, 저주의 계절이라 할 정도로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가. 이 상처를 억지로 피해 보려고 일부러 졸업을 유예한 사람 또한 부지기수라 한다.
올해 2월 대학 졸업자 수는 대충 6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에 따르면 지난 1월말까지 취업이 확정된 비율은 올해 대졸자의 15%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이 수치는 지난해의 1/3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50만 명 정도가 아직 직장을 못 구한 상태인데 여기다 지난해 졸업자 53.8%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는 통계 수치까지 합친다면 올해엔 80만 명 가량의 대졸자가 취업전선에 내몰린 셈이다. 이들 가운데 얼마가 취업을 하고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취업에 실패하여 좌절과 불안에 휩싸일 것인가. 이런 자녀를 둔 부모나 가족들까지 합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년실업의 문제로 고민하겠는가.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불황이 20대의 청년들에게 안겨주는 고통을 일컬어 ‘트라우마 세대’라고 명명하였다. 취업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트라우마(trauma)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중ㆍ고교 시절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과 부도를 간접 경험한 20대 중ㆍ후반 세대가 이번에는 금융위기로 취업대란에 직면한 것을 심리적 외상(心理的 外傷)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미 수십 차례 입사지원서를 냈고, 운이 좋든지 실력이 있어서든지 면접까지 보고도 최종단계에서 낙방의 아픔을 맛본 사람들. 잠을 못 이루고 소화불량에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탈모현상이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고용시장이 더욱 위축된 탓이라고 자위도 해 보지만 하루하루 불안과 초조는 더해갈 뿐이라고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백 약이 다 효과가 나질 않는다. 웅덩이에 돌 집어넣기라고나 할까. 이런 때일수록 단기적 효과를 내는 처방에 급급하지 말고 근원적인 처방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교육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 경제나 실업이 이 지경인데도 구직난(求職難)과 함께 구인난(求人難)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3D업종을 비롯한 1차 산업에는 돈을 주고도 사람을 못 구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중소제조업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법체류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면 공장 문 닫을 판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5%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모든 국민이 기대하는 일의 종류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전문화될수록 일의 종류가 많아진다. 이 일을 국민 모두가 고루 나누어 맡아 할 때에 우리 사회가 이상적으로 유지되어 갈 것이다. 요즈음 취업의 심각성을 경험하고서야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들이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원을 찾는 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하루 빨리 우리의 교육제도, 특히 대학의 수와 정원을 대폭 축소 조정하고 부담 없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충되어야 한다. 더불어 부모와 기성세대의 교육관과 직업관이 바뀌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졸업시즌을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축복 속에 맞고, 당사자도 희망과 즐거움에 넘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새로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향암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9년 3월 제100호